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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희 Feb 17. 2021

술에 취한 눈사람

외로운 술잔에

이제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소주를 붓는다.

소주는 넘치고

목구멍에서 욕지기도 넘친다.


봄이 그리워

서둘러 꽃망울을 피운 매화가

으스스  소스라칠

늦겨울 눈이란

술잔을 기울이기 좋은 핑거리지.


잔인한 혓바닥은

예기가 되어 심장을 난도질하고

동공 속 심연에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공허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불현듯 발광하여

눈밭으로 뛰쳐나가 말갛게 웃어 본다.

세상이 하얗구나.

말도 안 되게 하얗구나.

그렇다면 하얀 사람도 있어야지.


주먹만 한 눈사람이

쓸쓸하게 세상을 등진 모습에

너는 아프지 마.

너는 외롭지 마.

좀 더 큰 눈사람을 곁에 세워 본다.


그렇구나, 나는.

눈사람 하나 홀로 있는 꼴을 차마

볼 수 없는 거구나.

그렇구나, 나는,

네가 이룬 결정체의 한 조각일 뿐이구나.


눈사람은 술에 취했다.

나도 술에 취한 듯하다.

너도 술에 취했을 것이다.

세상은 숙명 같은 고독을 견디기 위해

오늘 하루도 소주에 취해 잠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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