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은 사랑을 먹고 자랐다
어젯밤 꿈에 외할머니가 나왔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사시던 한옥집도 나왔다.
벌써 수 년이 지났는데. 조금도 옅어지지가 않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흐느끼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외할머니 꿈을 꾼 아침이면 집 근처에 있는 산 속으로 들어간다. 인간사 멍에와 시름을 흩어주는 곳.
나는 예나 지금이나 봄 산에 오를 때면 움푹 패인 두렁 곳곳에 허리를 기역자로 굽힌 채 멈춰서게 된다.
그리곤 어미 두꺼비가 몸을 풀어 숨겨 놓은 알끈들을 찾는다. 덩어리진 점액 속에서 조롱조롱 얽힌 채 곧 태어나려고,
이 세상이라는 곳엘 나와 보려고 톡톡 뒤채는 까만 점들을 애틋하게 응시한다.
공들여 나와 땅을 밟아 보면 좋은 일이 있을까. 있을 거야.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곧 바닥을 보일 듯 졸아 붙어가는,
갈변한 솔잎이 수북이 쌓인 두렁 언저리에 가방 속 남은 생수를 꺼내 들이 붓는다.
너희들 엄마는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을 견디다가 온다 간다 말 없이 땅으로 스며들었겠지.
유독 운동성이 좋고, 금방이라도 형태를 갖출 것만 같은 까만 점 하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올해도 어김 없이 나타나줘서 반가워. 이제
아무도 선뜻 나서서 가르쳐주지 않는 대신
땅 고동과 하늘 내음과 빗줄기가 너희를 일으켜 세울거야.
의식이 생길 거고 친구도 적도 생길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너희의 길을 가야 해.
생명을 보존하려면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할거야.
너무 많아도 적어도 이로울 건 없어.
인간들은 갑자기 시원한 그늘을 뽑아 없애고 생명이나 다름 없는 물길을 가로채기도 할 거야.
수도 없는 반칙, 반칙들이 너희의 신경을 교란시키겠지.
네모난 건물 같은 게 세워 지거나 하얗고 동그란 공 같은게 자꾸만 날아오고 독한 약냄새를 풍겨오기도 하겠지.
그리고, 불꽃.
미처 알아채고 피할 수 있게 되기 전에, 모두를 집어삼켜버리는. 그런 재앙같은 불꽃이 우수수 일어나는 일도 더러는 생길 수 있겠지.
운 좋게 그런 것들을 피해서 가다보면 뿔뿔이 흩어지게 돼.
그 다음 계절까지도 살아 남았다면, 때가 된 거야.
서로를 다시 만나야 해. 제법 큼직한 몸집을 갖추고 노련한 사냥 기술을 익혔을 무렵이면, 거부할 수 없이 하나가 될 누군가를 사고처럼 만나게 되겠지.
그 때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상대를 꽉 붙잡게 될 거야. 너희는 지난 두려움과 외로움을 잊은채 함께 천국을 향할거고,
그리고 너희들 중의 하나는 초승이나 그믐의 어느 밤, 시간이 시작되었던 야트막한 둔덕 너머로 조심조심 되돌아가 홀로 몸을 풀게 되겠지.
그리고 다시, 이 세상에 너희와 꼭 닮은 무수한 까만 점들을 산란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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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들처럼 한 데 모여 이리 저리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며 치고 받고 자지러지던 사촌오빠들, 동생들.
그들 사이에 운 좋게 딱 하나 여자라고 챙김 받고 자란 유년의 첫 기억은 항상, 외할머니네 앞마당이다.
외할머니는 매일 인시와 묘시 사이에 깨어나 먼저 요강을 비우고, 우물에 두레박을 띄워 물을 길어올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지표면 저 아래서 세상 위로 천천히 올라온, 시리고도 맑은 새벽 첫 지하수는 단 한 번도 인간들 몫이 아니었다.
서낭당 큰 나무 앞에 정한수를 모셔놓고서 할머니는 이북으로 끌려간 오빠들의 생환을 빌고 또 빌었다.
