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과 통신선이어질러진 건물 안, 디지털장비 사이로공구를 든 사람들이 오갑니다.커다란 지붕이 하늘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오후. 건물 안 분위기는 공연을 준비하는 무대와도 같습니다.
기다림이공기를 고조시키는 이곳은 아주분주하지도, 지나치게 고요하지도 않습니다. 밤이 되면 도착할 스타를 기다리는 사람들 머리 위로오후가 넓게 내려앉습니다. 다만 이들의 '스타'는 무대 위가 아니라 하늘 위에 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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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올려다보는 행위는 기록된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했습니다. 때론 길잡이가 되어 주기도, 때론 상상력을 넓혀주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맑은 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에 안심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만으론 부족했습니다.
별을보고 분석하는 전통은 현대까지 이어졌지만, 인류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그들이 극소수라는 전통도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전 세계 75억 인구 중 5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천문학자를 직업으로 택했습니다. 비율로 치면 0.0006% 정도입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천문학자라는 직업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직업 천문학자를 만나본 일조차 없는 이유입니다.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천문학자 이미지는 '야행성인 괴짜 과학자가 엄청 어두운 곳에서 정말 큰 망원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하얀 실험실 가운을 걸치고 하늘에 있는 천체들의 이름과 위치를 자신 있게 줄줄 읊어대며 추위 속에서 다음 발견을 끈기 있게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영화 <콘택트>에 나온 조디 포스터처럼 헤드폰을 쓰고 외계에서 오는 신호를 기다리거나, <딥 임팩트>에 나온 일라이자 우드처럼 뒤뜰에 세워둔 망원경으로 지구를 파괴할 소행성을 발견한다던가 하는 모습 말입니다.
<오늘 밤은 별을 볼 수 없습니다>는 사람들 머릿속에 따분한 형태로 박제된 천문학자 이미지에 혈액을 공급해 생동하게 만들고, 그들이 겪는 재미있고 인상적이며 때론 위험천만한 일들을 소개합니다.
현대문명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천문대는 아이러니하게도현대문명이 얼씬도 못하는 벽지에 건설됩니다. 추워서 대기가 안정적이어야 하고 어두워서 관측이 용이해야 합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등 인공적인 변수는 물론이고 하늘과 땅에서 날씨와 야생동물이 일으킬 문제 역시 피해야 합니다.
사막과 동토는 천문학 외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지만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제안서가 통과되어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구름과 바람이 심술을 부리지 않길 바라면서요.
대형 망원경과 움직이는 돔이 등장한 이후에도 천문학자는 관측을 위해 인간적인 편의를 버려야 했습니다.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프라임 포커스 케이지(관측자가 밤새 카메라 초점을 조절하도록 카메라에 딸린 작은 케이지)' 안엔 '자연의 부름에 응답할' 빈 병 하나 외엔 아무 시설도 없었습니다. 여성 관측자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며 케이지를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케이지는 사다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돔 꼭대기에 있고, 강화 널빤지 하나가 놓여있는 원시적인 길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관측자 대부분은 관측이 끝날 때까지 케이지 안에서 떨며 밤을 보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망원경 카메라에 설치하는 '사진 건판'은 스케치로 관측 결과를 기록하던 천문학자들 손을 해방시켰습니다. 동시에 곤란하게도 했죠. 다이아몬드가 박힌 절단기로 카메라 크기에 맞게 건판을 자르는 과정은 어려울 게 없었습니다. 문제는 건판이 빛에 약하다는 사실이었죠. 캄캄한 암실에서는 건판이 잘리는 '쉬쉬시'소리 외에종종 다른 게 잘리는 '으드득' 소리가들리기도 했습니다.
날씨는 천문학자를 죽고 살게 합니다. 정답게 양보해 가며 쓰기엔 천문대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날씨 탓에 관측을 못했으니 하룻밤을 더 달라는 투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구름이 끼는 날엔 시야가 가려지고,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은 렌즈를 보호하기 위해 돔이 닫힙니다. 달이 지나치게 밝으면 다른 천체를 가리고 비를 피했다 해도 안개가 끼면 관측은 불가능합니다. 날씨가 부리는 재앙을 막기 위해 MIT 출신 천재들은 비책을 마련했습니다.
