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사랑 004

백중#4 : 위험한 의뢰

by 베가






분위기가 음침한, 어두컴컴하고 밀폐된 방안. 영상 속의 소년은 저항을 완전히 포기한 표정으로 생명을 구걸하고 있었다. 찢겨져 나간 티셔츠 사이 사이로 시퍼런 멍자국이 선연했다. 뿐만 아니라 얼마나 굶긴건지, 피골이 상접하고 눈밑이 퀭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타 소리.


흡사 스너프 필름과도 같은, 소름 끼치고 불쾌한 느낌.


“그만해. 원하는게 도대체 뭐야!”


몹시 떨리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 전화를 받고 화면 녹화를 한 이쪽 관계자였다. 하지만 가해자는 기계적인 린치만 가할 뿐, 대답은 물론 모습을 일체 드러내지 않았다.


다해서 오 분 정도 되는 길이의 영상이었다. 기절한 소년을 장정 몇이 붙어서 어디론가 들어 옮기는 장면에서 통화는 끊어졌다. 소통이나 협상을 위한 목적이라기 보다, 순수한 공포를 심어주기 위함에 가까워 보였다.


은현은 이한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같은 영상을 세 번 더 돌려보았다.


{제대로 미친놈한테 잘못 물렸구만. 생 고문이네, 고문이야. 아들뻘 되는 애한테 저러고 싶을꼬.}


돋보기 안경을 꺼내 쓰고 휴대폰 화면을 주시하던 대신 할머니가 혀를 츳츳 찼다.


{할머니, 미친놈에 아들뻘이라면. 범인이 중년 남성인가요?}

{배 나오고 안경 낀 놈이다. 수시로 비행기 타고 나다니믄서 사고를 치는데. 제 손에는 피 한방울 안 묻히고서 제법 까부는구나.}

{…제가 나중에 사진을 가져오면 맞는지 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리 해라. 그런데 제자야.}

{네, 할머니.}

{험하다. 이 일은… 손 떼면 안 되긋냐.}


대신 할머니는 깨끼 저고리의 안섶에 덧끼워둔 복주머니를 뒤지더니 동그란 환을 꺼내어 우적우적 씹었다.


어지간한 제가집의 요청과 속사정은 훤히 꿰뚫어 보시는 분께서, 이 정도의 경계심을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


할머니의 충고를 새긴 후 은현은 눈 앞의 이한을 바라봤다.


위중한 의뢰를 하러 온 이한의 두 눈동자는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되비추는 거울이라기보다, 무한한 허공에 랜덤하게 뚫린 두 개의 숨구멍인 것만 같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만약에 나에 대한 마음이 아직 남아 있었다면, 이런 위험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을 터.


할지 말지. 아직은, 내가 선택할 수 있지.


“경찰에 신고는 했나요?”

“소용이 없었습니다. 국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답변만 들었어요.”

“흥신소는요?”

“현재 등기상 회사의 오너는 창립 멤버이지만, 실세는 영미권에서 조성된 문화자본 펀드와 산유국 투자청입니다. 지분 비율대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해요. 흥신소에 의뢰했다가는 곧장 기사가 날 겁니다.”

말하자면, 공권력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신비한 힘을 빌려서 비밀리에 해결을 하고 싶다는 거로군.


은현은 이한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회사의 윗 사람들은 대관절 뭘 하는데, 연예인이라는 네가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해결에 나서고 있는 것인지부터 해서.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런 리스크가 생길 때까지 어째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게 되었는지 등등.


그리고… 여긴 어떻게 알고 온건지. 나한테 뭐, 할 말 없는지.


조용히, 하지만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가슴 속 열기를 삭히면서 은현은 신의 기물들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평소에는 번거로워 손이 잘 가지 않던 산통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대나무를 가늘게 깎아 만든 50개의 산가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은현은, 척전법으로 주역점을 치기 시작했다. 아주 정성껏, 일일이, 규칙대로 시간을 들여서.


우주의 생성 원리와도 이치가 닿아있다는 믿음 때문인지, 신들은 주역점에 절대적인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산가지를 하나씩 떼어 놓는 수고로운 점사를 구경하려, 좌정된 신들이 순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은현을 보호하듯 둘러쌌다.


{제자야, 네 할미는 이 복잡한 점을 막힘없이 단번에 놓아서 괘를 얻어내곤 했었다.}

{한참 어릴 적부터 무불통신이 되던 양반이었지. 수재였어.}

{너도 손이 제법 야물고 맵구나. 헌데.. 음효만 연달아 나오는 것이 뜨악하구나.}


신들의 참견과 훈수를 허투루 넘기지 않음을 표현키 위해 은현은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다가 괘사 하나를 얻어냈다.


{허… 이건 중수감(重水坎) 아닌가? 하필 사대 난괘중 하나가 나오다니…}


용궁 기도를 갔을 때 따라온, 남해 바닷가에서 일생 왜병의 전란을 겪다가 사망한 뒤로 천도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게된 민병 장군이 자기 이마를 탁 소리나게 치며 눈을 부라렸다.


