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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윤슬 Jul 13. 2022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1)

전장에 어울리지 않았던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두터운 안개가 포성에 찢기고 피로 물든 파도가 밀려드는 해변에 한 종군기자가 납작하게 엎드려 포탄을 피하고 있습니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은 말을 듣지 않고, 불어나는 밀물은 자꾸만 그를 적진으로 등 떠밉니다. 땅속으로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기도를 비웃듯 총성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철조망과 바다 사이에 박격포탄이 떨어지더니 터져 나온 파편에 눈앞에 있던 병사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콘탁스 카메라 파인더에 갖다 댄 눈과 셔터에 올려진 손은 쉴새가 없습니다. 군의관 분투하는 모습과 장애물 뒤에 움츠린 병사 젖은 군화와 군화 옆에 떨어진 창백한 얼굴을 찍습니다. 일분도 지나지 않아 필름 한 통이 다 소모됩니다. 새 필름을 갈기 위해 가방을 뒤지던 그는 필름을 못 갈 정도로 격심하게 손이 리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몸을 숨기기 위해 모래를 파며 발버둥치던 눈에 파도에 쓸려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시체들이 보입니다. 공포가 온몸을 휘감습니다. 위생병을 내리기 위 상륙정 한대가 해안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한 그는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시체로 가득한 바닷물이 목까지 잠기고, 철모 위로는 포탄과 파편이 낙진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전장에서 도망치고 있다는 수치심 외면한 채 종군기자는 를 향해 사진기를 높이 치켜올립니다. 마침내 당도한 배에 올라타려는 순간 등 뒤에서 날아온 포탄이 선교를 때립니다. 충격에 넋이 나간 눈에, 부하들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살점과 피를 뒤집어쓰고 울부짖는 지휘관이 보입니다. 가까스로 올라탄 배가 기울더니 침몰하기 시작합니다.








카파이즘 Capaism



취재를 위해 목숨도 거는 기자정신을 일컬어 '카파이즘'이라 부릅니다. 로버트 카파 기리는 문구엔 숭고함과 선망이 서려있습니다. 안락한 삶을 등지고 전장을 누비는 사람과 흙투성이 카메라가 연상됩니다. 종군기자라는 말은 두려움 없는 사진가, 존중받는 모험가, 사명감에 불타는 기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 종군기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12월, 나는 판타노 산의 가파른 경사면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제34보병 사단은 근 보름 동안 정상 탈환을 시도한 끝에, 내가 오르기 바로 전날 마침내 정상에 올라섰다. 산비탈에는 아직 묻지도 못한 시체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5미터마다 개인호가 있었고, 그 안에는 적어도 한 구 이상의 시체가 들어있었다. 비에 흥건히 젖은 포켓북의 찢어진 표지, 빈 시레이션 깡통, 고향에서 보낸 빛바랜 편지 조각들이 죽은 병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용감하게 개인호에서 뛰쳐나왔을 병사들의 시체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제는 말라붙어 갈색을 띠는 그들의 피는, 그들 주변에 떨어진 늦가을 낙엽 색깔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시체와 시체의 간격은 점점 더 좁아졌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정상을 향해 비틀거리며 올라가면서 나는 바보처럼 혼잣말을 되뇌었다.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서 흰 구두를 신고 흰 바지를 입고 걸어가고 싶어." 148p



전쟁 수행동력으로 프로파간다가 활용되던 2차 대전 시절에도 아직 사진과 종군기자는 가치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로버트 카파라는 종군기자는 적군에겐 성가신 존재, 아군에겐 흥미로운 존재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를 위한 특별 대우는 없었고 군 입장에선 마땅 관리대상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병사들과 동행하다 필요하면 무리를 이탈해 사진을 찍었고 필요한 만큼 찍으면 다시 동행하는 존재였습니다. 병사들은 그가 포커판에 끼었다가 돈을 잃었을 땐 동료로 취급해 주었지만 부상당한 자기 얼굴을 찍으려 들면 고함을 치고 으르렁댔습니다. 그는 못 보던 사진을 건기 위해 참혹함에 익숙해져야 했고 멀쩡한 사람보 다친 사람을, 다친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눈여겨보아야 했습니다. 목숨 걸고 찍은 사진 100여 장이 인화 직원 실수로 타버리기도 하고 석연찮은 이유로 자기 사진에 이름 못 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카파에겐 한 가지 약점이 더 존재했는데, 그 적국으로 분류되던 헝가리 태생이라는 점입니다. 완벽히 구사하지 못하는 영어와 특이한 억양 때문에 별것 아닌 문제에도 오해를 받거나 아군에게 위협받는 일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삶은 카파이즘이라는 짧은 문구 너무나 입체적이었습니다.








동전



작품 초반에는 로버트 카파가 전쟁 취재를 위해 영국으로 향하는 과정이 적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됩니다.

이야기는 아침이 와도 일어날 필요가 없는 삶을 살던 종군기자 사무실편지가 도착하면서 시작됩니다.



