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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윤슬 Apr 29. 2022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우리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위로



퇴근길, 슈퍼마켓에 들러 야채를 고르는 수짱 마음속엔 얼마 전부터 고민이 자리 잡았습니다.



때때로 불안해진다.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는데 할머니가 된다면...
나, 괜찮을까? 3p



옷은 저가 브랜드가 해결해 줄 테지만 집과 음식에 대해선 든든한 해답이 없습니다. 복권이라도 사야 하는 것일까요? 착실하게 저축한 300만 엔이 있지만 노후와 맞서긴 애매합니다.



'의'는 어쨌든 유니클로가 있으니 '식'과 '주'를 해결해야 하는 거군.
결국 돈의 문제
올해는 진지하게 복권을 사볼까? 4p



생각을 갈무리하고 다음 날을 맞이한 수짱은 새로 생긴 요가학원을 발견하죠. 한 달 수강료 1만 엔이라는 안내를 읽는 동안에도 '노후'는 마음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한 달에 1만 엔씩 노후대비 적금을 들면...



적적한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수짱 발아래로 달빛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노후가.
멀리 있는 미래가.
현재, 여기 있는 나를 구차하게 만들고 있다. 8p



수짱은 요가를 시작하기로 결심하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 '마스다 미리'가 그린 만화, <수짱> 시리즈 중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입니다.


카페 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서른다섯 살의 수짱,

결혼 상대 없이 흔을 맞이한 회사원 사와코,

결혼과 함께 퇴직한 수짱 친구이자 임산부인 마이코.


주인공은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성 세 명입니다.






요가학원에 등록한 수짱은 대학시절 연을 맺었던 사와코와 재회합니다. 13년 만이었죠.



13년 전이라고 하면 그때는 아직 어린아이인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성인이었다.
인생은 성인의 기간이 길구나.  14p



평균 수명 4분1만 지나면 누구나 성인이 됩니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지고, 삶을 구분할 직업도 선택해야 합니다. 남들과 다른 성장 속도를 갖고 있어도 느리게 걷는 것은 곤란합니다. 스무 해가 지난 사람이 성인으로 분류되는 일에 개인 의사는 고려되지 않거든요. 성인이 향할 다음 표지 명확합니다. 사회적 성공을 제외하면 결혼과 출산이죠.

결정을 미루고 싶은 사람도,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도,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도 시간이라는 녀석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4분의 1 지점을 구분하던 시간은, 4분의 2 지점에 다시 한번 선을 긋습니다.




  


 사와코


마흔을 앞둔 회사원 사와코는 결혼을 원하지만, 한편으론 치매 환자인 할머니와 홀로 사는 어머니를 걱정합니다.

저녁식사가 차려진 식탁엔 씹어 삼킬 수 없는 고민들이 함께 놓여있죠.



할머니는 누운 채 거동을 못하시고,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가신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 같지만 그렇지만...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성장하는 중일까.
어느 시점이 성인의 완성일까?

"아, 맞다~
사토 씨가 맞선 자리를 소개해줬는데,
이혼한 사람은 싫지? 그래서 거절했어."

전에는 싫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응."

그렇지만 왠지 그런 말을 하기도 어렵다.
내가 결혼해버리면 어머니는 할머니와 둘만 남게 된다.
이대로 나이가 들면, 난 어떻게 될까? 나의 미래는. 22p



설거지를 하던 사와코는 생각에 잠깁니다. 이혼남과도 '가능'하다고 여길 만큼 결혼을 원하지만 망설일 이유 역시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젊은 몸으로 마음껏 사랑받고 싶지만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성인이 될 시간을 못 박아 주고, 결혼과 출산 시기를 자신만만하게 정해 주던 '시간'은 그녀에게 해줄 말이 없어 보입니다.






 수짱


결혼을 선택한 삶선택하지 않은 삶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방향이 정해지면 속도도 달라지죠. 변화를 거부하고 다른 이와 방향이나 속도를 맞추려 들면 상처를 입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도 익숙해질 수 없죠. 삶이 그릴 궤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상처니까요.  


다가올 출산을 축하해주기 위해 수짱은 오랜 친구 마이코와 만납니다.



친구 마이코는 작년에 결혼해서, 지금은 임산부.
일은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밖에서 일하던 때의 나를 점점 잊게 돼."
"원래 그런 건가?"
"그런가봐."

