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내가 열심히 하면 후에 무언가 될 줄 알았다. 그 당시 나는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런 거 같다. 나의 이런 방향의 오류에 대해서 누군가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보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눈앞에 있는 것, 누군가 이거 좋다더라 하는 것들을 손에 쥐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에 취해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들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육체가 힘드니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곤함이 밀려왔다. 능률은 떨어지고, 직장 선배들한테는 혼나기 일쑤였다. 자괴감이 생겼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면 무언가는 되어 있겠지라는 생각 하며 무모하게 열심히 살았다.
40살이 되니 최소 15년 동안 열심히 한 결괏값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 열심히 해서 이 정도밖에 올 수가 없었구나 “
“ 이 정도가 끝인가? 체력도 두뇌회전도 옛날 같지 않은데 내가 더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
“왜 난 이 정도밖에 안 되지? 티브이에 나온 저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됐을까? “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하지만 무언가를 할 힘도 없는 거 같아… 무기력하고 우울해..”
나는 내가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묵묵히 내가 할 것들을 하고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출산 후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그동안 외면했던 내 모습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내 모습은 시샘으로 똘똘 뭉친 무능력자의 모습이었다. 외면하지 않은 이상 계속해서 밀려오는 초라함, 비참함. 우울함…
'괜찮아... 괜찮아...'
라고 외쳐봐도, 이미 부정적 감정이 젖어진 마음이 쉽사리 뽀송해지기가 어려웠다.
공부를 하던 중에 ‘마이크 앤스’이라는 외국 작가가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세계에서 제일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교주의와 자본주의의 단점이 부각되고 장점이 사라진 상태‘여서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했다. 이 말이 궁금했졌다. 유교주의의 단점과 자본주의 단점이 무엇일까? 나도 거기게 젖어서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교의 단점은 ‘체면, 서열,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틀림이 곧 수치화로 이어지고, 자본주의의 단점은 ’ 성과, 경쟁, 불안정‘으로 소득 자산의 격차가 생기게 되면 상대적 박탈감이 생긴다. 이로 인해 ‘ 실패하면 수치스럽고, 낙오자‘.라고 생각하게 돼서 실패의 의미가 커져버리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더 크게 부끄럽고, 더 혼자 견디게 되면서 도움이 필요한 시기를 놓쳐버리게 되고, 더 많이 비교하게 돼버리면서 사회 전체에 ‘우울한 체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그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려 가는 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는 하지 않았던 비교, 상대방이 부러워할 점을 가지고 있으면 닮으려고 했다. 그게 서로 윈윈 하는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의 것을 닮을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시기심이 생긴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부러워할 대상일 수도 있을 텐데…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책임감이 강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남편을 만나 화목한 가정을 잘 꾸리고 있다. 편안하게 살 집도 있고, 자가용도 있다. 크게 생각하면 난 잘 살고 있다. 제일 가까운 고마움과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