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우주속먼지 Jun 03. 2019

며느리의 투병보다 제사의 불참에 더 마음 상한 시댁에게

나는 당신들의 가족인가요?


며느리: 어머님, 제가 요즘 전화를 통 못드렸죠.. 제가 암에 걸렸어요. 
시어머님: 아니, 그럼 애비 밥은?


이라고 하는 이 괴담같은 고부지간의 대화는, 정말이지 직장에서 결혼한 사람들끼리 깔깔거리며 그러고도 남는다 남아~ 하고 이야기하는 농담거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경우, 암보다는 훨씬 약한 급성 장염으로 인한 입원이었고, 시댁의 경우, 애비 밥보다는 훨씬 중요할 조상님 제사였겠지만.






밑의 글처럼 나는 나에게 틈만 나면 제사 스케줄을 말하려는 시어머니의 행동에 기분이 상해 “이런 이야기 사위에게도 하시느냐”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내 생일이 낀 주말에 제사가 있건 말건 남편은 나를 바람 쐬게 한다며 여행 스케줄을 잡았다.


다행히 시어머님은 추가적으로 카카오나 전화를 통해 나를 채근하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어느새 남편의 캘린더와, 그 캘린더를 서로 공유 받아쓰는 나에게도 제사날짜가 기록되어있어 나는 어라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다. 남편은 그냥 엄마가 자기에게 하도 말하길래 자기 시간 되면 갈까 하여 자기 기억 차원에서 적어두었다고 한다.


그 날짜를 보니 그동안이야 정말로 바빠서 시간이 안돼서 못 갔으나 공교롭게도 주말 저녁, 것두 우리가 여행 돌아온 하루 뒤로 제사가 잡혀있으니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이 전부다. 그리 생각하니 내 마음은 또 괜스레 무거워졌다. 형태가 제사라는 형태로 나타나, 여자가 이것하고 저것 하고, 남자들은 둘러앉아 술 한잔 마시고, 막상 절할 때는 여자는 올라가지도 못하는, 그런 보기도 싫은 광경의 형태로 일어날 뿐 취지는 사실 남편의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리는 자리가 아닌가. 참 자상했다 하시고 바른 분이셨다 하시고, 며느리인 우리 어머님을 이뻐하셔 할아버님이 그리 일찍 돌아가지 않으셨으면 어머님은 본인의 시어머님에게 서운할 일이 조금 덜 했을지 모른다고 하셨다. 아니면 서운할 일 있어도 아버님이 이뻐해 주시니 마음이라도 풀렸거나.


이랬든 저쨌든 아무리 나라도, ‘마던’한 성관념을 가진 ‘마던’한 여성이자 며느리가 되고 싶을 뿐, 시할아버님을 기리지 않는 나쁜 며느리가 되는 것은 영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하여 그래- 그럼 뭐 잠깐 가자- 어차피 내가 간다고 뭐 뼈 빠지게 일 시키는 것도 아니고 오기만 하라는 건데 뭐-하며 미안해하는 남편을 달랬다. 마음속으로는 좀 더 주판을 굴려, 남편이 나 없이 우리 엄마아빠랑 골프 한 번 쳐주는 거로 효도 갚는 셈 치지 뭐- 하며 생각하면서도 그게 어떻게 같냐, 남들은 골프 치려고 적금 든다더라 싶기는 했다.






그런데 생일이 낀 주에 나는 음식을 잘못 먹고 속이 안 좋았던 신호를 캐치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심하게 하여 급기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배출은 계속하여 탈진과 오한, 오심이 왔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밤새 아프고도 다음날 스케줄을 다 하고 스케줄이 끝난 오후 6시가 되어서야 근처 병원을 가니 6:30 병원 마감이라 링거는 못 놔준다던 분들이 열을 재더니 38도가 넘는 열을 보며, 이 열을 가지고 왜 진작 안 왔느냐, 내가 옷 갈아입고 병원 정리하는 동안이라도 계속 링거 맞는 거로 해야겠다며 침대에 눕혀 나에게 링거와 주사를 빵빵히 놔주셨다. 병원 분들이 사복 갈아입은 것을 본 것도 처음이고, 같이 병원 문 닫고 나오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그게 수요일이고 이틀을 끙끙 앓고 나니 내 생일인 금요일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꾀죄죄하고 핼쑥한 모습이었고 여전히 음식을 먹지 못했지만 남편은 케이크를 사 와 초를 붙여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걸 영상으로 찍더니 시댁 채팅방에 공유까지 하였다! 시어머님 아버님은 생일 축하한다 말해주었고 나는 그런 못생긴 모습에 대한 나름의 변명이자, 아픈 사람의 특징인 관심 줍시오 저 아픕니다-답게 “감사합니다~ 제가 음식을 잘못 먹어 장염에 걸려 며칠 고생하였더니 몰골이 저러네요. 저런 걸 공유하다니!” 하였다. 그리고 아직 생일 축하한다 말하지 않은 아주버님의 생일축하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 채팅방엔 일언의 미동도 없었다.