배 속에 아기가 있는 사람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실례인 듯해서 아기 중심의 질문만 하게 된다.
 
"아기 이름은 정했어?"
"와, 후보가 다섯 개나 있어?"
"아기 침대는 샀어?"

그리고 이런 상황을 조금 피곤해하는 내가 있다.
마이코, 미안. 관심 있는 척해서.

"아, 배불러."
"점심을 세 식간이나 먹었네~"
"정말! 하하하"
"피곤하지 않아?"
"응 괜찮아!"
"수짱, 그럼 또 만나. 일 열심히 하고."
"응, 몸 조심해. 벌써 다음 달이네."
"아기 낳으면 집에도 놀러와~"
"응."

이 느낌
이 쓸쓸한 느낌
몇 번이고 경험했다.
지금. 나를 쓸쓸하게 만드는 건. 친구에게 아기가 생기면 쓸쓸하고 불안해지는 것은
그것은 어쩌면 외톨이 할머니가 되어 있을 자신을 떠올리기 때문인지도.
이대로 할머니가 되어서 일도 돈도 없고 누워서 거동도 못하는데 의지할 사람도 없다면
그렇다면 나의 인생, 내가 걸어온 인생 전부가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몸이 떨린다. 63p



카페 점장 수짱은 직원들을 잘 이끌고, 개인 시간을 할애해 신메뉴 개발하는 직장인입니다.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와코 할머니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친구입니다. 일에 성실하고 삶을 사랑하는 성인입니다. 결혼에 눈길을 주지 않은 이유는 그보다 중요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혼과 출산을 향해 한 발자국 멀어지는 친구를 보며 수짱 역시 마음이 흔들립니다.

예상하기 쉬운 미래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시한 장난처럼 시작한 '유서 써두기'는 차츰 전문 서적을 찾아볼 정도로 진지해집니다.

수짱은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있는 수짱 우주에 태어나 결혼을 피했을 뿐이지만 특정한 순간마다, 어쩌면 점점 더 자주 몸이 떨리는 경험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이코


수짱과 헤어진 마이코가 귀가하기 위해 지하철에 오릅니다.

맞선을 통해 결혼했고 출산을 위해 퇴사했죠. 태어날 아이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수짱이나 사와코달리 두려움보단 기대가 더 큰 미래를 그릴 수 있. 지하철에선 자리를 양보받고 처음 보는 사람이 축하도 건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니다. 정말 그럴까요?



마이코입니다.
서른다섯 살의 임신부입니다. 작년에 맞선을 통해 결혼했습니다. 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회사는 그만두었습니다.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입니다.

이대로 좋아. 잘된 거야... 하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렇게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일해서 능력도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무직의 임산부.
대학도 회사도 결혼도 선택은 내가 했어.

"여기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나는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을까?

"언제예요? 예정일이"
"다음 달 20일이에요."
"많이 기다려지죠?"
"네."

왜, 더 이상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잘 가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지금의 나여, 안녕히.

"이 아이 외에 소중한 것 따위는 없어지겠지."

언젠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

"수짱을 불편하게 한 것 같아."

그렇지만 만나 두고 싶었어. 수짱과,
지금의 나로. 70p



마이코는 대학도 직장도 스스로 선택했고, 열심히 일해서 능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주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출산을 선택한 순간 직업 없는 임산부가 되었죠. 그녀가 두 사람과 다른 미래를 갖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정체성입니다.


아이 엄마가 아닌, 곧 사라질 지금 모습으로 친구와 만나고 싶었다는 고백이 먹먹하게 느껴집니다.






짧고 담백한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짧고 담백하게 넘길 수 없는 주제를 던집니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이대로도 괜찮을 걸까. 내 편이라고 믿었던 고독이 나를 배신하는 것은 아닐까. 결혼이나 출산이 불안을 막아줄 수 있을까. 그걸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순 있을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때론 거창하고 때론 소소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잔잔하고 진지한 고민들.

퇴근길을 따라 걷는 상념과 찻잔 속에 녹아드는 불안.


삶이라는 여정 어디쯤을 지나면 앞이 보이지 않는 막연함보단 조금씩 뚜렷해지는 내일을 더 염려하며 살게 되죠.

안개 같은 청년기를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불안한 분들에게 권합니다.

때때로 삶을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햇볕 아래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 해결책이 아니라 별빛이 성성한 골목 어귀에서 공감과 동행으로 위로를 건네는 서로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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