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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Sep 13. 2018

의미 있는 희망

생각해보셨나요? 희망 심기에 대한 ‘책임감’

 아이들에게는 “똑똑하다.”, “예쁘다.”, “잘했다.”와 같은 무의미한 칭찬보다는 “노란색으로 색칠하니 밝은 느낌이 나는구나.”, “숫자를 참 좋아하는 구나.”와 같이 구체적으로 언급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 번 생각해보자. 어릴 적에 시험 문제를 잘 풀었다며 주변 어른들이 “너 참 똑똑하구나.”하고 칭찬해준다. 잠깐 동안은 내가 진짜 똑똑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이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나만큼 똑똑한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0.00001% 천재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결과보다는 과정에 대해 언급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칭찬이다.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 조세핀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피아노를 잘 치는구나.”라는 칭찬을 넘어,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겁니다.
“네 피아노 소리를 사람들이 들으면 위로가 될 텐데. 그런 기회가 있으면 해 볼래?”

 단순히 ‘잘 한다’의 의미를 넘어서 그것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를 넌지시 비춰주는 것이다. 그런데 무의미한 칭찬만큼 독이 되는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무의미한 희망’심어주기이다.

 언제든 그런 때가 온다.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희망적인 말들이 무책임한 말들로 전락해버리는 때.
-2011.12.

 사람들이 생각보다 쉽게 내뱉는 말이 있다. “열심히 하면 될 거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잖아.” 열심히만 한다고 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잘’해야 한다. 무조건 노력만 한다고 그가 배신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력도 ‘현명하게’ 노력해야 배신하지 않는다. 옛 속담에도 ‘조리에 옻칠한다’라는 말이 있다. 소용없는 일에 마음을 쓰고, 수고하는 것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다. 세상에 노력 없이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들 저마다 할 수 있는 한 나름대로 노력하며 살아간다.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은 다름 아닌 작가였다. 그랬으니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열심히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을 제일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러니 대학교 학과도 자연히 글을 쓸 수 있는 학과로 선택하게 되었고, 딱히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틈도 없었던 어린 날에는 그 단 한 번의 선택이 나를 어떠한 시간으로 이끌게 될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어쩌다 부모님과의 상의를 통해 보육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만 지금 현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역시나 후회 없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당장 취업난을 겪고 있는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이다. 갈수록 부모님들의 등골은 휘고, 자식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꾸만 벌어진다.

 만약 부모님께서 나의 꿈을 존중한답시고 계속해서 글을 써 보도록 했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렇게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었을까? 오로지 작가가 되겠다며 마음을 먹고 베스트셀러 한 권이라도 낼 수 있었을까? 글을 쓰겠다는 나의 꿈만을 믿고 많이 쓰고, 많이 읽으면 될 거라고, 언젠가는 작가로서 꼭 성공할 거라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면, 그 달콤한 희망의 소리에 어느 순간 커다란 배신감을 떠안고 와르르 무너지는 때가 분명 찾아왔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희망적인 말들이 무책임한 말들로 전락해버리는 때’가 말이다. 아마도 아주 먼 길을 돌고 돌아 지금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며 사회생활에 적응해 나갔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한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한다. 조금 더 쉽게 말해 ‘이거 하나만큼은 꼭 지켜내고 싶다.’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아야한다. 좌우명과 같은 것 말이다. 나는 항상 떠날 자리를 생각하며 매사에 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후회 없이 떠나자.’를 좌우명으로 새겼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만큼 자신이 있던 자리를 잘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머물던 자리를 멋지고, 깔끔하게, 쿨하게 정리하는 일은 그 다음의 누군가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화장실에서만 그치는 문구라기엔 그 의미가 매우 포괄적이지 않은가? 작게 보면 이러한 일상의 한 부분이겠지만 크게 보면 언젠가 우리가 살아온 한 생애를 마치게 될 때, 한 때 머물렀던 자리가 아름답게 남아있다면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후회 없이 떠나기 위해서는 우선 미련이 없어야한다. 미련이 없으려면 해볼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해 보아야한다. 무언가를 시도하려면 희망이라는 원동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잘못된 희망은 아주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희망도 단순한 희망으로는 부족하다. ‘의미 있는 희망’, ‘믿을 만한 희망’, ‘그럴 수 있을 만한 희망’이어야한다.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을 때 그들은 막연히 “대통령이 될 거예요.”, “유명인이 될 거예요.”하고 이야기한다. 그 꿈에 대해 의미 있는 희망을 가지려면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이다. 난 그냥 그렇게 될 거야, 라는 뜬구름이나 잡는 태도가 아니라 약간의 현실성을 반영한 ‘의미 있는 희망’을 심는 것이다. 당장에 이룰 수 있는 작은 목표가 나중에 더 큰 꿈을 키워줄 씨앗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설사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말이다.

 고등학생 때 한 선생님께서는 하루에 5분씩이라도 투자해서 꾸준히 무언가를 해 보라고 이야기하셨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한다면 반드시 얻어지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나의 경우에는 길든 짧든 쓰는 일을 멈춘 적이 없어서 업무 상 서류를 작성하는 일만 해도 별다른 두려움없이 해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둔 이후로도 피아노 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잊어버리지 않고 피아노를 치며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줄 수 있었다. 무엇이든 꾸준하다는 것은 제법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 같다. 누구든 ‘의미 있는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해낸다면 반드시 꿈을 이루게 되리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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