<지속 가능한 열정>
기억은 나를 약 사십여 년 전으로 이끌었다. 초등학생이었다. 장래희망에 무엇을 끌까 고민하다가 ‘소설가’석 자를 썼다. 당시 우리 집에는 어린이들의 읽을거리들은 없었다. 교과서나 참고서가 고작이었다. 엄마는 글을 깨치지 못했기에 더욱 책의 재미를 체감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했다. 방학이 끝나고 나면 방학동안 일기를 잘 써온 아이에게 ‘일기상’을 시상 할 때면 내 일기장이 채택된 적이 많았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책도 안 읽은 내가 글재주가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 반에 나와 같은 꿈을 쓴 경옥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경옥이네는 집안 형편도 넉넉했고 집에 읽을 책들도 많았다. 경옥이는 내가 보기에도 책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 아이는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할 때에도 심지어 국문학과를 선택했을정도다.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조용히 책을 읽기를 좋아하던 그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지 혹은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하곤했다.
몇 년 전에 ‘내 마음 글쓰기’라는 동네글쓰기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수업을 봐주시는 분은 평생을 부지런히 글을 쓰며 책도 발간한 지방 대학의 퇴직한 교수라 자신을 소개했다. 마음에 하나 둘 쌓아왔던 문장들을. 풀어 글로 써보는 거라 나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매주 숙제로 내주는 글감을 가지고 나는 정말 진지하게 쓰고 수정했다. 수업시간에 쓴 글을 발표하고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선생님은 내 글에 아름다운 수식어를 붙여 칭찬을 많이 해 주셔서 부끄러웠지만 자신감도 생겼다. 아마도 그때가 다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에 불이 지펴졌던 거 같다. 그 수업에 썼던 글들이 버려지는 게 아까워 브런치 작가에 신청했다. 22년 5월 한 번에 합격 메일이 왔다. 내가 작가라고?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라주는 데는 아무도 없었지만 유일하게 나를 작가로 인정해 주는 곳이 생겼다니 무척 신기할따름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한동안은 감정에 흐름에 따라 무작정 글을 썼다. 생각했던 것보다 독자들의 반응이 미미해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를 잃어갈 때쯤 23년 10월 ‘연재 브런치북’ 기능이 생겨 정기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어떤 내용으로 연재를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내 일에 관련된 글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당시에 처음 나를 구독했던 독자는 남편이 되어주었다. 한동안 내 이야기가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지 구독자도 더 이상 늘지 않았다. 평소 일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적은 ‘ 영유 한 보내세요?’가 내 기준으로 대박이 나면서 좋아요가 200회가 넘어갔고 구독자도 당시 많이 늘었다. 내 생각이 손가락을 떠나 글로 변환되어 소통될 때의 파급력은 무서운 거라는 걸 실감했고 앞으로 신중한 글쓰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25년엔 욕심을 내보고 싶었다. 평생 내가 가지고 싶은 것 중에 가장 욕심이 나는 분야가 작가로 홀로서기해 보는 것이다. 진짜 내 글, 소설에 도전해 보겠다는 호기로운 도전은 마냥 무모해 보였지만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일단 연재를 공표했으니 이야기를 만들어야했다. 매주 연재날에 쓰고 퇴고를 하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고 손목도 무척 아팠지만 그 통증을 덮을 만한 희열을 느꼈다. 자판을 두드릴 때 도파민이 나오는 기쁨이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을 그때 처음 느껴보았다. 그런 갈망은 실재하고 사람을 만들고 지배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십 대가 가까운데 꿈을 이야기하기에 부끄럽지 않고 싶다. 사회가 그렇게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기에 소설가로서의 여정을 멈추지 않는 게 목표다. '지속가능한 열정' 그 여정에 브런치가 함께 해줬으면 한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의 한계를 넘어선 글과 글로 만나는 소통은 훨씬 더 내밀하면서 솔직해서 좋다. 앞으로도 브런치의 아름다운 궤적에 함께 동참하고 싶다. 브런치 10주면 축하합니다.
#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