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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Nov 04. 2018

그래도, 아직 세상은 따뜻할 수 있을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

 지금까지 줄곧 이야기해온 것처럼 나는 세상이 그다지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간에 온정이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인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으며, ‘사랑’, ‘믿음’, ‘약속’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 또한 우리들의 일상에 어떠한 형식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우리들은 왜 그러한 것들에 쉽게 상처받으면서 또다시 의지하게 되는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오글거린다.’라고 표현하며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한 것 같다. 너무 쉽게 과열되고, 너무 쉽게 잊어버리며, 너무 쉽게 변화하고, 또 그것에 금방 적응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따뜻한가요?

 겉으로는 세상 일이 다 그렇지, 하고 담담해보이기도 하면서 저 사람이라고 별 반 다르겠어, 하고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은 무지막지한 겁쟁이가 되어가는 것이면서. 또 다시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숨는 것이면서.


 어떤 인연은 마치 선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힘들고 쓸쓸하던 날들에 대한 어떤 보상처럼, 그렇게 어느 날 짠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상자에 기대감을 가득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한 순간, 한 순간 모든 것들이 빛이 나는 것. 선물상자를 풀어보았을 때 기대 이상일지, 이하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선물처럼 다가오던 그 순간의 기쁨. 찬란한 순간들은 커다란 행복이었다는 것. 그 사실만은 변치 않을 것이다.
-2017.05.


 새로운 사람을 대한다는 건 누구에게든 설레는 일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고, 굳게 닫혀가는 마음의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과연 나의 상처를 치유해줄 사람인지, 덧나게 할 사람인지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한 후에야 알게 되겠지만 어찌되었든 나의 인생 어느 한 부분만큼은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리라. 어릴 적 친구도, 한 때 사랑했던 애인도,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도, 심지어는 부모님까지도 어느 한 순간에는 상처로 남고, 또 어느 한 순간에는 찬란한 빛으로 남는다. 사람과 사람 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헤어짐의 순간에 여실히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우리의 생에 끝이 있는 것처럼, 인연에도 끝이 있다. 우리가 살아서 의도적으로 끊게 되는 인연, 생이 마감되면서 자연스레 끊어지는 인연,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까지…….


 지금까지 모아놓은 편지더미만 뒤져보아도 나를 스쳐지나간 인연들이 이렇게 많았나,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마치 어린 시절의 앨범을 꺼내어 살펴보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그저 과거에 그쳐있지만 그 시간 속에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웃고 떠들었던 일들은 현재의 내가 있게 만들었다. 그 때 그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게 어느 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도우며 보람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를 선뜻 도울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대학 시절에 버스 정류장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길을 찾지 못하여 택시 정류장까지 바래다 드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한 친구는 오히려 펄쩍 뛰면서 요즘 함부로 도와줬다간 큰 일 생긴다고 도리어 나를 다그치는 것이었다. 짐 좀 옮겨달라거나 길 좀 묻는다며 할머님, 할아버님을 도와드렸다가 봉고차에 끌려가는 경우가 있다는 뉴스와 신문 기사가 한참 쏟아졌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지하철에서 적은 돈이라도 도움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천 원씩이라도 주곤 했었는데 지하철 안에서는 다리를 절던 사람이 밖에서는 멀쩡히 걸어 다닌다, 라는 소문을 듣고 배신감이 들어 도움 주는 일을 멈추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는 작은 일이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지 한 푼, 두 푼 쥐어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우치게 되었다.


 그래도 세상은 아직 따뜻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결국 떠오르는 건 사람들이다.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이 곧 추억이 되고, 그런 추억을 함께 곱씹으며 살아간다.


 어른들이 거짓말 안하는 (세상)

 주차선을 바르게 지키는 (세상)

 사람 많이 모여도 안전한 (세상)

 하고픈 일 다 되는 마법 같은 (세상)


 약한 사람 볼 때는 지나치지 않아요

 먼저 손을 내밀면 모두 행복해져요

 먼저 양보 한다면 싸울 일이 없어요

 서롤 마주보면서 하하호호 웃어요

 -위키드 블루팀《내가 바라는 세상》中 / 윤일상


 세상이 노래 가사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은 안전하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정직한 어른들이 가득한 세상 말이다. 사람들은 세상이 팍팍하다, 차갑다,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겠지. 부당한 일에 대해 용기 있게 맞서거나 집요하게 파헤치는 사람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사람들, 타인의 아픔에 눈물을 짓는 사람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고 싶다. 세상을 살아가기에 분명 어느 정도의 현명함이 필요하지만 소신과 용기까지 포기하게 된다면 그저 속없이 이기적인 삶이 될 뿐이다. 따뜻할 수 있는 사람들의 힘은 생각만큼 쉽게 눈에 띠지 않지만 그 파급력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 그들은 모난 데가 없어서 어디에서든 특별하게 튀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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