아침이 와도 일어날 이유가 없는 나날이었다. 내 스튜디오는 뉴욕 9번가의 작은 3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있었다. 지붕 전체가 하나의 채광창으로 돼있고, 구석에는 커다란 침대가 하나, 마룻바닥에는 전화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인 곳이다. 그밖에 가구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벽시계조차도. 9p



사진가로서 이름은 있었지만 일정한 수입 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 카파에게 편지 세 통이 배달됩니다. 첫 번째 편지는 에디슨사로부터 온 통지서였습니다. 전기를 끊겠다는 내용이었죠. 두 번째는 법무부로부터 온 통지서였습니다. 적국인으로 분류되어 사진기 소유와 여행이 제한된다는 내용입니다. 카파는 무심히 다음 편지를 뜯습니다. 세 번째는 잡지사 <콜리어스>지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영국에 가서 전쟁을 취재해 달라는 내용과 함께 1천 500달러짜리 수표가 동봉되어 있었죠.

적국인 신되어 영국은커녕 옆동네도 갈 수 없게 된 카파는 제안을 거절하려다 생각에 잠깁니다. 긴 시간과 논리가 필요한 생각은 아니었죠.



내가 가진 건 주머니 속의 동전 한 닢이 전부였다. 나는 동전을 던져 결정하기로 했다. 만약 앞면이 나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필코 영국으로 갈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콜리어스>에 내 처지를 설명하고는 전도금을 되돌려 주리라.
 공중으로 동전을 튕겨 올렸다. 결과는 뒷면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까짓 동전에 나의 미래를 내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는 수표를 가지기로 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국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0p



카파는 전쟁 중이라는 시대적 특성과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이용해 주먹구구식으로 장애물을 돌파해 나갑니다.

영국 가기 위한 여권은 대사관 공보관과 하룻밤 술 친분을 쌓아 얻어내고, 적 잠수함과 추격전을 벌이던 영국행 배에서는 그를 영화감독으로 착각한 사령관에 특별대접을 받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엔 항만 담당 대령 아내와 고향이 같음을 어필해 까다로운 상륙 허가도 받아냅니다. 완전하지 못한 헝가리 태생 영어 발음으로 해낸 일이고, 적국인으로 분류 직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 모든 여정은 동전 던지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정확히는 동전 던지기 결과를 무시하기로 한 선택에서 출발했죠.


영국에 도착해 종군기자 신분을 회복한 카파는 훈련받은 적도 없는 몸으로 낙하산 부대와 함께 비행기에서 뛰어내립니다. 전투병 아니면서 누구보다 깊숙이 전쟁터 안으로 들어갔고, 생생한 사진을 얻기 위해 요새를 벗어나 포격 예정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우직한 종군기자가 남긴 발자취로 손색이 없습니다. 모두가 열광할 이야기죠. 하지만 카파가 직접 남긴 기록은 그 열광을 거부합니다.


1942년 여름. 로버트 카파가 영국으로 향한 이유는 국인으로 분류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수중에는 25센트짜리 동전 하나가 전부였고, 전기가 끊길 사무실 벗어날 길은 보이지 않았. 영국으로 향해 종군기자 신분을 회복하는 은 선택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써버린 1천 500달러짜리 수표가 대변하듯이요. 를 움직인 동력은 기자정신이 아니라 생활고였습니다.

1943년 시칠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훈련도 받은 적 없던 카파가 낙하산을 짊어진 행동 역시 <콜리어스> 잡지사 측에서 그를 해고해버린 탓에 제3국으로 강제 송환될 위기였기 때문입니다. 송환되는 순간 종군기자 신분은 박탈당하고 가 찍은 '값어치 있는' 사진들 역시 '공동취재 규정'에 의해 다른 신문들에게 빼앗길 처지였습니다. 하산 부대와 경주하듯 동행했던 이유는 그를 알제리로 강제 송환할 공보 부대로부터 도망칠 곳은 최전방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해 9월, 가까스로 강제송환 위기를 모면한 카파가 요새 벗어나 포격이 쏟아질 산허리에서 밤을 지새운 이유 역시 목숨을 건 취재 정신이라기 보단 다른 사진 찍어 새로운 고용주, <라이프>지로부터 더 많은 봉급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2차 대전으로만 한정한다면 카파가 보인 행적은 전쟁에 던져진 개인이 매 순간 원한 기응변의 결과일 뿐 숭고한 기자정신과는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매일 매 순간 운명을 점치기 위해 동전을 던지듯 그 역시 희미한 시야 속에서 길을 더듬었을 뿐이죠. 카파는 본능과 도덕성, 안전과 모험, 서와 자유분방함 중 어떤 가치에도 일관성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 높은 봉급을 받기 위해 포격 예정지에서 밤을 지새우고, 공보 부대를 피해 낙하산 부대와 함께 뛰어내리고, 법무부 명령을 어기고 국경을 벗어나는 행동은 이 선명한 사람이라면 할 수 없습니다. 카파는 모호한 원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모호한 원칙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영웅으로 거듭나는 곳이 있습니다. 전장이죠.


로버트 카파는 선택이 필요한 순간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일관적이었지만, 대체로 그가 뭘 원하고 있는지스스로도 몰랐다는 점에서 예측불가였습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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