와세다 대학이란께.
그으 당시에 와세다 대학으루 아들이 서이나 유학을 간 집은 구례에서 우리 집 뿐이었응게.
대충 고랫짝 한옥집에 동네 끈 떨어진 머슴이며 전쟁 고아를 거둬들여 글 공부며 옷 지어 입히고 짝 맺어주고 사랑채 내어주고 하는, 히스토릭한 터줏집 막냉이 딸이었다는 외할머니의 타령은 별로 길지도 짧지도 않았고,
당신이 아무런 책임을 지고 살지 않아도 되었던 찰나의 처녀적-까지에 불과했기 때문에 나는 그 자랑을 항상 성의 있게 들어드렸다.
대대손손 가가호호 잘 살아야 마땅했을 이야기의 전개는 항상,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오빠 셋이서 독립 운동, 학생 운동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정치-사상극으로 장르를 급선회했고, 함께 듣던 사촌오빠들과 동생들은, 즉 사내 녀석들은 재산이 공중 분해되는 그 대목에서 늘 분통을 터뜨렸다.
일본에 유학 까정 다녀온 모던-보이 엘리트 오빠들이
정말로 하얀 빛깔을 띈 말을 타고 금의환향을 하게 된 일이,
동란을 겪으며 멸문지화의 길로 역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집안 아녀자들은 횃불과 몽둥이와 군홧발과 총알을 피해
손에 집히는 대로 봇짐을 꾸려 어린 것들을 들쳐메고 삼삼오오 흩어졌다.
박 씨 집성촌. 그들 모두가 한 데서 나고 자란 전라도가, 푸근한 어머니 지리산의 품이 역설적으로 가장 위험한 킬링 필드로 변하기까지는 딱 닷새 정도가 걸렸다고 하셨다.
군인들은 사촌의 팔촌, 가솔 하나 하나까지를 다 수소문해 뒤를 밟아왔고 니네 집안 남자들을 어디로 숨겼나며 살아남은 핏줄들의 머리채를 잡고서 전기고문을 일삼았다.
그들은 상명하복을 할 뿐이었고, 박 씨 여자들은 진짜 모르니까 모른다고 대답할 따름이었다.
말하자면 위로부터 메다 꽂힌 어떤 폭력에 종지부를 찍을 명분이, 땅으로부터 신통하게 솟아날 수는 없었다.
자매들 중 영특했던, 오빠들이 두고 간 사서삼경을 눈동냥하며 글공부도 제법 했던 외할머니는, 그 난리통에 전라도를 등지고 용감하게도 연고 하나 없는 부산행을 택했다.
외할머니가 부산을 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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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비슷한 집안끼리 어릴 적부터 짝을 지어 주어 당연히 이듬해면 내 서방이 되려나보다 하고 받아들였다는, 야무지고 근검하고 옹골찬 남자.
순하디 순했던 그 남자가, 아직 식을 올리기도 전인데 도매금으로 붙들려가서 전기 고문을 당하고도 원망 한 마디 하지 않는 것을 본 그 긴긴 밤.
미안하다고 숨죽여 우는 외할머니에게, 외할아버지는 그저 자네는 괜찮은가, 한 마디를 하였다고 한다.
그 한마디에 그녀는 결심을 굳혔다. 저 잔인 무도한 자들이 뻗쳐오지 못할 곳으로 가야것다. 신랑 각시 맺고 아그들도 주렁주렁 낳구선 보란 듯이 살아야 쓰것다.
지켜야 할 것이 생긴 촌 여자는 원행을 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 먹은대로 부산에서 총 일곱 명의 아이를 풀었고,
개중 셋은 태어나자 마자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애도의 시간을 길게 가질 수도 없었다.
큰 항구를 낀 자갈치 시장에는 항상 일손이 모자랐다.
