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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Oct 10. 2018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을까

정해진 답은 없다

 글을 쓰고 싶었던 나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의 글 속에서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주인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배경과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된 그럴싸한 이유들이 필요했다.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려면 사건의 실마리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공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의 촘촘한 관계망을 만들어야만 했다. 실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치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잃어버린 고향도 없고, 가난도, 굶주림도 모르고,
남들과 다른 신체구조를 가진다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몇 십 년을 쌓아왔던 믿음이
무너진다는 것은 또 어떤 것인지,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는 건 무엇인지,
나를 닮은 작은 아이를 바라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피부에 주름이 배는 건 무슨 느낌인지,
백만장자는 무엇이 그리 굶주려 하는지,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상대방을 처절하게 무너뜨리는 데에서
어떤 쾌감을 느낄 수 있는지,
주변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떨지,
아무것도 모른다.
-2011.01.    

 고작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는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궁금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들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될 것들이었다.


 아마도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었던 욕심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얼른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 부럽기도 했다. 남몰래 술 한 잔 기울이며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의 모습을 얼마나 우러러봤는지 모른다.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추억보따리가 얼마나 탐이 났는지 모른다. 10년 전에는 그랬었지, 그것도 벌써 20년 전이네, 와 같은 말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아득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저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느꼈는지가 흥미로웠다. 책 속에서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의 이야기부터 우리네 일상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나에게는 모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아직 내가 겪어보지 못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20대, 30대, 40대…… 세대별로 제목을 검색하여 책을 찾아본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는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호기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고, 흥미를 느꼈던 만큼 타인에 대해 잘 공감하고 있는 것인지는 조금 의문이 든다. 스스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던 부분인데, 곧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일이 피곤한 일로 다가왔던 때가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곤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맞장구치는 일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일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들어줄 수 있지만 어쨌든 직접 부딪혀보고, 버티거나 해결해나가는 것은 그 사람의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그냥 내 생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항상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내가 하는 말이 해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진정 누군가를 위한다면 당연히 공감하고, 위로해줄 수 있어야하지만 무작정 하소연하는 걸 듣고만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 공감은 하되 대신 해결해 줄 필요는 없다.

 그래도 열아홉의 내가 기특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만 보이는 반경에서 벗어나 더 크고 넓은 시야를 가지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기특하다. 그런 시야를 가지려고 노력했던 덕에 피할 수 없이 겪어야했던 힘든 상황들도 어떻게든 극복해왔던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또래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세대마다 갖고 있는 경험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한 가지를 보더라도 그 판단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아직까지도 내가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 많을 것이다. 인간이 느낄  있는 감정은 도대체  가지나 될까? 기쁨과 슬픔 또한  가지의 똑같은 감정인  같아도  깊이 또한 천차만별이라 감히 수로 가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노력해서  가지의 감정이라도 알아보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은 자연히 시간이 알려줄 것이니까. 모든 것은  ‘ 있는 것이니까. 유유히  시간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는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야한다.
-2011.02.


 나는 지금도 궁금한 것이 많고, 해결되지 못한 의문점도 많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들을 도덕적 잣대로 보기에는 어떤 부분에서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훌륭한 인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세상에 중요한 가치가 꼭 인간적인 면모만은 아닌 것일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나 가족같은 인간관계에서 쉽게 피로감을 느꼈고, 오로지 자신의 과학연구에 몰입했을 때 평온함과 안정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최고의 가치는 과학연구였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 또한 비슷한 경우로 보였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냉정하고, 가차 없는 인물이었지만 그들의 업적은 지금까지도 빛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한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떤 가치를 중점으로 두고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그 잣대에 따라서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역시, 인생에는 정답이 없는 가보다.


 정답이 없기에 어떤 답이라도 찾아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끊임없는 궁금증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자꾸만 새롭게 펼쳐지는 우리의 인생에서, 그 길을 헤쳐나가다보면 자연스레 궁금증을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다. 예측할 수도 없고,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을 하나씩 해결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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