행운의 양말, 행운의 과자, 행운의 테이블이 그것이었죠.
날씨가 부리는 권세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은 '비행 천문학'을 불러왔습니다.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을 비행기에 탑승시킨 뒤 구름 위에서 관측하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고, 크기가 140미터나 되는 기구에 망원경을 태워 날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로켓에 태운 망원경이 탄도 비행을 하며 임무를 달성하기도 하고 명성이 자자한 허블 망원경은 아예 구름과 바람이 없는 우주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가장 경이로운 위치에 있는 망원경은 1972년 조지 커러더스George Carruthers가 '땅 위에' 설치한 7.6 센티미터짜리 망원경입니다. 이 망원경은 역사상 처음으로 달표면 위에서 별을 관측했습니다. 지구였죠.
그러나 모든 천문학자가 하늘을 날며 관측할 기회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천문학자 대다수는 날씨와 방해요소를 피해 엄혹하고 외진 땅을 찾아야 했습니다. '재수 없게 떠가는 구름 한 조각'을 피하기 위해 방문한 곳에서 그들은 지진, 산불, 고립, 포식동물, 돌풍과 눈보라, (산꼭대기에 위치한) 천문대로 떨어지는 낙뢰, 심지어 화산폭발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천문학자는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 앉아 외계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별을 보기 위해 위험과 모험을 감수하는 탐험가들이었습니다.
현대 천문학 기술은 수천 미터를 날아가 밤을 새우고도 날씨 탓에 빈손으로 돌아오진 않도록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원격 관측'은 뉴욕에 있는 집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뉴멕시코주에 있는 망원경을 조종하는 관측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새롭게 출현한 망원경들은 흐린 날, 구름이 낀 날, 달이 너무 밝은 날에도관측이 가능하도록 개량되어 천문학자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서버에 저장된 자료는 누구에게나 공개되고 특정 대학, 특정 기관, 특정 성별이 망원경과 자료를 독차지하는 일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앞서 소개했듯 다양한 목적을 가진 망원경들은 용도와 상황에 맞게 구름 위를 날기도, 탄도 비행을 하기도 합니다.
전파 망원경은 구름이 끼거나 심지어 눈과 비가 와도 어려움 없이 관측을 해냅니다.
직선길이 4킬로미터짜리 콘크리트 팔을 두 개나 가진 '중력파 관측소'는 블랙홀 두 개가 수십억 광년 밖에서 충돌해 만들어 낸 '시공간의 요동'을 검출해내기도 했습니다.
천문학이 향할 미래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칠레에 건설되는 '베라 루빈' 천문대는 기존 천문대가 일 년 간 관측할 자료를 하루에 생성할 예정입니다. 관측자가 배제된 '자동 관측' 시스템으로 말이죠.
천문학이 맞이할 미래는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는 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에밀리 레베스크Emily Levesque는 기술이 가져온경이로움을 기념하는 동시에 관측을 위해 모험과 아이디어를 동원하던, 다시는 오지 않을 낭만적 시대를 그리워합니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천문학 역시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현상을 허전해하죠. 그 필요를 납득하는 마음과 별개로 말입니다.
<오늘 밤은 별을 볼 수 없습니다>는 기술에게 자리를 내주기까지 천문학자들이 개척해 온 길에 대한 존경심 가득한 기록입니다. 동시에 최첨단 장비를 통해 천체를 분석하는 게 직업이면서도, 오로라나 일식 같은 천문현상을 접하면 탄성을 지르고 펄쩍펄쩍 뛰는 천진난만한 이들에대한 애정 어린 헌사이기도 합니다.
빛나고 타오르고 성장하고 사라지는, 닿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별을 짝사랑하며 평생을 바치는 천문학자들 이야기는 밤하늘에 무심히 떠있는 별을 보는 시선을 바꿔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