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고시합격 후 찾아온 직업적 회의(懷疑)

by 글꿈

임용고시 합격 후에도 문제의식은 계속됐다. 애초에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살아나가는 곳은 역시나 '현실'이었다. 갈수록 커지는 저출산 문제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타격을 입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경쟁체제에 내몰리게 되었다. 제도와 운영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데 어른들의 편의와 계속된 힘 겨루기로 인해 나까지 지쳐버렸다. 유아모집 경쟁으로 인해 영어, 수학, 과학 등 놀이를 빙자한 갖가지 프로그램들이 교육과정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제는 초등학교에서조차 늘어난 돌봄시간으로 인해 아이들은 더더욱 집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모든 아이들은 안락한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제도 속에 아이들의 외침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공립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교육활동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은 여전했다.


이렇게 회의감이 드는 와중에도 나의 일상은 변화가 없었기에 20대 내내 고생한 나를 위해 2-3년만 여가의 시간을 갖자고 다짐했다. 해마다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기를 반복해 왔지만 딱 몇 년만 눈 감고 아무 생각 없이 놀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생시절에는 학교를 다니며 방학 때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오히려 공휴일이 대목이었다. 취업 후에도 출근과 밀린 서류 작업, 학교과제를 하며 꽉 찬 일주일을 보냈다. 이런 일과가 익숙했던 나에겐 노는 것과 쉬는 것에 대한 적응이 필요했다. 처음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한 동안은 멍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4시 반 퇴근을 하여 집에 도착하면 6시쯤 되었는데 할 게 없으니 기분이 이상하고 무언가 잘못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뒹굴거리고, 게임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방학마다 여행일정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달성해야 할 목표에서 벗어나니 애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애초에 내 성격상 생산적인 일을 해야 직성이 풀렸기 때문에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정면 돌파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고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를 이끌어낼 무언가를 해야 한다. 직업적 회의가 온다면 다른 분야를 공부하면 된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 아파트 청약과 관련된 계기가 있어 부동산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매주 부동산 유튜브라이브를 듣고,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해보기도 했다. 해를 거듭하며 여유자금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제공부도 시작했다. 금융문맹이었던 내가 이제라도 공부를 시작하여 다행이라 여겼다.


다른 분야에 손을 뻗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은 나의 직업관에만 갇혀 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직업도 다양하며 마음먹기에 따라 나의 위치도 변화시킬 수 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이고 의지인 것이다. 문제를 돌파할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면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잠시 소홀했던 글쓰기도 다시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아이들과 함께한 교육활동과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생각나며 자연스레 문장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할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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