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 자네도 그걸 믿는가? 하여간 인간들이란.
“끼이익-“
“쾅!”
부우웅-
“털썩”
삑-삑-삑-삐익-삑-
민철의 귀에 기계음이 들린다. 고통은 없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 본다. 응급실이다.
사방에서 모니터 알람이 삑삑 울린다.
위급한 환자 때문일까. 의사와 간호사들은 소리치며 뛰어다닌다.
어떤 환자는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보호자들이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TV에서 보던 응급실과는 사뭇 달랐다.
생명을 걸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전쟁터 같았다.
“어이 민철, 일어났는가”
병상 침대 머리맡에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서 민철을 보고 있다.
“누구…세요…? 혹시 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신 분…?”
민철의 질문에 놀람과 고마움이 섞였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아니, 나는 저승사자네. 자네를 데려다주진 않았어. 오히려 데리고 가려고 왔지”
민철은 자신이 저승사자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남자가 황당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인 시대에 자신을 저승사자라고 소개하는 남자의 정신상태도 의심스러웠다.
비록 자신이 지금 병원에 있는 건 맞지만,
이렇게 멀쩡한데 어딜 데려가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철은 애써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저승사자님, 오늘 잘못 찾아오신 것 같아요. 제가 교통사고 난 건 기억나요. 근데 다행히 아무데도 다치지 않아서 곧 퇴원할 수 있어요. 아픈 곳도 없어요”
검은 옷의 남자는 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민철, 베개 쪽을 보게.”
민철의 눈에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엇??? 어??”
민철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검은 옷의 남자와 누워있는 자신을 번갈아 쳐다봤다.
“민철이, 자네는 지금 죽기 직전이야. 교통사고가 났었고, 운전자는 뺑소니. 지나던 사람의 신고로 병원에 실려왔지만, 치명상으로 회생 불가능. 이제 곧 목숨이 끊어질텐데, 내가 좀 지체하는동안 혼이 먼저 분리된거네. 지금 말하고 있는 건 자네의 혼이야.”
민철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죽는 날이 오리라는 걸 모른 것은 아니지만 그게 오늘이라니.
억울했다.
앞으로 더 좋은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찢어지게 가난해도 참고 희망을 가졌다.
힘들어도 더욱 노력했다.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난데없이 끝나버렸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뭐하러 그렇게 살았을까.
이렇게 예상하지도 못한 때에 자신의 동의도 없이 끝나버릴 것을.
“왜!! 왜 나에요?!! 왜 오늘이에요?!”
민철은 북받치는 감정에 울며불며 저승사자에게 따졌다.
“나는…나는! 엄마도 아프고!! 내가 돌봐야 되는데…우리 엄마 어떡해…우리 엄마 내가 돈 벌어서 좋은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먹고…같이 여행도 가고!! 매일 웃게 해줄라고 했는데…아직 하지도 못했는데!! 내 꿈도…나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못했단 말이야…아직 시작도 못해봤다고…밤낮없이 알바에 취직준비에…!! 시작도 못했다고…”
“이게 네 운명인걸 어찌하겠느냐.”
저승사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민철은 무릎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한참을 흐느끼던 민철은 눈물로 젖은 얼굴을 들었다. 저승사자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민철이 저승사자에게 따지듯 물었다.
“저기요, 저승사자님? 우리 인간들은 모두 태어난 이유가 있고, 그 삶이 각자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한 이유와 의미가 뭡니까? 고난이 제 인생의 의미입니까?”
저승사자는 웃음을 참으려고 얼굴을 잠시 씰룩이더니 결국 폭소했다.
“으하하하핫! 아하하하핫! 자네도 그걸 믿는가. 하여간 인간들이란 한심해.”
저승사자는 말을 이었다.
“자네가 태어난 이유는 인간들의 성욕과 본능, 자손번식의 욕구에 따른 성행위. 그 생물학적 이유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네. 삶의 의미? 어차피 죽음으로 종결되는 인생인데 의미가 있을리가 있겠는가. 아무리 현생에서 대단한 것을 이룬다고 해도 저승으로 가져갈 수도 없지. 다시 태어나면 이전의 기억도 남지 않네. 각자 삶에 의미가 있다? 인생에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 인간들이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해.”
민철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고난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철이 또 물었다.
“다시 태어날 때 이전 인생들이 반영되지는 않나요? 착하게 살았으면 좋은 형편의 가정에 태어나게 해준다든지, 나쁘게 살았으면 힘든 인생으로 태어나게 한다든지.”
저승사자는 턱과 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 완전한 무작위네. 생명이 탄생하는 순서에 맞춰 대기하고 있는 혼들을 보내줄 뿐이지. 그렇게 따지면 자네는 이번생에 아주 풍족하게 누리며 장수해야지. 자네 예전 인생들도 이번생과 딱히 다르지 않았거든.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보통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서 생기는데, 자네 인생은 그렇게 흘러온 것이 없었어. 전부 비명횡사,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급사… 편안하게 인생을 마친적이 단 한번도 없었지”
민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가시죠. 여기서 더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네요. 저승까지 가는 길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이쪽으로 따라오게.”