어리디 어린 전라도 부부는 시장에서 팔다 내버린 시든 배춧잎이나, 손질하고 떨어져 나온 생선 대가리 같은 것을 빌어 얻어와 풀떼죽을 끓여 먹으며 종일 손발을 움직였고,
번 돈은 모두 저축을 했다. 입덧에도 일을 했고 만삭에도 일을 했고 몸조리도 스스로 했다.
시작과 끝을 가르쳐줬더라면- 하는 어머니, 아버지와는 이미 미성년에 생사이별을 달리 한 여자는 그저 생존 기계나 다름 없었다. 먹은 것도 부실한데 당최 어디에서 솟아나는지 모를,
불가사의한 힘으로 숱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어린 부부는 동네에서 차츰 인망을 쌓아나갔고 마침내는 작은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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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룡사,라는 이름의 양복점을 광복동 노른자땅 한 귀퉁이에 개업 한 날. 부부는 부산에 자리 잡은 이래 처음으로 밤을 새워 사발을 주고 받으며 맥을 탁 놓아버리고는 실컷 울었다고 했다.
스물 다섯 밖에 안 되었는데 자식을 넷이나 이고 진 채로 종일 잡일을 보는 아내가 부박한 시장통 최전선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생계를 꾸리는 동안, 외할아버지는 소개로 들어간 광복동에서 양장 기술을 열심히 배워 솜씨 좋은 테일러가 되었다.
새마을과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양복 한 두어 벌 쯤은 맞추어 입는 것이 대유행했던 시절에, 부부는 발빠르게 진입해서 시장의 수혜를 입게 되었다.
길바닥에 널부려져 노상 구걸을 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국밥 한 그릇이 간절했을 터이나,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살아지게 된,
번듯한 직업 교육을 받은 생산가능 인구들이 점차 늘어나며
꾸밈에 대한 욕구라는 것이 번져나갔고 패션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돈‘이 되었다.
워킹-클래스에서 생산자로의 변모는 눈에 띄는 생활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떠꺼머리에 싯누런 콧물에 버짐을 달고 살던 아이들의 입성과 땟깔이 달라지고
(일제 조지-루시 코끼리 보온 도시락을 학교에 가져온 건 전교생중에 딱 자기 하나였다는 울 공주 엄마의 돌림노래 자랑,)
집이라는 것이 생기고 직원을 여럿 맞이하고 세무 공무원이라는 존재와 철철이 독대를 하게 되었다.
전라도 구례에서 부산 초량동으로 피난길에 오른지 칠 년 만이었다.
그처럼 강인했던 생활력의 부부에게도 내상을 입히는 것은 있게 마련이었으니, 대저 사람이고 가족이었다. 재산을 하루 아침에 통째로 빼앗긴 채
수저 한 벌과 놋사발 하나씩만 들고 도망쳐 나온 부부는, 정부와 은행을- 시스템을 끝끝내 믿지 않았더랬다.
그래서 번 돈을 죄다 안방 캐비넷에다가 현금으로 쌓아놓기만 하다가, 일정 금액이 모이면 근처에 매물로 나온 작은 점빵들을 하나씩 사들이는 식으로 노후 대비를 했다.
소문을 들은 전라도의 식구들이 하나 둘 의탁을 하러 모여들었고, 책임감 강한 부부는 상태가 각자 조금씩 성치 않아진 양가의 동생들을 거두며 그렇게 집안의 기둥이자 부양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양장 기술을 배우기가 너무 고되고 어렵다고 앓는 소리에 불평을 일삼던 둘째 남동생이, 캐비넷 속의 현금을 몽창 쓸어다가 사라진 날 밤에도 외할아버지는 군말없이 주문 받은 물량을 맞추어 내려고 미싱 앞에 앉았노라고 했다.
먹고 살 만 해지자, 비빌 언덕이 확고해보이자 여유들을 부리고 살살 속을 썩이던 가솔들의 지루한 신파가 종종 터져 나올 때마다 태워가는 궐련의 갯수가 늘어만 가던 외할아버지.
