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20대 둘이 삽니다
세상 곳곳에 내 집을 찾아 삶을 꾸리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겁도 없고, 돈 모을 생각도 없고, 무서움도 없이.
배짱과 찬란한 꿈과, 무모한 용기가 가득 찬 시절이었다.
그 순간들을 거쳐 나의 '집' 가치관이 정착되었는데,
서울에서 새로 집을 구하기 전 그 기준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나에게 집이란.
나에게 행복한 공간이란.
내가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1. 오스트리아
외국에서 처음 혼자 살게 된 동네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인스브루크.
뒤로는 알프스 산이, 앞으로는 인강이 조용히 흐르는 조용한 동네의 작은 기숙사였다.
홍콩인 룸메이트와 함께 스키장을 다니고, 옆 동네 파티를 다니고,
쨍쨍한 햇볕이 들 때는 창문으로 쪼리를 쨍쨍 말리던,
평화롭고 공기 좋고 볕 좋은 곳이었다.
살고 싶은 기숙사를 정하고, 필요한 이불과 잔잔바리 식기구를 사서, 나에게 직접 밥을 해먹이며,
내 하루를 내 손으로 처음 일구어 본 때였다.
나라는 인간을, 나의 일상을 잘 보살피는데
얼마나 신경 쓸 게 많고 손이 가는 데가 많은지,
이 시절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대한 한 가지 명확한 취향을 발견했는데.
하나. 시내에서 떨어진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은 (아무리 알프스, 아무리 오스트리아라도)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다
2. 홍콩
가장 사랑한 나의 집이다.
홍콩에서 직접 발품 팔며 돌아다니다, 운명처럼 계약하게 된 집.
국적 모두 다른 다섯 명이서 한 집을 쓰고,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딱 1.5평 정도의 좁디좁은 방이지만.
그 조그만 방에 80만 원 가까이하는 월세를 매달 내야 했지만.
내게 편하고 좋은 싶은 '집'의 전반적인 개념이 세팅되었다.
둘. 크기가 좁아도, 창문이 크고 바람이 통하면 전혀 상관이 없다.
셋.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좋은 사람들과 밥을 나눠 먹으며 함께 살 수 있는 집이 좋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서 룸메들과 함께 밥 해 먹고, 얘기하고,
밤에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노을 지는 홍콩의 하늘을 보며 글 쓰는 일상.
살면서 경험에 따라 일, 집, 삶의 가치관이 후루룩 바뀌겠지만,
2030대에는 이 세 가지는 확실히 지키며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3. 서울
그리고 다시 서울.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딱이다.
하나. 서울 중심에 있고
둘. 내 방은 좁아도 창문이 크고, 햇볕이 잘 들고, 집 전체적으로 바람이 통하며
셋. 동생이 살던 방은 크면서도 공간 분리가 확실히 되어 있어, 누군가 들어와 살기 딱이다.
그렇다.
굳이 억지로 혼자가 된 예산에 맞게 집과 지역을 옮길 필요도 없고,
월세 때문에 동생의 워홀을 말릴 필요도 없고,
그냥 동생 방에 들어와 살 한 사람을 구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서울 땅에서 나와 맞는 룸메이트 찾기 대작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