그 때였다.
저승사자가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고개를 잠깐 돌린 사이에 민철이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뛰었다.
저승사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몇 초간 민철의 뛰는 모습을 바라봤다.
“허허 이사람…저승사자를 상대로 겨우 뜀박질로 도망가려 하다니.”
저승사자가 몇 발짝 크게 내딛으니 민철의 바로 옆까지 따라왔다.
민철은 급히 오른쪽 복도로 방향을 꺾는다.
저승사자도 여유있게 따라붙었다.
민철과 저승사자는 10분간 병원을 헤집고 뛰어다녔다. 하지만 지친 것은 민철 뿐이었다.
전속력으로 뛰어다니던 민철은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쓰러졌다.
민철은 숨을 거칠게 토해내고 있다.
그 옆에는 저승사자가 지친 기색없이 서있다.
저승사자가 입을 열었다.
“민철, 무엇이 자네를 그렇게 아쉽게 하는가? 말해보게”
민철의 눈에 또 눈물이 흘렀다.
“저승사자님, 제발…저 이렇게는 못갑니다! 제 예전 삶들도 다 비참했다면서요. 왜 제게만 이런 삶이 반복되냐구요! 왜!! 전 이렇게 못죽어요. 저 놔주세요.”
민철은 흐느끼며 계속 말했다.
“다음 생에도 개고생 할지도 모르는데, 저는 이번 인생이라도 최선을 다해 제대로 살고 싶어요. 매일 아침 설레며 잠에서 깨고 뿌듯함으로 하루가 채워지는 진짜 인생! 한번쯤 경험해보고 죽게 해줘요. 그래서 우리 엄마도 행복하게 해줄거에요. 내가 엄마보다 먼저 죽으면 우리 엄마 슬퍼한단 말이에요….”
민철은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채로 한참을 울었다.
저승사자는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네 나와 약속하나 하지.”
저승사자의 말에 민철은 고개를 들어 저승사자를 봤다.
저승사자가 말을 이었다.
“저승에 행복한 영혼을 많이 보내주겠다고 나와 약속하세. 약속하면 오늘 자네를 이승에 두고 가겠네.”
“그게 무슨 말이죠??” 뜻밖의 제안에 민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즘 저승은 말이야… 저승이 생긴 이래 이렇게 슬픈 영혼들이 많은 때가 없었네. 많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게만 살다 오고 있어. 점점 각박해지는 사회, 커지는 빈부격차, 환경 오염, 인간들의 이기심, 올라간 평균수명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 시스템… 인간들이 옛날보다 오래 살게 됐지만 행복도는 오히려 낮아졌지. 다시 이승에 내보낸다 한들 어차피 똑같은 세상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도 편치 않아. 나는 저승이 슬픔과 아쉬움, 후회로 가득 찬 곳이기를 바라지 않네.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누리고 만끽했던 영혼들이 그 다음생에 대한 기대로 설레어 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네.”
“그…그래서요?”
“자네가 원했던 인생을 살되,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승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도 신경 써 달라는 말이야. 주변에 친절을 베풀고,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눠주게. 정의를 지키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게.”
저승사자의 제안에 민철은 당황했다.
죽음의 사자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주겠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거 저승사자의 규칙을 어기는 것 아닌가요?”
민철의 질문에 저승사자는 민철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염라대왕이 나에게만 준 능력이 하나 있네. 나의 저승사자가 되기 전 이승에서의 삶도 자네와 다르지 않았어. 매번의 생이 힘들기만 했던걸 알게되자 다시 태어나기 싫었어. 그 의미없는 고통을 반복하기 싫었거든. 또 한번 염라대왕 앞에 가게 된 날, 나는 윤회의 명단에서 빼달라고 염라대왕에게 부탁했다네. 이 고된 반복에서 제외해 달라고.”
저승사자는 말을 이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내게 저승사자 직을 제안했지. 난 또 싫다고 했네. 인간들이 가장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죽음의 순간에 항상 가까이 있는 것도 너무 괴로운 일이거든. 내가 막무가내였지. 저승에 간 영혼은 영원한 윤회를 거치거나 저승에서 부여한 일을 해야만 하거든. 그런 나에게 동정심을 느낀 염라대왕이 한가지 비밀 제안을 했지.”
“그게 뭔가요?” 민철이 물었다.
저승사자가 말했다.
“ ‘네가 저승사자직을 맡아주면 1년에 한번씩은 한 명의 생명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주겠다. 이 능력은 너처럼 힘들게만 살다 죽게 된 사람을 위해서 써라. 그리고 네가 살린 그 사람이, 너 같이 힘든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라.’”
