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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속먼지 Dec 29. 2018

상호 신뢰의 원칙은 기브앤테이크 이지만, 시댁이라면?

말하자면 구차하고, 말하지 않자면 자꾸 생각나서 여기다 외칩니다.

돈이란 참 얄미운 존재다. 크면서 보니 돈 그 자체가 권력인 자본주의 시대이기도 하고.


처음 남편이 아버지는 공무원이라고 하였을 때는, 말 그대로 '평범한 가족'에게 시집가겠구나 하였다.


물론 할아버지로부터 어머님 세대에게 물려 준 강남 반포의 아파트가 있었고, 

그리고 남편이 은연 중에 '부모가 아닌 조부모의 경제력이 중요한 시대'라는 기사를 읽고는 "하긴 우리 집도 아빠가 평생 일했어도 반포에 아파트 못 샀을텐데, 친가 외가 땅이랑 아파트 좀 물려받아서 이렇게 산 것이니까" 라고 하였을 때는 '어라, 그래도 좀 평균 이상으로 사는 것으로 기대해도 되려나' 싶었다고 고백한다. 


뭐 이정도면 내가 살아온 정도는 아니어도 

주위에서 보면서 커온 친구들 집 정도의 가족이겠구나 싶었다.

그거면 됐지 뭐, 너무 잘난 집 시집 가서 노예처럼 사느니, 일반적인 집에 시집 가서 행복하게 살자.

이렇게 생각했다.


시집을 와서 보니 나의 시댁은 물려받은 아파트 등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을 쭈륵 줄 세워보면 단연 평균 이상이다. 


근데 정말 말그대로 그것들은 물려받은 자산이라, 한 번도 '현금화'되어보지 않았고, 30년을 그냥 쭉 묵혀온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자연히 이 집 식구들이 쓰는 돈은 아버님이 공무원으로서 벌어오는 돈, 어머님이 간간히 강의하시면서 번 돈 정도인데, 또 삼남매를 강남에서 좋은 대학 보내려고 키우다보니 늘 돈이 부족하다는 조바심을 갖고 살아온 집이었다. 아버님은 안그렇고, 아버님은 천하태평이고 원래 성격이. 어머님은 늘 걱정하고 늘 조바심갖고 늘 부자를 동경하고 시기하면서 살아오셨단다. (어머님은 나에게 누군가를 설명할 때면 꼭 "누구 초등학교 친구인데, 반포 자이 18층에 살면서 자기는 BMW, 남편은 벤츠타고 다녀. 엄청 잘살아" 또는 "타워팰리스 사는 꽃 가꾸는 친구인데 집 가보니 너무 좋다" 이런 말을 한다.)


재개발을 1-2년 앞둔 그 쓰러져가는 아파트에서 30년을 살며 겨울에 추운데 장판 아래 난방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돈이 아까워서, 여름에 더운데 곧 개발 될 아파트에 돈 10만원을 들여 에어컨 거치대를 설치하는 것이 아까워서, 여름에 너무 덥게 겨울에 너무 춥게 살아온 어머님이 안쓰럽기도 하였다.


다같이 부산 여행을 가서는 평범한 방 4개짜리 아파트를 에어비앤비로 묵었는데, 대리석 거실에 난방이 되어 양말을 신지 않고도 "거실에서 발이 따뜻한 거 너무 좋지않니" 라고 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천진난만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것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구나 싶어 신기하였고. 


익명을 빌어, 체면 차리지 않고, 예의 차리지 않고 정말 가장 강하게 감정을 말해도 된다고 한다면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집 사람들은 뭘 하든 돈돈. 돈 걱정을 한다. 하지만 체면은 또 있으셔서 돈 때문에 무엇인가를 못한다는 것을 절대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저 포도는 신포도라서~'라는 말씀을 늘 하신다.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고 한동안 자주 물으시길래, 요즘 애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아직 남편이 돈도 제대로 안 버는데 애를 낳으라고 하세요 어머님~ 이라고 하면 "돈 안들이고 키울수 있어 다~. 얘, 나는 한 달에 몇 백만원 주고 아이 영어유치원 보내고 그러는건 반대야. 그렇게 애 키우는건 엄마는 반대야." 하는 어머님.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제가 쏠게요~ 하고 오마카세 집으로 모시고 갔고, 시동생 도련님이 "이런 오마카세 집을 4년전에 대학 가서 처음 가보고 너무 깜짝 놀랐었다"고 말하자 민망해하시며 "아니야, 가봤어~ 얘는. 너가 기억을 못하는거지 가봤어. 엄마도 지금 기억은 안나" 하며 당황하고 웃으시던 어머님.


매번 명절마다 우리집은 시댁에 한우를 보내준다. 그걸 두번째 받은 날 시어머님은 나에게 "첫 번째때는 나도 선물을 보내드렸는데, 매번 그렇게 하기도 좀 이상한 것 같아서 그냥 이제는 안보냈어." 라고 하셨고, 그 뒤에도 우리집은 그 '이상한' 선물을 매번 보내지만 어머님은 매번 잘 드시고만 있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며느리인 나에게 "부모님께 매번 감사하다고 전해줘"라고 하기가 민망하셨는지 당신 아들에게 카톡으로 잘 받았다고 전하라는 말을 하신다.


그런 시어머님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여, 결혼식 축사에서 아버님이 어머님의 편지를 대신 읽었는데, 그 중 "버릇이 나빠질까 하여 늘 넉넉히 해주지 못하고 부족하게 해준 것 같아 미안해" 라고 하셨을 때는 그 속에 숨은 약간의 자존심을 위한 정당화 한 마디가 느껴지긴 했어도 그 마저 가엾고 그 마음이 아프실 것 같아 결혼식에서 나는 눈물을 계속 흘렸다. 




