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정을 내지 않으시는 시부모님이니 좋은 시부모님이라고 할 수 있죠.
5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어린이날이 있었고, 아빠엄마를 좋아하는 내게는 좋은 날인 어버이날이 있었고. 선생님들을 항상 좋아하던 나에게는 스승의날도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생일도 있었다! 4월의 중간고사, 6월의 기말고사 사이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다. 날씨도 늘 좋은 시기이고. 모기도 없고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5월이 나는 너무 좋다.
결혼하고 나니 5월은 생각보다 많은 의무가 있는 달이 되었다.
아주버님 (형님의 남편) 생일이 있는 달이고, 용돈을 바라는 시부모님을 찾아뵈는 어버이날이 있고, 5월이 다가오기 한두달 전부터는 어머님은 항상 "이젠 이런걸 알아야한다" 며 나에게 (남편이 아닌 나를 쳐다보며) 남편 할아버지의 제사 일정을 말해주곤 하셨다.
하지만 나는 제사를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지난 4년동안은 야근하지 않는 날은 휴가밖에 없던 직장에 다녔고, 하물며 야근을 하지 않더라도, 그 귀한 쉬는 시간을 시댁 가서 접시 나르는 일에 쓸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도 "그래도 가야지"하는 성격은 절대 아니니, 다행히 이런 일로 부부싸움을 할 일도 없었다.
나는 시부모님에게 내가 제사를 이어받을 생각이 없고, 나는 그래야하는 존재도 아니며, 그럴 의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내가 아닌 본인 아드님과 담판을 지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늘 암시해왔다. 시댁에서 제사 관련 말이 나오면 호응 한번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않고 그냥 자리를 피해버리거나 벙어리가 되어버림으로써.
주말엔 시누이의 딸, 시댁의 첫 조카이자 어머님 아버님의 첫 손주의 돌잔치를 다녀왔다.
남편은 재미로 '금수저'를 선물해주자고 했지만 나는 그런 용어들에 부응하는 농담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돌반지는 백일에 줬으니 이번에는 티파니에 가서 미아방지 팔찌를 사주었다. 그 갓난아기가 대체 왜 미아가 되겠느냐만은 요즘 젊은 엄마들이 좋아하는 돌 선물 중 하나라길래.
돌잔치는 서울의 작은 호텔에서 양가 직계 형제자매까지만 모시고 하였고, 원래 예약한 날짜보다 한 주 늦게 일정을 조정하느라 인기있는 큰 방들이 모두 예약이 완료되어 가장 작은 방으로 예약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좁은 방에서 아기 옷을 벗기고 입히고, 사진을 찍고 하느라 보기만해도 진이 빠졌다.
일정이 끝나고 각자의 차를 가지고 호텔 앞에서 모여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데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5월 마지막주 일요일에 할아버지 제사할건데, 너희 시간 되니?"
올해 4월 초, 5월에 해외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하였더니
"언제 갈거니? 5월에 할아버지 제사 있는데"
라고 한 어머님을 보며 하였을때 나는 이미
"어머님은 저 보면 제사밖에 생각이 안나세요?"
라는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다.
그래도 참았다.
작년 추석, 어머님과 아버님이 앞으로 제사를 간소화 할 계획을 논의하시며 어머님이
"앞으로는 이제 제사 이런거 못하는거지뭐" 하시며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쟤가 하겠어?"
라고 하실때도 나는 여기서 "그게 왜 저의 일이예요?" 라고 하는 것과 응대하지 않는 것 중 침묵을 선택했다.
"맞아요. 하기 싫어요"나 "아니에요. 전통인데 제가 이어받아야죠" 중 그 어떤 대답도 하지않고 그냥 '저에게 왜 그런 말을 하실까..?' 이라는 표정과 태도로 침묵하였다.
그런데 또 오랜만에 본 나를,
헤어지기 전에 굳이 시간을 내어 제사일정을 알려주는 것에 너무 질려버렸다.
나는 5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항상 생일을 가족들과 챙기는 나에게 "생일 있는 주"라는 말도 없이 그냥 제사 일정만을 말해버리는 그 모습이 싫었다.
우리 부모님이 내 남편의 생일을 챙기듯이 챙기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이렇게 생일을 아예 무시해버리고 제사 일정만 말하는 것은 그냥 나는 하나의 축하받을 존재라는 생각 조차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정이 된다 안된다에 대한 대답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어머님에게 말했다.
"이런 얘기, 사위한테도 하세요?"
어머님은 민망한듯 웃음을 지으며
"어머 얘, 무슨 사위에게. 내가 이런말을 왜하니. 참나. 사위는 결혼해도 다른 집 사람인데."
여기서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사위는 왜 남의 집 자식이예요? 제가 사위보다 더 귀하게 자란 자식이잖아요."
"제가 사위보다 이 집에 결혼하러 들어오면서 몇배 더 많은 입장료 내고 들어오지 않았나요? 그럼 제가 더 예우받아야하는 것 아닌가요?"
"어머님이 이러면 저 남편이랑 사이만 안좋아지게 만드는거예요. 어머님때문에 자식이 불행한 결혼 했으면 좋겠어요?"
"저 결혼하면서 반지 하나 못받고 결혼했어요. 그래도 어머님은 저희 부모님에게 수표로 수천만원을 받으셨잖아요"
"어머님은 강남의 아파트라도 물려받고 제사를 물려받으신거잖아요."
"제가 왜 제사를 이어받아야할 의무가 있나요?"
"어머님은 그렇게 키운 형님이 이런 취급 받고 시집 생활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
"심지어 제가 어머님이 키운 자식들보다 훨씬 귀하게 자랐어요. 저 평생 집에서 접시 한번 안나르고 자랐어요."
"왜 이 집은 아들 가진 집으로서의 의무는 아무것도 안하고, 아들 가진 집으로서의 권리는 다 받으려고 하세요?"
이런 말 하면 그냥 내가 나쁜 며느리고
못된 인성 나쁜 막돼먹은 며느리고
풍족하고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면 뭐해 애가 저렇게 컸는데 싶은 아이가 되는 것이겠지.
잘 키워준 우리 엄마 아빠 욕 먹이지 말자.
이런 머릿속의 대사만으로도 엄마 아빠 까무라치겠다.
그래서 나는 딱 저 질문만 하고는 또 침묵했다.
그리고 남편과 차를 타고 돌아오며 왠지 아무 잘못 없는 남편도 싫어져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남편의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참 좋은 분이었다고 하고, 살아계셨다면 귀엽고 당차게 살아가는 손주며느리를 깜찍하다 여겼을것이라고 한다.
나는 엄마쪽 할아버지, 아빠쪽 할아버지 모두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보고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 싶다. 나는 어른들의 지헤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알고싶다. 남편의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어도 나는 참 좋아했을 것 같다.
그런 분의 추모 식사 자리라면 나는 가고 싶다.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듣고싶고,
함께 추억하고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은 당연히 접시를 나르는 존재이고, 그럼에도 절은 하지도 못하는 존재인 절차가 끼어있다면 나는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추모할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위한 추모 식사를 하게되고, 덕담을 나누는 자리라면 저를 초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