동네에 버려진 개나 굶주린 고양이가 보이는 대로 족족 데려와서 잔반이라도 먹이던 외할아버지.는
결국 폐암으로 애써 일궈둔 좋은 시절을 못다 누리고 환갑을 갓 넘기자마자 하늘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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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사랑이자 이미 출가한 아이들의 아버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모험 속으로 내처 뛰어들게 한, 거울의 맞은편 같던 존재.
그 부재가 사무치게 와닿았던 외할머니는 남편의 사후에
집에 모시던 신주단지를 모두 정리해버리고 천주교로 귀의하셨다.
남편을 올려 보내고 하느님을 만나게 된 할머니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여행에도 산뽀에도 차츰 흥미를 잃어갔다.
그저 방 안에 오도카니 앉아 우리들을 위해 조석으로 기도를 하고, 깍둑 썰은 당근이며 햇무 조각들을 우물거리면서 티비 연속극을 보는 낙으로 여생을 소일하셨다.
방학이라고 내려와보면 그처럼 생기를 잃은 외할머니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속이 상했다. 삭아질 일만 남은 어떤 시간에 대한 슬픈 예감.
할매- 내 왔다! 나는 한옥집 입구에서부터 그렇게 소리를 치며
가방을 대청마루 위에 턱 올려놓는 것으로 짐짓 쇼맨십을 부려가며 등장을 알렸었다.
매일이 단조로웠던 우리 할매는 전화조차 하지 않고 불쑥 찾아오는 나의 의외성을 참 좋아라 했다.
할머니 재밌으시라고 일부러 그랬던거였다. 우스꽝스럽고 연극적인 손녀딸의 목소리를 알아챈 그녀는 그 즉시 목침을 걷어차듯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것은 애초부터 앓은 적 없는 노인이었던 것 마냥, 미닫이 문을 열고 쏟아지듯 뛰쳐나와 온몸으로 반겨주셨다.
누.. 누고! 우리 아그? 그래, 내다! 아이이 또 테레비 보고 있었나!
돌처럼 뭉친 어깨를 주물러드리는 것도 잠시,
노인의 억세고도 따듯한 손에 나꿔채인 채로 동네 구석구석에 인사를 돌게 되는 수순이었다.
야가요, 하고 외할머니는 내 두 손을 무슨 링 위의 챔피언 소개하듯 쭈욱 잡아 빼 올리며 자랑을 했다.
스-울로 대학을 갔단께. 평생 학교 근처에 못 가본 것이 한이었던 외할머니에게는, 와세다 대학을 나온 세 오빠와 서울로 대학을 간 손녀가 자존심의 근간이었다.
별로 좋은 학교를 간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내향적이고 유약할 따름이었던 나는 그런 넘치는 찬사가 어색하기만 했다.
엄밀히는 그녀의 생을 갈아넣은 희생에 의탁하여 자유를 빌어 온 처지일 뿐이었기에,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몹시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그저 조용히 그녀의 자랑거리가 되어주는 것으로 족했다. 그녀에게 나는, 단 한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는 예외적인 어떤 존재였다.
그녀의 순수한 기쁨이자 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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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랑으로 애지중지 호명되다가 벌이를 하는 공간으로 회귀할 때면, 내 속은 검게 물드는 날이 조금 더 많았다.
졸업 후 서울에서 글밥을 먹으며 보낸 시간들은 나이브했던 나에게 사회의 다종다양한 역학관계를, 먹이사슬을 배우고 익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노상 수면 부족과 과로에 시달렸다.
선배들은 정말 어디서 그렇게 끝도 없이 일을 따오시는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삶과 맞바꾼 경력은 쌓여가는데 손을 댄 일에 좀처럼 덧정이 스며들질 않았다.
스스로를 애써 속여보려 해도, 마음이 채워지는 일을 하고 있다고는 볼 수가 없었다.
잘 팔린다는 것. 잘 설득한다는 것. 잘 이해 시키는 기술을 갖게 된다는 것.
그것이 진짜이든 아니던지 간에.
미디어와 자본가와 소비 주체들의 욕망과 결핍을 결합시키는 언어의 레시피. 카피라이팅. 프로파간다.
