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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Sep 18. 2018

고리타분

적당히 해도 괜찮아

 [형]고리타분하다

 1.냄새가 신선하지 못하고 역겹게 고리다.

 2.하는 짓이나 성미, 분위기 따위가 새롭지 못하고 답답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고리타분하다’라는 형용사를 풀어 해석하면 위와 같다. 원래부터 나는 융통성이랄까, 센스, 그 어느 부분이 부족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말하는 “언제 밥 한 번 먹자.”를 진짜로 받아들이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언제?”하고 묻는 경우처럼 말이다. 순진한 건지, 그냥 센스가 없는 건지 그저 보이면 보이는 대로, 들리면 들리는 대로 알아듣곤 했다. 그러고 보면 그 상대방은 얼마나 난감했으려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표준화되어가는 것 같다. 특별히 튀지 않게,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일정한 수순과 규칙에 맞게, 나를 그 틀에 맞게 맞추어가고 있는 것 같다.
-2013.08.

 언젠가부터 1로 배웠으면 무조건 1, 동그라미로 배웠으면 무조건 동그라미 식으로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겼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덕에 강박관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나를 보고 너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사는 거 아니냐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만큼 또 다른 부분까지 생각할 줄을 몰랐으니 일을 하면 오로지 일 생각만 했고, 놀러 다니는 것에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 주어서 그런 부분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놀러 다니는 것도 노력을 해야 하다니. 남들은 흔하게 다녀오는 제주도조차 25살 끝물에서야 처음으로 가 보았다. 해외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25살을 기점으로 나는 내 생활에 숨통을 조금 터주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알아서 놀 만한 타이밍을 시시때때로 노리기 시작했다. 이건 누가 뭐래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먹고 놀려고 일하지,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는 일이 참 어렵다. 방 안에 가만히 누워 뒹굴거리기만 하다보면 두통이 심하게 온다. 그래서 카페에라도 나가 잠시 서류작업을 할 때가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지독한 일벌레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까 말이다. 정해진 날짜에 닥쳐서 급하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도 한 보탬을 한다. (차라리 지금은 글이라도 쓰고 있으니 다행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서 내 스스로가 고리타분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하고 있다. 조금은 엇나가도 괜찮고, 조금은 허술해도 괜찮은데 자꾸만 스스로를 옥죄어 가는 것은 아닌지 조심하게 된다. 여유가 없고, 융통성이 없으면 주변 사람들도 피곤해질 지경이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다. 아주 조금은, 게을러져도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그러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갈수록 더 그런 것 같다.
-2018.04.    

 예전에는 어른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서 의문을 많이 가지고, 이해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역시나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걸 몸소 느끼는 바이다. 그러니 나 또한 점점 더 고리타분해져가는 건 당연지사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저 그런 일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주어진 일에 대해서도 해야 할 만큼만 하게 되고. 나에게 ‘소신’이라는 단어는 점차 무색해져가는 것만 같다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지기도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곧 내가 세운 도미노가 아닐까

 내 또래 사람들의 생활을 잠시 들여다보면 해외여행 다녀오는 건 다반사요, 하던 일을 잠시 쉬기도 하고, 차를 구입해 운전해서 다니기도 하고, 독립을 해서 혼자 살기도 한다. 요리를 배우거나 운동을 하고, 외국어를 배우는 등의 취미 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의 생활은 팍팍하게만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마음 놓고 여행을 가고, 취미 생활을 즐기기에는 이것저것 따지기부터 하고, 계산 머리가 끊임없이 굴러간다. 지금 잠시 쉬면 쉰만큼의 손해가 생길 텐데 그걸 언제 다 메꿀 수 있을까? 5년 뒤, 10년 뒤까지 생각하면 지금 마음 놓고 놀 수만은 없는데.

 그렇다. 나는 스스로를 가만두지 못하고 재촉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니 나의 생활방식에 대해 제대로 고리타분한 게 맞다고 해도 반박할 말이 없다. 하지만 ‘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기에 놀고, 먹고, 자고, 쉬는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해보고 있다.

 사람이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새 손에 익기 마련이다. 자연히 여유가 생기기 마련인데 나에게도 그런 ‘여유’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순간을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고,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점점 무기력해져가는 것이었다. 이때야말로 스스로 참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여유를 가져도 괜찮다. 아주 약간은 게을러도 괜찮다.

 스스로를 자꾸만 재촉하기만 하다 보니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아끼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꼭 정석대로 살아야하는 법도 없거니와 삶에 있어서 정석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적당히 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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