친정 엄마 아빠는 늘 쉽다. 


"시댁이 부족하면 어머님, 아버님 이건 제가 대접할게요~ 라고 하고 너가 대접해드리면 되지 뭐~"

"당연히 너 생일에 우리가 사위에게 주는 만큼 용돈 못주시겠지. 그런건 너가 이해하고 쿨하게 넘어가면 되지 뭐~"

(그럴때면 나는 마음 속으로 삐죽대며, 엄마 아빠 곳간은 크니까. 인심은 곳간에서 나오니까 엄마 아빠는 나보다 인심이 좋겠지. 한다)


물론 나도 시집와서 처음 1-2년은 저렇게 엄마 아빠처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드렸다. 그래, 공무원 가정에서 아이 셋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 복들 이제 다 받으시게 내가 도와드리지 뭐. (이제는 좀 자제 중이지만)


이사를 하시면 사고싶은 가전을 사시라며 돈을 보태드리고,

날이 좋고 계절이 바뀌면 눈호강 하시라며 좋은 꽃을 보내드리고,

크리스마스라고, 생일이라고, 어버이날이라고, 그냥 오다 보였다며 선물을 드리고,

도련님이 졸업을 하고 입학을 하면 백만원씩 용돈을 보내주었고,

좋아하시는 걸 보고 뿌듯해하기도 하고.


그렇게 계속 하면 될 일인데, 

나는 엄마 아빠가 바라는 만큼 쿨한 사람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나보다.


어버이날에 수십만원짜리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과 용돈을 또 따로 챙겨드렸는데, 그 바로 다음 주였던 내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선물을 못 사셨다며 봉투를 건네시고, 그 봉투에는 생뚱맞은 20만원이 들어있는 걸 보고 나는 약간의 배신감 마저 들었다.




그 생일이 올해 5월의 일인데 그때부터 나는 그냥 좀 혼자 몰래 삐져있다. 


어디 말하기도 너무 유치하고 창피한 일이다.


줬으면 준 거로 끝난 것이지 뭐, 내가 수십만원 봉투에 담아드렸지만, 1주일 후 돌아오는 봉투에는 가끔 주시는 반찬으로 이것 저것 수수료 떼이고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뭐. 생일이 뭐가 중요해, 나이가 거의 서른이 다되어 가는데- 


싶다가도


어머님이야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어도, 올해 태어난 조카 입히라고 버버리 코트를 사주고, 조리원 퇴소할때 꽃 백송이를 집으로 보내주고, 아주버님 생일이다 형님 생일이다 이런 저런 이벤트를 챙겨온 나에게 형님은, 그 남편은, 도련님은 어떻게 이렇게 오다 줍기 쉬운 핸드로션 하나로라도 마음을 안달래줄까.


싶어 서운하다.


풍족해서 돈이 흘러넘치는 집은 아니었고, 그래서 기념일에 외식하는 그런 문화 없이 자란 집이고, 30년 이상을 서로의 기념일에 '선물'같은 것은 하지 않는 문화에서 생활 했으니 갑자기 내가 들어와서 괜히 이것 저것 챙겨주며 성가시게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하고있다.

이런 쪼잔한 생각 하지 말자. 

줬으면 그거로 끝난거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정말 쪼잔한 거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연히 모르겠지) 아버님은 가끔 용돈을 드리면 형님과 우리의 봉투를 모으며 "어디 누가 용돈을 많이 줬는지 한 번 비교하자"고 하신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공감 못하실 수 있지만,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용돈을 드린다고 하면 코웃음을 치며 

"야 늬들 코묻은 돈을 내가 왜 받니, 너네 과자나 사먹어라. 푸하하" 하신다.


그런 친정을 들렸다가 시댁에 가서 저런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아직 20대 '머리에 피도 안마른' 자식들에게 부모가 용돈을 받는 것을 기다리고 심지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또 문화 충격에 빠진다.


사회 평균은 아님을 알고 있기에 또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바쁜데 와준 것만으로도 선물'이라며 당신들의 생일이나 어버이날에도 당연히 당신들이 결제를 하신다. 그리고 우리도 어느덧 그것에 익숙해져 정성어린 선물을 준비하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고 첫 어버이날, 어머님이 고른 한강이 보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나오는 길에 어머님 아버님이 계산대 앞에서 쭈뼛 거리며 '자 누가 내는거니' 라는 바디 랭귀지를 뿜으실 때, 그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내가 "친구들과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서, 어머님 아버님댁에서 가까우니 같이 가요~"라고 하여 모시고 간 식당에서 메뉴판을 든 채로 아버님이 "그래서 이건 누가 사는건데요" 하시는 말에 1초만에 "제가 대접해드릴게요" 하였지만 마음 속으로는 또 놀랐다는 것을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 미안. 기대만큼 그릇 큰 자식이 아닌가봐요.

마음 넓고 쿨한 척 하는 나지만, 뒤에서는 이런 쪼잔한 생각에 가끔 잠을 못자.


이틀 뒤 신정을 쇠러 시댁에 갈때 또 빈손으로 가기 뭣하여 가져갈 봉투에 용돈 30만원을 넣으며, 

나는 생일에 돌아온 20만원을 구차하게 생각하고 있는 12월 연말의 밤이다.


이럴때 나는 생각한다. 


#어른이_되고_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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