아닌게 아니라 점사로 얻어낸 중수감은, 위아래로 물이 겹쳐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상징하는 괘였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사이즈도 크고 얽힌 것도 많고… 위험하다.


그 와중에도 신기하다고 산통을 들고 살펴보려던 한리아를 이한은 가볍게 저지했다.


그러게 왜 저런 혹을 붙이고 와서는.


아니지. 이런 사사로운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지금, 은현의 오장육부가 말하고 있었다. 안 하는게 낫다. 하지만, 피한다고 거두어질 일도 아니라는 것을.


여전히 별다른 감정이 내비치지 않는 눈동자로 공수를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이한을 대하자니, 약간의 오기가 동하기도 했다.


“한 번 해보죠.”

“감사합니다. 적임자라고 추천을 많이 받았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과연 받아들여질까. 궁금해진 은현은 대차게 수를 두었다.


“범을 잡으려면 범 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이지요. 저와 신자매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팀을 꾸리겠습니다. 대충 국악 퍼포먼스 연주팀으로 커버링을 할테니, 프리즘 엔터에서 준비한 회심의 카드인양 우리를 몇 번 무대에 올리고 약간의 바이럴을 해주셔야겠습니다.”


“…! 그렇게 할 때의 실익은요?”


“노출입니다. 가장 훌륭한 사냥꾼은 먹잇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법이죠. 우리 팀 안에서 납치되는 자가 나오는 것이, 일차 목표입니다.”


실로 대담한 제안에 한리아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화를 많이 보셨나보네요. 위험을 감수했음에도 그들의 타겟으로 지목되지 못할 때는요?”


이성적이고도 허를 찌르는 이한의 질문에 은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천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건만 이 중생은 의심하고 또 저어하는구나. 온통 흐려서 잘 보이진 않는다만, 내 이 자의 시간을 읽어줄테니 몇 마디 찔러 주어라.}


칠성검을 앞세워 이한의 늑대를 고분고분하게 승복시킨 군웅장군이 은현에게 귀띰을 했다.


“상대는 미끼를 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실종자들을 구출할 기회가 올거구요.”


”어떻게 확신하시죠?“


한 올 한 올 모양이 고르게 잡힌, 빽빽한 눈썹숱을 들어 올리며 이한이 반문했다.


“저는 당신의 왼쪽 등판, 날개뼈 라인을 따라 날 때부터 점이 세 개 있다는 것을 압니다. 커피를 일체 마시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직접 요리한 음식 외엔 가급적 입에 대지 않는 것을 압니다. 휴가 시즌에도 쉬지 않고 크로스핏과 주짓수를 하며 신체를 단련하는 것을 알고, 리스 받은 차량이 곧 만기라는 것도 압니다.”


“…!!”


“신의 제자는 그냥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허비할 시간에 상대를 꺾고 솎아낼 전략을 논의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 또한 알지요. 어떻게, 검증이 되셨습니까.”


이한은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이더니,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살짝 아래로 떨구고선 순순히 사과를 했다.


“제가 결례를 했습니다. 말 그대로 생사가 걸린 문제다 보니 과민했습니다. 선생님을 믿고, 진행해보는 걸로 하죠.”


은현은 눈에 띄게 태도가 누그러진 이한에게 돌연,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이성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대상에게 신통력을 쓰는 것은 상당히 별로인 일이다. 반칙을 했다는 생각에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고, 상대는 점차 작은 디테일 하나 하나까지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항상, 신녀인 자신과 대등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압도적인 무언가를 지닌 타인에 대한 갈증이 있어왔다. 그런 기대를 내려놓은지도 오래 되었지만.


혹시, 그게 너일까.

그게 너인 것 같은 이 느낌은, 신들의 계획일까 혹은 나의 자유의지일까.

너의 운명에 내가 필요했던 것일까, 나의 운명에 네가 필요했던 것일까.


아무려면 어떠랴. 하늘이 다시 옛 인연줄을 이어다 주셨으니, 일을 하며 차차 알아가야겠지.


***


조만간 다시 회동을 하는 것으로 약속을 나눈 뒤, 이한과 한리아는 신당을 떠났다. 은현은 그들이 나가자 마자 용연향을 피워 전안의 기운을 정화하고, 신의 일과를 평소보다 조금 일찍 마무리했다.


그리고 무음으로 해두었던 스마트폰을 꺼내, 구글창을 열어 검색을 해보았다.


이한이 소속된 그룹의 공식 프로필과 멤버별 대표사진, 역대 수상실적, 최신 앨범활동 내역이 주루룩 뜨고, 그리고… 클릭을 할 수 밖에 없는 제목의 기사가 최상단에 노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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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소리지.


정이한이가.


연예인이 되기 전의 기억을… 잃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