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중 #1 화우당의 어린 안주인
여름내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한풀 꺾인 밤.
완연히 식혀진 바람은 다음번 계절을 차지할 새로운 존재들을 땅 속 세상으로부터 지상으로 데려왔다.
귓전이 따갑도록 울어대던 말매미의 짧은 생애가 뚝 끊어지자 마자 은은하게 번져나가는 귀뚜라미 소리가 빈자리를 채웠다.
처서를 며칠 앞두고 유독 바쁜 이가 있었다. 서촌 안쪽 구석진 곳에 자리한 고색창연한 한옥집. 화우당.
한강 이북, 인왕산 자락에서 자리를 잡고 한 생애 조용히 이름을 떨친 만신 정금조가 나고 자란 신당이었다.
팔십 년 인생의 손때가 켜켜이 묻은 이 고택을 물려받은 자는 신딸도, 친딸도, 며느리도 아닌 새파랗게 어린 손녀, 서은현이었다.
정수리에서부터 허리춤까지 일자로 떨어지는, 흑단같은 풍성한 머릿결. 연한 복숭아빛의 혈색이 감도는, 맑고 투명한 피부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되비추듯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얇지만 힘이 느껴지는, 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 입술선.
한 폭의 동양화속에서 막 빠져나온 것 같은 단아하고도 선이 고운 자태로 그녀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넌, 도대체 어딜 보고 있는거야?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있는거야?
여느때처럼 자시 전안 기도에 들어가기 전, 향나무를 우려낸 물로 목욕 재계를 하며 부정을 걷어내던 은현의 눈빛에 아련한 향수가 스쳤다.
왜 하필 지금 그 아이가 떠오른 것일까.
귀신이 보인다.
지금 귀신이 네 옆에서 무엇을 하고 있노라고 투명하게 말하고 다니는 버릇을 온전히 고치려면 인간의 나이로 족히 열두 해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여, 문제가 많았던 초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시키는 텀에 이르러 집안 어른들은 신신당부를 했었다.
친구 같은 것, 사귀지 않아도 좋다고. 보이는 것을 다 말하지 말라고. 마음이 가는 대로 참견하려 들지 말라고. 신의 일에 인간이 끼어들어서는 안된다고.
행여 친구가 생기면 그것을 참기 힘들어질테니 아예 처음부터 시작을 안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당시만 해도 은현은 반항기라고는 없이 나긋한 성품이었다. 어르신들이 명하신 대로 아무와도 정을 붙이지 않고자 부단히 애를 썼지만. 선행된 단도리가 무색하리만치 첫 대면부터 훅 치고 들어온 아이가 하나 있었다.
***
이한은 외모부터가 남달랐다. 아니, 수려했다.
은갈색 반곱슬모에 미간에서부터 불뚝 솟은 콧대. 음영이 짙은 눈매와 암청색 빛을 머금은 눈동자.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촘촘하고 기다란 속눈썹에 표백이라도 한 듯 새햐얀 피붓결이며 길고 곧게 뻗은 팔다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 다른 사내 녀석들보다 두 주먹 이상 훌쩍 솟아오른 장신.
어느모로 봐도 눈에 띄는 생김새를 한 탓에 등장과 동시에 동성들의 질시와 이성들의 선망을
한 몸에 사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그런 극소수의 선택받은 수컷들이 그러하듯 먼저 입을 열거나 타인에게 다가가는 법 없이 고고한 아우라를 풍기며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들었어? 쟤, 튀기래.
-튀기?
-아빠가 미군이래. 일 년에 두 달 밖에 같이 안 산다나.
-그거 아냐? 엄마가 미군부대 앞에서 웃음 팔다가 눈 맞아서.
-시팔 그래도 국적은 미국이겠네.
다 들리는 목소리로 지껄여대던 안경잡이와 금방이라도 터져서 질질 흐를 것 같은 화농성 여드름이 번득거리던 두 녀석 사이로 돌연 걸상이 하나 날아왔다.
안경은 피했고, 여드름은 정면으로 맞은 마빡을 감싸쥐고 제자리에서 뒹굴었다.
그 때, 은현은 똑똑히 보았다.
무표정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한의 승모근을 즈려밟고 서 있던 레이밴 선글라스를 낀 백인 신장(神將)의 모습을. 걷어부친 팔뚝을 허리춤에 척하니 얹고서 링에 오른 격투기 선수를 독려하는 코치마냥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입술.
그렇게 몇 번을 걷어차고 나서 분이 풀려 진정이 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안경잡이의 가방 지퍼를 열고 거꾸로 치켜들어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지게 만들었다.
그러자 풍성한 잿빛 털을 바짝 세운 벽안의 늑대 한 마리가 이한의 다리 사이로 부리나케 기어 나오더니 안경잡이의 필통에다가 코를 처박고는 입가에 주름을 잡으며 몹시 짖었다.
이한의 섬섬옥수가 필통을 주워올려 몇 번 그 속을 훑었고, 빙고. 담배와 라이터가 나왔다.
외래종 금수까지 붙어 다녀? 골 때리네.
은현의 외조모가 생전에 늘 당부하시길, 외국 귀신은 복숭아 나무로 경을 쳐도 듣지를 않는다 하셨다. 섣불리 손을 쓰다간 역으로 액을 붙일 수가 있으니 선악도의 나경을 대어보고 악질이라고 눈금이 가리키면 살살 달래거나 결계를 치는 게 최선이라고 언질을 주셨었다.
은현은 생각했다. 저 녀석은 어느 쪽일까. 선일까, 악일까.
행동은 과격했어도 관상은 모진 데가 없었다. 그러면 심상은?
