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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Sep 11. 2018

진정한 친구

‘곁’을 지키는 사람들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한정되어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들, 바쁜 일상 속에서 하나둘씩 연락은 끊어져 간다. 사람들은 인간관계 때문에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치 당장 나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흥분하고, 분노하며, 슬퍼한다. 공감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관심은 스스로에게 해롭다. 그 사람의 일은 그 사람의 일이다. 그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다. 내가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돕는 것이 맞지만 그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혹여 그 사람의 선택이 나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그 사람의 선택이고, 그에 따른 책임 또한 그 사람의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의 범위를 지켜 도움을 주고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었다면, 그것 또한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이다. 다른 한 편으로 내가 우습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 앞에서는 마치 나의 일 인양 잔뜩 몰입하고, 흥분하면서 뒤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어두운 이면이다. 사람이란 참 우습기도 한 존재다. 함께 웃고, 떠들고, 마음을 나누었던 사이였어도 시간이 지나면 남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어도 조금의 어색함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내 어릴 적 친구들이다. 서로 바빠서 1년에 2~3번씩 만날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매번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나의 친구들을 생각하면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지 않고 한 동네에 오래 살았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은 도움 되는 친구를 만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른들이 말하는 도움 되는 친구란 대개 공부를 잘 하고, 바른 생활을 하는 친구를 말한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도움 되는 친구라고? 친구라는 건 마음으로 기댈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 옆에 있어야 나도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서? 공부도 잘 하고, 바른 생활을 하는 친구는 나중에 크게 성공할 예정이라서? 크게 성공하고 나면 나에게 어김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테니까? 역시 어른들이 하는 말은 의문투성이이다. 그러면서도 왠지 맞는 말인 것 또한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겪은 바로는 공부를 얼마큼 잘 하든, 못 하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팍팍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안에서 그나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 값진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친구관계도 자연스레 비슷한 환경과 수순을 거치게 되어야만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박탈감과 자괴감에 친구들을 편한 마음으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고등학생 시절 편지글에 적어준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의 출처를 밝혀 이 글에 옮겨 적어본다.

 사람에게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12명의 친구가 있다는 구나. 한번 들어보렴.
 믿고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선배, 무엇을 하자고해도 믿고 따라오는 후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냉철한 친구, 나의 변신을 유혹하는 날라리 친구, 여행을 갈 수 있는 먼 곳에 사는 친구,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애인,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인 친구, 언제라도 불러낼 수 있는 술친구, 독립공간을 가진 독신 친구, 부담 없이 돈을 빌려주는 부자 친구, 추억을 많이 공유한 오래된 친구, 연애감정이 안 생기는 속 깊은 이성 친구.
-왕상한《왕상한교수의 딸에게 쓰는 편지》中.

 친구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함께 놀면 매우 즐거운 친구, 나의 모습을 치장해야할 때 더욱 빛이 나게 꾸며주는 친구, 동네에서 슬리퍼 질질 끌고 만날 수 있는 친구, 함께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친구, 솔직하게 나의 생각을 모두 말할 수 있는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 등등……. 그런데 아무래도 오랜 기간 연락을 하고,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친구라 하면 위의 12가지 친구 중에서 믿고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선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냉철한 친구,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인 친구, 추억을 많이 공유한 오래된 친구 정도인 것 같다. 그 나머지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의 관계에 있어 그 깊이가 생기려면 일정한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만큼 그 둘 사이에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난제들이 있다. 이따금 찾아오는 난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그 사람의 인성이 드러나게 된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나’보다는 ‘상대방’의 입장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사람과 가까이 하려고 한다. 내 생각만 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과 주어진 상황도 함께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친구로 삼기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는 6살부터 동네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이다. 한 때는 그 친구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답답해했던 적이 있다.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고, 행동이 느리고, 무조건 남에게 무언가 해주기를 좋아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친구에게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몰아붙였을 것이다. 20살이 넘은 이후에서인가,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사과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도리어 “네가 그런 말을 해 주어서 오히려 고마웠어. 너 아니면 누가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해주겠어.”하고 대답해주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하라며, 해줄 수 있는 한 최대한 돕겠다는 말과 함께. 그 친구의 그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의 사이를 더욱 끈끈하게 다져주고 있었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했던 그 친구도 대학생활을 거치고, 사회생활을 몇 년 거듭하며 성격과 태도가 조금씩 변화했다. 내가 그렇듯, 나의 친구들 대부분이 그렇게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우리는 서로 변화해가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탄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공감대가 형성된다.

 가장 오래된 친구가 가장 가까운 친구일까? 6살부터 알고 지낸 가장 오래된 친구에 대한 에피소드를 늘어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그 친구와 가장 깊이 있는 관계라는 뜻은 아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고 해서 무조건 가장 깊이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후로 만난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친구들이다. 나의 친구들은 공통적으로 서로 힘들 때 외면하지 않고 나서서 도와준다. 힘든 이면에 대해 험담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함께 걱정하고, 고민하며 마음 아파할 뿐이다. 얼마만큼 자주 만나는지의 횟수는 이미 우리 사이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지 오래되었다. 그저 서로에 대해 궁금해 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잘 되기를 바라면서, 평소와 같이 웃고 떠들 수 있는 것으로 나와 그들은 충분한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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