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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Oct 06. 2018

어린왕자의 사랑법

자연히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생택쥐페리의《어린왕자》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책이다. 《어린왕자》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을 때 곧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가 관람하기도 했고, 전시회에도 다녀왔다. 한 동안은 어린왕자와 관련된 책이나 물건을 사서 모으기도 했다.

 어린왕자의 장미꽃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야기만큼 유명한 일화다. 어린왕자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린왕자 또한 처음부터 하염없이 사랑할 수만은 없었다. 까칠하고 퉁명스러운 장미꽃을 떠난 후에야 조금 더 사랑하고 보듬어주지 못한 것을 하염없이 자책하게 된다. 지구에서도 수많은 장미꽃들을 만났지만 결국 자신의 장미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부탁을 하고 마는 어린왕자.


 만약 어린왕자가 사막이 아닌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짜고짜 양을 그려달라고 하더니 이 양은 병이 들었다, 이 양은 너무 늙었다며 퇴짜를 놓다가 양의 모습이라곤 보이지도 않는 상자 그림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어린왕자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상자 그림을 보면서 양이 잠들었다고 말하는 어린왕자의 모습은 낯설고, 이상해보이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린왕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드라마에서 간접체험하며 대리만족하는 것처럼, 어린왕자에게도 그런 비슷한 심리를 느껴서가 아닐까?    

남은 평생을 둘이서 함께 한다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두 사람 연애의 행복한 결말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 그것을 넘어 커다란 한 짐을
둘이 나누어가지는 것이기에
어느 한 사람이 몸 굽혀
그 짐을 조금 더 짊어지겠다고 할 때
나도 따라서 몸 굽혀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언제나 조금 더 편하고 싶고
나에게 좋은 것을 하고 싶기 마련이지만
남은 평생을 둘이 함께한다는 것은
항상 '우리'를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하는 아이와 가족이라는 보금자리를 위해서
어쩌면 전쟁 같을지도 모를
남은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
나는 그것이 결혼이라 생각한다
-2016.12.

 약속이나 의무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혼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연애하는 과정을 거치며 결혼을 한다. 평생 가는 사랑은 없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영원한 사랑을 꿈꾸게 된다. 영원하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아득하고도 황홀한 말인지 깊이 사랑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사람의 피부, 온기, 냄새, 목소리, 그저 모든 것들이 다 예쁘게만 보인다. 입으로 내뱉는 말 한마디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고, 눈빛은 아롱거리며 마음을 전한다. 그 때 사람들은 생각한다. 내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겠노라고!


 그러나 막상 매일같이 붙어있는 일상이 반복되고 나면 환상 같은 일은 모두 현실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다른 것보다 돈 얘기에 민감해지고, 누구도 하기 싫은 집안일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가족과 관련된 문제라면 말 한마디에도 예민한 문제가 된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또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고도 한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감히 사랑이 우선이라 말하고 싶다. 이 세상이 사랑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맞다고, 몇 번이고 외치고 싶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어느 누구에게 의지하며, 이토록 따뜻하고 편안한 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인가! 어린왕자의 장미꽃처럼, 오로지 나의 꽃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특별한 사람인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어른들의 조언을 흘려듣지 않는다. 직접 보고 느낀 바가 있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체험해보았거나. 아니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충분한 확신과 불안감 때문이다. 연애할 때와 결혼 생활의 차이는 얼마나 극명한지, 신랑신부감을 현명하게 고르는 방법은 무엇인지, 결혼의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 등등……. 우리들은 부모님 세대의 결혼 생활을 통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지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본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 있어 결혼이란 진정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기도 한다.


 사랑만을 믿고 남은 평생을 함께 하기에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속물처럼, 마음 깊은 구석 어딘가에 있을 죄의식마저 외면하며 이리저리 재고 따지기를 반복한다. 과연 내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지 계산할 수 없는 계산을 하면서 말이다.

 어린왕자와 여우는 ‘길들여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쉽게 말해 친한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길거리를 걸을 때 지나치는 사람들은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속에서 나와 가까운 단 한 사람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여우가 황금빛 밀밭을 바라보며 어린왕자의 금빛 머리카락을 떠올리는 것처럼 가까운 단 한 사람의 무언가를 기억하고, 비슷한 사물로부터 자연히 그를 떠올리게 된다.


 어린왕자의 사랑법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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