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의 첫 번째 대여자(5화)

by 김작가

개가 도착하기로 정해진 후 지영은 며칠 밤 잠을 설쳤다. 책과 신발을 받을 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황실장은 혹시 모를 상황에 언제든 다시 보내도 된다 했지만 어쩐지 개를 다시 돌려줄 생각하기에도 꺼림칙했다. 황실장은 지영이 마음을 바꾸기라도 할까 봐 계약서를 잽싸게 지영앞으로 밀어놓았다. 지영 자신도 이런 황당한 렌털사업의 사용자가 되리란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지만 시우만 생각하기로 했다. 시우처럼 예민하고, 왜소하며, 우울감이 많은 아이는 독립적이지만, 활발하고 예민성이 덜한 중형견이 소형견보다 좋다는 황실장의 설명을 들은 후에야 여러 블로그에 들어가 몇 가지 알려준 종들을 검색해 보았다. 아기 때부터 시우는 개나 고양이, 공룡, 파충류등 가리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 따로 의논하지는 않았다. 결국 시우도 좋아할걸 아니까 미리 말하기가 더 두려워졌다. 말 그대로 대여니까.


보리의 두 번째 생은 그의 어미가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시작되었다. 그중 젖을 빨지 못했던 수컷 둘은 이내 세상을 떠났다. 이제 막 시작된 삶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보리는 더 열심히 어미에게 붙어 있는 힘을 다해 젖을 빨았다. 어미의 모성애가 줄어든다는 시기가 되자 어미는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지 않았다. 보리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수술대에 올랐다. 보리는 무슨 일이 벌어진 줄 몰랐지만 며칠 동안 엉덩이에서 밀려오는 통증은 알 수 있었다. 야, 너 꼬리 없는데, 무슨 일이야?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말이 맴돌았다. 하지만 속상함도 잠시였다. 보리의 몸이 넓적하게 불어나자 요리조리 흔들리는 엉덩이와 쫑긋한 귀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앗 귀여워' 엉덩아 좀 봐! 보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다가도 자신의 개인기 2단 구르기까지 보여주니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보리는 사람들이 와하하 하고 웃으니 어쩐지 뿌듯하기까지했다.


첫 번째 대여자는 결혼 후 여러 해 동안 임신이 불가능해 시험관시술까지 했으나 결국 임신을 포기한 후 개를 들이기로 한 경우였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 보리를 등장시키자 반응이 폭발적으로 좋았다. 그 이후로 둘은 보리를 이용한 콘텐츠를 이용해 구독자를 모으고있었다. 욕심이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사고가 날 때까지 질주하는 법이다. 젊은 부부는 보리를 데리고 주말이면 여행을 가서 영상을 찍었다. 사람들은 ‘ 좋아요’를 눌렀다. 부부는 개를 보며 열광하는 사람들에 댓글에 의해 움직였다. 문제가 된 사건은 여름 '수영장 사건‘이었다. 더운 여름. 넓은 운동장 한편에 자리 잡은 작은 수영장. 어른 허벅지 정도의 깊이의 물이지만 보리는 무실할정도의 깊이를 작감했다. 젊은 여자는 준비한 키티그림의 수영모와, 수영복을 보리에게 입혔고, 카메라를 보며 한껏 상기된 웃음을 짓고는 물에 내려놓고 개헤엄 치는 모습을 영상에 담으려 했다. 하지만 물을 무서워하는 보리는 물에 내려놓자 살기 위해 헤엄을 쳤다. 부리나케 움직여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짧은 다리로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가 빠르게 헤엄치며 수영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키티옷을 입은 보리는 화면에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온라인상의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개귀여워요 ㅋㅋ


펫렌탈이 뭐야? 나도 알아봐야겠는데.

다들 귀엽다고 환호하는 중에 저거 학대아니냐는 반대의 댓글이 달렸다. 마치 주동자를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동조하는 댓글을 달기시작했다.


여자가 관종이구만


미친거 아니야, 개가 무서워하는 거 같은데, 불쌍해 ㅠㅠ


그제야 부부는 그들은 영상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서둘러 영상을 삭제했다. 이어진 개인신상털기와 업체에 대한 무분별한 렌탈끼지 불똥이 튀자 결국 부부는 계정을 삭제했다. 부부의 표정에서는 실망과 입에서는 비난한 사람들을 향한 욕설이 보리에게 쏟아졌다.


보리가 다시 펫렌털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곳엔 늙고 예민한 조와 프레디가 있었다. 보리보다 체격이 작고 그들의 눈 아래 그늘처럼 짙어진 색과 한눈에 보아도 관리가 안 된 푸석한 털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튼튼하고 활발한 보리와 달리 둘은 아픈 몸을 갖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하루에 최소한으로만 사료를 주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의 관심을 원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나른한 눈을 감고 하루를 보내던 조와 프레디는 간간히 보리에게 인간들의 말을 다 믿지 말라고 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그들은 우리와 달라.


보리는 그들의 말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됐지만, 또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곤 몸을 웅크리며 숨을 뱉고는 창밖을 보며 그 부부를 생각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4화보리가 왔다.(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