집단 무의식 에너지 공급망. 과도한 인식적 마사지. 도파민 공장. 애드버토리얼.
이문이 남으나, 거짓이 섞여 들어 영혼이 부박한 세월.
긴긴밤 사탕 발림한 원고를 기계적으로 쳐내던 시절을 버티게 해 준 유머. 친구. 영화들. 음악들.
흙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가 품은 진솔한 사랑과 컴퓨터 앞에 붙어 자란 내가 품은 강박적인 사랑.
우리가 끝끝내 지켜낸 어떤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그건 꿈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언제든 내가 전화를 걸면 미처 세 번이 울리기도 전에 한결같이 받아주던 그 나목같던 목소리.
아무런 셈법 없이 당신의 피붙이라는 사실만으로 입은 은혜가 차고도 넘쳐,
평생에 걸쳐 갚아드리리라 다짐을 했는데
시간은 그녀를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그저- 풋사랑과 설익은 욕심에 취해 있던 나의 행동이 한 발 늦었다.
그렇게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만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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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난 게 아닌지도 모른다.
어젯밤 꿈 속에 나온 외할머니는 구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그만 막으라고 해 곧이 곧대로 시멘트를 들이부어버렸던 우물 자리에서 거침없는 손길로 수도꼭지를 틀어, 마당 저 끄트머리까지 물을 뿌리고 계셨다.
구석 구석이 모두 촉촉해질 때 까지 그녀는 충분한 시간을 기다렸다. 물줄기는 우리 할머니네 집 대문을 너머 담장 밖까지 콸콸 쏟아져 흘러 내려갔고, 눈물 콧물을 짜며 생전의 할머니 피붓결을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던 나는, 어느덧 3인칭 시점으로 높이 떠올라 그 수류가 어디로 가 닿는지를 지켜보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바람결에 실려갔다.
할머니의 손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곧장 바다까지 이어졌다.
살아 생전의 할머니는 바다를 특별히 좋아하시지는 않았다.
어시장의 비린내에 쩔은 채로 하루종일 먹이를 보채는 아이들에 떠밀리듯 청춘을 곰삭힌 여인에게, 소금기가 어찌 낭만이 될 수 있으랴.
할머니는 산도 그냥저냥이라고 하셨다.
오빠들의 숨을 거두어 가려고 얼굴에 검댕을 칠한채 들이닥친 군인들이 총구를 곧추세워 지리산 곳곳을 추적하던 그 밤들이 악몽 속에 무시로 떠오른다고 했다.
집이 최고다. 집이, 최고여.
초량동 집에서 삼십여 년을 함께 보낸 외할아버지의 입 속에서
난데 없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검붉던 것. 모진 세월 끝에 만나게 되는, 응축된 죽음의 빛깔.
용하다는 온갖 약을 다 갖다 써도 객혈이 멈추지 않자
누구는 저 냥반 담배를 그렇게 자시더니, 하고 츳츳 혀를 찼고
누구는 젊어서 미싱밥을 먹니라 폐 속에 짜잘한 실뭉치가 애지간히 들어찼을꺼라고 했다.
반송장이 된 남편이 병원으로 실려가기 전날까지 함께 몸을 누이던 아랫목. 그곳에 홀로 남겨져 묵직한 2인용 광목 이불을 덮고 누워, 야속토록 찬란한 자개농의 무늬와 빛깔들을 반쯤 감겨진 눈으로 훑으며 외할머니는 그 말씀만을 방언처럼 반복하셨다.
집이 최고다.
내가 살던 너라는 집.
긴 말 없이 서로를 향해 선뜻 열어 준 마음.
그 곳에 자그맣게 매달 수 있었던, 소담했던 문패의 이름.
맨주먹으로 시작해 연속성 있게 일구어 낼 때까지
꾸준히 착실하고 기꺼이 올바르던,
어느 미쁘던 가장의 이름 석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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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서 의식의 끈을 완전히 놓기 전,
외할머니는 내 두 손을 꼬옥 붙잡고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 달라고 했다.