막상 보내고는 아프기에 정신이 없어 몰랐으나 월요일 아침이 되어 힘이 좀 생기고나니 어머님에게 고생하셨다고, 아파 못갔다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좀 위로해드릴까 생각하며 카카오톡을 열어보니, 허공에 덜렁 써져있는 나의 저 “장염으로 고생하여 몰골이 말이 아니”라는 말이 유독 쓸쓸해 보였다.






나를 제사에 부르기 위하여 몇 번을 말을 꺼내고, 얼굴 볼 때마다 스케줄을 물으시고, 일정을 알려주시던 어머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글에도 덧글에도, 우린 무상 노동으로 취급받는 존재일 뿐이라고, 며느리를 노예로 생각할 뿐이라고 하는 말에도 사실 내 마음에는 어머님은 이제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니 불렀겠지, 내가 우리 할아버지 추모식에 가는 것은 당연하니까. 나도 가족의 일원으로 오라고, 와서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라고 부른 것이겠지 싶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그래도 아직은 따뜻한 그 테두리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한 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고, 또 나를 반겨주시는 마음에 보답 차원에서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가족으로서의 도리를 못하는 것은 아닐까 죄송스럽기도 했다.


어머님은 본인의 따님이 장염이라고 연락이 왔다면, 그 딸의 딸인 손주가 장염으로 몰골이 말이 아니라고 연락이 왔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생각하니 이내 서운함이 생겨 그만 나도 연락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딸이 힘들까봐 직장에 다니는 딸을 대신하여 주말에도 아기를 당신 집에서 재우고, 딸 야구보러 가라고, 평일 저녁 늦게까지도 아이를 돌보아주는 그 어머님은 딸이 장염에 걸리면 죽을 만들어 배달하는 것은 물론이요, 괜찮니, 제사는 무슨, 신경도 쓰지마라. 몸이나 잘 간수해라. 하셨을 것이다. 손주가 아팠다? 신에게 제발 아이가 아닌 저를 아프게 하시오 두 손 빌어 기도라도 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족'으로서 당신들의 제사에 초대되었겠지만, 아프게 되어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였을 때, 그 어떤 위로도, 한 마디의 영혼 없는 쾌차하라는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이쯤되니 나는 옹졸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나를 가족으로서 부른 것일까.


귀엽게 전화를 해서 “어머님~ 죄송해요 너무 아파서 못 갔어요~ 아무리 그래도 어머님 저 서운해요~ 어떻게 장염으로 그렇게 고생하고 병원 링거를 두 번이나 맞는 며느리한테 몸 괜찮냐 잘 쉬어라 답장 한 번을 안 주세요~ 저도 서운해요~” 할까. 일반 사회생활이었다면 나는 그렇게 귀엽게 말하고 풀고, 나도 사과하고 죄송하다고 하는 그런 사람인데, 도대체 이 시댁이라는 얽히고설킨 타래에 매달려있는 나는 그런 귀엽고 깜찍한 능력을 잘 발휘를 못하곤 한다.






나는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막내딸이라 시집와서 생기는 서운한 일, 속상한 일, 웃긴 일 모두 엄마 아빠에게 일러바치곤 하는데 그러면 엄마아빠는 항상 허허 웃으면서 너가 져드려라- 하시거나 원래 옛날 분들은 다 그런 거야- 하신다.


그리하여 투병 중이라 누워있는 중 엄마아빠가 딸 괜찮은지 영상통화를 걸어오니 나는 1초 정도 이 서러움을 일러바칠까 하였으나 이것은 나의 부모님조차 너무 마음 아파하실 일이겠거니 싶어 말을 못 했다.





엄마 아빠,


곱게 키워 빨래 한번 못 개게 한 막내딸은 엄마아빠가 돈 더 들여 보낸 시집에서 제사 오라는 말은 들어도, 아픈데 몸은 괜찮으냐는 말은 못 듣고 삽니다만


그래도 저는 또 잘 살고 있습니다.


뭔지는 모를 하나의 존재로서 이 새로운 가족에 속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작가의 이전글 이런 말, 사위에게도 하세요? 라고 시부모님에게 말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