“음……” 저승사자의 말에 민철은 고민이 많아졌다.
“어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저승사자가 물었다.
“좋습니다. 받아드리지요.”
“악수로 거래를 확정 짓도록 하세”
저승사자가 일어서더니 손을 내밀었다.
민철도 일어나 저승사자의 손을 잡았다.
“자 그럼 나는 가겠네. 언젠가 다시 만날테니, 그때까지 잘 지내게.” 저승사자가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럼 저는 뭐부터 해야 하죠?” 민철이 저승사자의 뒷모습에 대고 물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게. 조건없는 베풂이 멀리 있는게 아니라네”
저승사자가 멀어져 갔다. 주변이 하얗게 물들고 있었다.
민철은 몽롱해졌다. 그리고 곧 정신을 잃었다.
삑-삑-삑-삐익-삑-
민철은 눈을 떴다. 다시 응급실이다. 이번에도 고통은 없다.
몸을 일으켜 베개쪽을 뒤돌아 봤다.
아까처럼 끔찍하게 다친 자신이 누워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몸과 혼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손으로 뺨을 꼬집어 본다. 약간의 통증이 살아있음을 알게 해준다.
민철이 일어난 것을 본 간호사가 다가왔다.
“어머 일어나셨네요. 선생님! 이 환자분 깨어나셨어요!”
의사가 민철에게 뛰어오더니 말했다.
“아…깨어나셨네요. 몸은 어떠세요?”
“제가 응급실에 있는 이유를 모를 정도로 컨디션이 괜찮네요. 푹 자고 일어난 기분이에요”
의사는 당황과 놀라움의 기색이 역력했다.
“의사로서 이렇게 설명하는게 썩 탐탁지 않지만…지금 이 상황은 환자분께 기적이 일어났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환자분께서 병원에 실려올 때까지만 해도 희망이 없었습니다. 겨우 숨만 붙어있는 정도였죠.”
의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얕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몇시간 전에 갑자기 호흡과 맥박이 정상인의 수치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뭔가 실수했나 싶어 다시 처음부터 검사를 다시 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죠. 골절부터 내장파열까지…분명히 처음 병원에 실려왔을 때와는 다르게 치명상을 발견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피부에 외상만 조금 남아있는 정도입니다.”
“저승사자와의 거래가 성사됐구나…” 민철이 읊조렸다.
“네…??”
“아, 아닙니다. 저도 정신이 없네요. 저… 그럼 퇴원해도 되나요?”
“네, 지금 아무 이상이 없으시니 퇴원하셔야죠. 혹시 몸에 뭔가 이상을 느끼면 빨리 병원으로 방문해주시구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간호사가 다가왔다.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제 옷이 아닌데요?”
“원래 입고 계시던 옷은 다시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어요. 이 옷은 수납창구에 맡겨져 있던 옷이에요”
“아…네…감사합니다. 근데 돈은 얼마나 내야하죠?”
“돈은 옷과 함께 봉투에 들어있었어요. 이민철씨 치료비라는 메모와 함께 있었습니다. 다 처리됐으니 바로 퇴원하셔도 됩니다.”
민철은 병원을 나왔다. 아침이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누군가는 생과 사를 오가지만 태양은 여지없이 다시 떠올랐다.
민철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무엇이, 그리고 어디까지가 진짜 있던 일인지도 헷갈렸다.
서울의 아침 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출근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무표정에 새삼 놀란다.
뭘 그렇게 봐야할게 많은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계속 걸었다. 길 어디선가 맛있는 밥내음이 풍겨왔다.
주위를 둘러봤다.
저쪽에 밥차로 개조한 트럭에서 무료 급식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거 뭐하는 거에요?” 민철이 배식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우리요? 이 동네 힘든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식사드리고 있어요. 봉사활동이요.”
자원봉사 하는 아주머니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도와드려도 될까요?” 민철이 조심스레 물었다.
“일손 부족했는데 마침 반가운 소리네요. 저쪽에 지금 국 퍼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르신들 국 좀 퍼서 드릴래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보자!’
민철의 얼굴에도 따뜻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60년 뒤 어느 봄날, 광화문 광장.
민철의 영결식이 열렸다.
100만명의 사람들이 민철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몇 년전 민철이 표지를 장식했던 TIME지를 가슴에 안고 있다.
‘나의 친구이자 은인 이민철, 안녕히 가시길’
‘당신의 마음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게요’
‘같은 시대를 산 것이 영광이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을 적은 종이를 들고 있다.
광화문 광장 하늘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던 저승사자가 민철에게 물었다.
“민철, 이제 미련 없는가?”
“미련 남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내 인생, 후회없이 노력했습니다. 웃음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이웃과 함께 행복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손해보더라도 정의를 따랐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으니, 죽었지만 죽지도 않았죠.” 민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영결식까지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