나는 거짓말을 못해서, 대뜸 싫다고 했다.
그게 서로 의사소통이 되던 마지막 시기의,
유언이나 진배 없었음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다정하게 대답을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질 못했다.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글을 쓰는 건 너무나 아프다고.
되돌아봐야 하는 시간과 상처가 괴롭다고 했다.
생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별다른 자극이 없는 시간을 식물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아가, 거시기 잘 쓰라는 거이 아니다. 무슨 대회루 나가구 상을 타라는 것이 아닝께. 니가 뭣이라도 끼적거려 놓기만 허면, 혹시나 통일이 되고 나면 이북에서 오빠들이 낳은 아그들이 그것을 보고 찾아와서 우리 아그들끼리라도 낸중에 만나질 지 누가 알긋냐.
병상에 누운 세월이 길어, 안색은 허옇게 뜨고 근육이라고는 없이 거죽만 남은 노인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내게 문학이 아니라 그야말로 통신 수단, 전서구의 역할을 바라는 거였다.
메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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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말해주고, 보여주고, 알려준다. 사람의 이치와 논리를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젯밤 외할머니는 내 마음을 틀어막고 있는 무언가를 이제 그만 뛰어 넘으라고, 시원한 물줄기를 먼 곳까지 먼저 보내는 모습을 비추어 주셨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꿈에서 깨고서도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산다는 것이 억울했을까?
나는 여태 미성숙하고 어리석어서, 인내와 노력 끝에 생활자의 품새를 갖추고 무탈히 살고 있으면서도
다 받아들인 척을 하면서도- 간간 억울해했다.
세상에 나고 자라며 책임질 일은 청춘 내내 매 맞듯 거의 다 졌고 어느 정도 현실적인 대비도 되었으니.
선악의 시소를 대범하게 타는, 난다 긴다하는 개체들의 덧없는 업적을 부풀려주며 그들이 더 과열된 무언가를 탐하는 과정에 기여하는- 내키지 않는 글쓰기를 놓은 뒤.
나 다움이라는 것을 천천히 회복해가면서. 쭈욱 산이나 오르고 책이나 보며 마음을 닦을 수 있을 줄로 알았다.
그러나 대단할 것도 없는 운명은 나를 다시 붙잡았고, 어떤 인연과 장면들이 갑자기 끼어들어 거칠게 방향을 바꾸어 놓았고
아직은 겸허히 고개 숙여 삶이라는 상호작용에
손발이 닳도록 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도 또 몇 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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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후 나절에 참 오래간만에 집안에 물려 내려오는,
인화된 사진첩을 두어 시간 뒤적거렸다.
그리고 지금의 근간이 되는 분들이 젊었던 시절을 찾아냈다.
나는 세상에 홀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며 그들에게 모든 것을 빚져 여기까지 왔다.
때문에, 나의 힘을 쓰겠다고 청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흔쾌히 내어주는 것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참으로 이 삶은 내 것인 동시에 내 것이 아니다.
나남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
어느 계절 속을 지나왔고, 지나고 있는 나의 얼굴도 들여다보았다. 한 집안을 구성해온 여자들의 얼굴에서 얼굴로 대를 잇는, 어떤 시간이 남긴 메시지들.
알고 익히고 행하는 것이 있어왔다 하여도
가까스로 모두를 위한 쓸모를 찾아내
모든 것을 희사했다 하여도
진실된 사랑이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더 빛 속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우리집 사람들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바보 칠푼이들이었다.
카오스이자 코스모스.
변수이자 상수.
우린 그저 프랙탈을 구성하는
유전 정보의 전달체이자 유기화합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자되는, 자유 의지의 달뜬 신화.
정 반대의 관점에서 무릎 걸음으로 다가가게 되는
신들의 자비.
찰나의 생.
고작 두어 마디의 매듭을 짓는 데
이 만큼이나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굼뜨고 느리지만
다음 번에 외할머니의 꿈을 꾸게 될 때는
바보같이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다다다음번 꿈 쯤에서는,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