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꿈 Sep 11. 2018

세상을 바라보는 눈

세상을 향한 정답없는 고민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을 ‘세상’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고, 그 눈은 저마다 다른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저마다 느끼는 것도 제각각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사람도 있고,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도, 대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주변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에 따라서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 우리가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에 어느 누구는 밀려드는 업무에 허덕이고 있고, 어느 누구는 꿈속에서 저승사자에게 쫓기고 있고, 어느 누구는 한 사람이라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온종일 고심하고 있으며, 또 어느 누구는 어둠이 깔린 초원에 배를 곯고 누워있기도 하고, 어느 누구는 10분의 공연을 위해 팔이 무거워지도록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도대체 얼마나 작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 우리가 죽을 만큼 고민하는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인지. 우리는 머릿속에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 한다. 뱃속의 아기들부터 근근이 숨 쉬고 계시는 노인 분들까지, 우리가 있는 이 학교에서부터 우리가 태어난 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또 그 이상까지도. 그렇게 크고 넓은 지도를 그려 늘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숨 쉴 날들이 지겹도록 많이 남아있고, 그 날들을 이 세상이 따뜻해질 수 있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날들로 만들었으면 정말로 좋겠다.
-2011.01.

     

 이 글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썼던 글 중 일부이다. 세상에는 좋은 것들만 가득하리라는 일종의 착각, 망상 속에 지냈던 어느 미성숙한 영혼이 ‘지어낸’ 글이다. 그 당시에는 굳게 믿고 있던 사실인 게 맞지만 지금은 모두 허탕인 걸 알게 된 후이기 때문에 ‘지어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앞으로 내가 줄곧 반복할 문장은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다.’라든지 ‘세상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라든지 ‘인생은 실망의 연속이다.’와 같은 회의적인 문장들일 것이다. 아니, 이것은 회의적인 자세의 문제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한다. 세상은 생각만큼 나의 편이 아니며,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분명 아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가는 게 당연한 이치다. 내가 지금까지도 마음에 두고 되새기는 유명 인사들의 명언 3가지가 있다.

     

 태어나서 가난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건 당신의 잘못이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건 죄가 아니지만

 당신의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실수는 누구나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수 백 수 천 번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그건 못난 사람이다.

 인생은 등산과도 같다.

 정상에 올라서야만 산 아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듯 노력 없이는 정상에 이를 수 없다.

 때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지만 노력조차

 안 해보고 정상에 오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폐인이다.

 가는 말을 곱게 했다고

 오는 말도 곱기를 바라지 말라.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지도 말라.

 항상 먼저 다가가고 먼저 배려하고 먼저 이해하라.

 주는 만큼 받아야 된다고 생각지 말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라.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를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도 말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갚을 땐 갚고 받을 땐 받아라.

 모든 걸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려라.

 나 없인 못 산다는 생각 또한 버려라.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

 -미국의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기술고문,

 빌 게이츠.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서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

     

 <세상을 현명하게 건너는 법>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아야 하고

 감정 때문에 판단을 그르쳐서도 안 되며

 버려지기 전에 먼저 떠날 줄 알아야 한다.

 당장의 유혹에 흔들려서도 안 되며

 보여줄 때와 감출 때를 알아야 한다.

 큰길로 가야 할 때를 알아야 하고

 본받아야 할 이들과 어울릴 줄 알며

 들어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스페인 작가, 발타자르 그라시안.

     

 위 3가지의 명언은 되새겨볼 때마다 매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에게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날릴 때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며 위로해주기도 했다가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이 무엇인지 답을 줄 때도 있다.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 말하고 있고, 현명하고 지혜로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이라 말하면 매우 크고 드넓은 의미인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당장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여러 가지 상황들 그 자체가 곧 우리들 세상이다. ‘세상’이라고 해서 어디 먼 나라의 이야기를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우주 끝엔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곧 우리가 매일같이 부딪히는 일상과도 같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이 갖게 되는 관심사나 호기심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 함은, 곧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또한 매일같이 어떠한 행위를 통해 변화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늘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비슷하고,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며 우리들은 조금씩 변해간다.


 세상에는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이상한 사람도 생각 이상으로 많다.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사람, 주어진 도리를 어기는 사람, 무책임한 사람.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다 같이 잘 지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기를 원한다. 하지만 점차 회의적인 자세가 된다. 안 되는 건 안 되고, 바뀌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자꾸만 깨닫게 된다. 좋은 마음씨를 베풀어도 ‘베풂’만으로는 내가 즐거울 수 없다는 것도 차츰 알게 된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잘 풀리는 일이 있다. 그러는 와중에 점점 냉철해지고, 무언가를 더 기대하지 않게 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게 되는 것 같다. ‘굳이 내가 왜?’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누군가에 대해 덜 친해서일 텐데,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는데, 대화가 부족해서일수도 있는데……. 모르겠다. 갈수록 나와 직접 연관되지 않은 일, 굳이 나서도 되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소극적인 자세가 된다.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귀찮고 피곤하기도 하다…….
-2014.03.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나의 혼란과 고민은 계속되었다. 미성숙한 영혼이 머지않아 한 단계 성숙한 영혼으로 거듭나기 위해 일종의 성장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다 같이 잘 지낼 수 있으리라 믿고 싶으면서도 정작 소극적인 자세가 된다는 것. 어른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철이 들었다.’라고 한다.

     

 나는 내가 전과 같지 않다고 해서 서글퍼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마음으로도 살아볼 수 있고, 저런 마음으로도 살아볼 수 있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정해진 답이 없는 것처럼 늘 한결같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고, 자꾸만 재고 계산하게 된다고 해서 슬퍼질 필요도 없다. 상황에 따라, 위치에 따라, 나이에 따라 사람은 항상 변화하기도 하면서 그대로이기도 하니까.
-2016.08.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당연하게도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진정 세상살이란 어떠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시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윽고 내가 찾은 답은 바로 이것이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현명함’이다. 무엇이 가장 현명한 선택인걸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인걸까? 어쩌면 스스로를 옥죄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어쩌면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해서인 것 같다. 불안하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기도 하다. 늘 ‘정답’을 찾고 싶은 마음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항상 ‘정답’은 없고,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2017.11.

     

 결국 최근 내가 내린 결론은 ‘현명함’과 ‘지혜로움’인 것이다. 정말이지 정답이 없는 문제라서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당연한 의문이자 근본적인 문제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것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도, 아직 세상은 따뜻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