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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Sep 24. 2018

선택

마땅한 권리 그리고 책임

 어린 아이들이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자주 하는 변명은 “○○이도 그랬어요.”이다. 친구가 그래서 나도 따라서 했다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도 저런 식의 변명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이가 그렇게 말했어요.”나 “○○이를 보면 그렇게 해도 잘 되잖아요.”하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 나의 일은 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해 나가야하는 일이었다.


 마침 sbs에서 방영하는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 신애라가 사부로 나와 했던 이야기가 있다.

나의 욕심보다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배우도록 한다.


 누군가가 우연한 산길에서 산삼을 발견했다고 나도 그러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주변에 누군가가 “이렇게 해 보는 게 어때?”하고 이야기했을 때 그 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것도 나의 선택이다. 안 좋은 결과가 생기더라도 그 사람을 탓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보짓이었고 어리석음의 극치였고, 정면대결에서는 언제나 꽁무니를 빼는 비겁한 꾀쟁이의 오류였고, 복잡해지는 것이 싫은 게으름쟁이의 안이한 도피책이었다.
-김수현 《겨울새》中

 위는 ‘피동적인 결정’에 대한 말이다. 사람은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만 하고, 뒤로 숨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떠미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이야기한들 결국 선택과 결정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목숨이 위태할 만큼 협박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대신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유부단한 성격이 많다. 예전에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그저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자신이 내려야 할 결정을 타인에게 미루고, 그 책임까지도 타인이 떠안도록 한다면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모르겠다, 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있기만 한다면 말이다.

 누구든지 사람은 주체성을 가져야한다. 자신만의 신념이 있으면 그것대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면 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이 마땅히 짊어져야한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칫하다 꼭두각시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 계속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고, 상처를 받으며, 스스로 책임지기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평생토록 자기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독립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어떠한 선택이든 항상 무언가는 포기해야한다. 미래의 불확실성도 가지고 가야한다. 어쨌든 선택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다. 주변 누구도 탓할 수 없다.
-2018.02.

 무언가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포기해야하는 부분들을 적어보고, 어느 쪽이 더 무게가 가벼운지 비교해본 다음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것보다는 저것을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에 맞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는 어느 쪽도 포기할 수가 없을 수 있다. 그럴 때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 만큼 선택한 무게를 오롯이 감당하는 수밖에.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참 싫다. 그런데 싫어하면 어쩔 것인가. 어느 쪽이든 선택은 해야 하는데 말이다. 나라면 어떻게든 시기를 조정해서라도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면 그 만큼 또 다른 부분을 감수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드라마를 보면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시간에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든가, 친구들이 여행을 가자며 일정을 잡을 때 혼자 빠져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남들이 한 마리의 토끼를 잡을 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면 더 많이 움직이고, 더 좋은 무기를 장착해야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무게라면 충분히 감당해도 좋지만 자신에게 부담스러운 짐을 지우면 한 순간에 쓰러져버릴 것이다. 나의 욕심꾸러기가 난동을 피울 때 ‘빠른 시일 내에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해라.’하고 잠재우곤 한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장면 중의 하나가 일이냐, 사랑이냐의 선택에 기로에 놓인 주인공의 모습이다. 자신의 일로 승승장구할 수 있는 주인공은 이내 사랑을 선택하고, 아주 해피엔딩이라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행복한 사랑의 결말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드라마가 아니니 반드시 달리 생각해야한다. 조금은 이성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어찌됐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 그리고 무리는 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선택은 불가피하다. 매 순간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마땅히 자신이 짊어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더욱 주체적이고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장 폴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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