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발부리에 차여 창신동으로 굴러들어 온 지도 3년째다. 가난의 냄새가 눅진하게 배어있는 이 골목길 사이사이를 매일 오가며 내 몸에 붙은 가난의 냄새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모여 살며 서로의 가난을 멸시하고 연민하며 같은 냄새를 공유하는 일은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클래식한 격자무늬의 베레모를 멋스럽게 쓴 점잖은 노신사와 맥주를 마셨다. 보통은 포장마차에서 파는 잔술을 마시곤 하는데 노신사는 호프집에서 과일 안주까지 시켜주었다. 조금 들떠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고 평소보다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여느 술자리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을 법한 그런 진부한 인생 이야기를. 그는 느긋하게 내 말을 들어주었고 가끔 고개도 끄덕여주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을 그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쓱했으나 술자리를 파한 뒤 노신사가 쥐여주는 돈 3만 원에 나는 오빠, 고마워요. 반색하며 연신 인사를 해댔다.
돌아오는 길에 골목 한가운데 자리 잡은 너와 마주 섰다. 어째서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애써 떠나 왔는데 왜 너는 거기에 피해 갈 수 없는 섬처럼 붙박여 있는 걸까. 나는 너에게 ‘이름’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름을 부르지 않음으로써 너는 내게 무의미한 존재가 되고 내 인생 밖에 존재하는 타자가 된다. 너는 수많은 길고양이 중에 한 마리에 불과한 ‘그냥’ 고양이니까.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내게서 달아나.
골목의 빛과 어둠은 강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그림자가 되어 어둠으로 스며든다. 어둠이 되어 시멘트벽을 타고 배관으로 흘러든다. 흘러 흘러 바람이 된다. 바람이 되어 전깃줄에 뒤엉킨다. 그렇게 나는 냄새가 된다. 쪽방촌 골목길 구석구석에 눌어붙은 가난한 냄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