출신을 조롱당함에 대하여 즉결심판을 하는 것은 악이라기 보다는 서열 짐승으로서의 본능적 조치에 가까워보였다.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둘 다라고 봐야 하겠지. 음과 양이 섞여있는 이 세상 사람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때마침 아침조례를 하러 들어온 담임의 눈에는 신성한 교실에서 신학년 첫날부터 담배를 피우려던 선 넘은 두 놈을 응징한 이질적 영웅의 활약극 정도로 보였던 모양인지. 이한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상황을 모면했었다.
그는 이후로도 항상 그런 식이었다. 온갖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 인과율 사이를 타격 없이 스쳐 지나가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맞추지 않았지만 어디에서도 우위를 점하고야 마는 특유의 기세와 존재감을 지닌 아이였다.
***
‘벌써 십 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 생각이 나다니…기가 흐트러졌구나.‘
엄격하고도 곧게 신의 길을 가기로 내정되어 있던 은현이었기에 사내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금기와도 같았다.
하지만,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한 첫사랑이었기 때문일까. 간혹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이한의 모습이 화경으로 떠오르는 이런 때면 은현은 몸주신 앞에 자신이 자칫 당당해지지 못할까 저어되어 그 이상 의식이 본능으로 흐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했다.
소란해지려는 심기를 교호 호흡으로 다스리며 은현은 보료 위에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전안에 깔아둔 비취색의 보료에는 집안 대대로 정해져 내려오는 상징적인 문양이 금사로 수놓아져 있었다.
봉황과 환도(環刀).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의 뜻을 전하고 하늘로 돌아가는 일족이다. 떠날 때는 미련 없이 승천함을 봉황과 같이 할 것이고 몸 담은 세속의 연을 끊어낼 때는 칼을 들어 남김없이 휘둘러 내세까지 이어지는 업의 고리를 남기지 말지어다.]
손녀에게 손수 내림굿을 하여 애동을 만들어 주시던 날.
방울찾기에 여념이 없던 은현에게 외조모는 흔한 무구 대신 커다란 칼 한자루를 대뜸 안기셨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신의 물건이 자신에게로 넘어왔을 때 은현의 나이는 고작 열 세 살이었다.
선대 만신으로서 임종을 예감한 외조모는 계승을 다소 서둘렀고 적성이라면 적성인지, 은현의 영육에는 이미 신기가 그득허니 올라와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유언은 간결했다. 신의 딸로 태어나 인간의 삶을 꿈꾸지 말라고.
부귀 영화 애정. 그 모두 인간사 욕망과 결핍과 혼탁함의 산물이며 한낱 덧없는 것이라고.
인연된 이들에 한해 그들의 문제를 신력으로 바루고 이롭게 하되, 인과에 필요 이상 개입치 말라고.
그리고, 필요한 모든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처음부터 갖추어져 있다고.
애동이 된 다음 해, 은현에게는 애정의 시험이 조금 일찍 찾아왔다.
전교생중 유일하게 자신을 의식적으로 무시해 버릇하던 은현에게만 집요하게 말을 걸고,
수시로 증발해버리던 하교길을 인내심있게 기다리고 한 번도 받아주지 않던 작은 선물을 꾸준히 안기던 그 아이.
혹시, 나와 같은 신의 운명인지를 캐묻고 싶고 선대가 정해둔 선을 넘는 모험을 함께 해보고 싶던.
위험하고도 특별하여 자칫, 감길뻔한 이한과의 연을 정리하던 마지막 순간에 은현은 신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서슬퍼런 환도를 꺼내놓고 경문을 읊었다.
툭.
신들이 개입하여 시작다운 시작도 못해본 둘 사이를 영구히 끊어놓는 지기가 심장 깊숙이 느껴졌다.
쇠맛이 느껴지는 아릿함.
염치도 없이 물들려던 사랑을 도려낸 그 날 이후로 이한은 두 번 다시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온지 얼마 되지않아 또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다고도 했고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돌아갔다고도 했다.
누구도 확인할 길을 모른채 가끔 궁금해했지만, 원체 비현실적인 존재였기에 또 의외로 금세 잊혀져갔다.
단체로 꿈을 꿨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한이 사라지자 은현에게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여자애들의 견제와 질시가 혼탁하니 뒤섞인 염을 더는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쁜 점도 하나 있었다. 자신은 평생, 여자로서의 행복을 탐하려 해서는 아니됨을 처절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은현은 새삼스레 지나온 세월을 갈무리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신녀가 된지도 어느덧 열두 해의 시간이 흘렀건만 가끔 봇물 터지듯 흘러넘치는 과거사의 화경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런 날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 뿐이었다.
조명을 머금어 은은한 광이 나는 하이얀 비단 옷고름을 고쳐 메고 사르락대는 자줏빛 한복 치마 끝자락을 말아쥐고서 은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어둔 창틀 사이로 맞바람이 들이쳐 제법 자잘한 소름이 돋기에 신당의 출입문을 잠시 닫아둘 요량으로.
버선코의 끝을 한 쪽씩 내밀며 걸립으로 이동하는데 누군가가 벽에 걸린 탱화와 구어도를 감상하고 서 있었다.
‘손님인가? 인기척이 전혀 없었는데…’
어림으로 봐도 180을 훌쩍 넘겨보이는 장신에 호리호리한 바디 라인이 드러나는 검은 수트핏.
귀밑을 덮는, 흐드러진 은갈색 머리칼.
그리고 어깨 너비로 보폭을 벌리고 선 두 다리 사이로 우람하게 삐져나온 금수의 풍성한 꼬리털.
설마.
은현은 오른손을 명치께에 갖다 대며 관세음보살, 하고 소리없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