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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쥬스 Apr 28. 2020

국경을 넘는 일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날은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

스페인 북부를 횡단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의 산골 마을 생장 피에드 포르에서 시작된다. 전날 밤 마을의 기념품 가게 같은 관공서에서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다음날 꼭두새벽부터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 국경을 넘는 과정엔 벽을 지나거나 군인들에게 검문을 받거나 사진촬영이 금지된 기다란 복도를 통과하는 일이 없다. 피레네 산맥의 등줄기를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스페인에 도착해있다. 바다와 휴전선으로 둘러싸여 엄밀한 수속을 거치지 않고는 국경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내게, 더구나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이 길을 선택한 내겐 걸어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길에 정말로 아무런 경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곳의 국경은 다른 방식으로 경험된다.


피레네 산맥은 수풀이 우거진 한국의 산들과는 다르다. 키 큰 나무는 찾기 힘들고 낮은 목초들이 발 밑 가득히 깔려 말 그대로 산의 ‘맥’이, 그 새파란 골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걷다가 둘러보면 내가 걸어온 길과 가야할 길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만큼 근육통도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 길 위에는 벤치가 없다. 스스로 멈추지 않으면 걸음을 멈추게 할 것이 없다. 초심자의 긴장으로 무장한 채 걷다보면 조급해진다. 산은 춥고 이따금 몸을 휘청이게 하는 돌풍이 분다. 첫날 주어진 28km라는 거리가 얼마나 걸어야 닿는 거리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이 산을 통과해야 한다는 마음이 등에 걸린 10kg의 무게를 잊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누적된 근육통이 종아리를 찌른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함께 걸은 한 체코 여자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길의 초입엔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서로의 나라와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어느 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더 이상 걸을 수 없겠다고 말했다. 걷기 시작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서였다. 함께 잠시 앉아서 쉬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절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길을 걸을 준비가 안 됐던 것 같다. 사실 지금 제대로 서있기도 버겁다. 내게 정말 실망스럽다. 그냥 나를 두고 가. 그녀와 멀어지고 한참이 지난 뒤에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여전히 거기에 한 점으로 있었다. 나는 며칠 뒤 다른 여행자의 입을 통해 첫날 피레네 산맥에서 한 붉은 머리의 여자가 엉엉 울면서 산을 되돌아 내려가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나는 걸을만했다. 근육통도 못 참을 정돈 아니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나는 이 여행을 통해 내가 걷는 데 꽤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주저앉힌 건 다른 일이었다. 그 날 걸어야 할 길의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을 때, 물기 섞인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그게 뭐였는지 모르겠다. 작은 얼음결정이 섞여있었거나, 흙먼지가 섞여있었거나. 갑자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각막이 베인 듯한 통증이었다. 감정과 무관한 눈물이 쏟아졌다. 잠깐일 거라 생각했는데 눈을 아무리 깜박여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억지로 더 걸어보다가 쉼터 같은 곳이 보여 다가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묘비였다. 이 길에서 걷다가 죽으면 쓰러진 곳에 비석이 세워진다. 오래 전 누군가는 순례의 첫날 바로 여기서 죽었고 나는 지금 그 곁이었다. 공포심에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상에서 이런 일을 겪으면 현명한 대처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순례길 위 어느 황량한 산등성이에 외따로 놓여있는 타지인이었다. 찬 바람 웅웅거리는 소리만 귓가에 가득했다. 단순한 공포심 이상의 어떤 경외감이 머리를 짓눌렀다. 신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느 성전이나 신화에 나오는 준엄한 시련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꿈꿔온 여행이었다. 뚜렷한 경계에 둘러싸인 채 보낸 2년여의 군생활 동안 나는 한없이 걸을 수 있는 여행을 꿈꿨다. 군대는 철책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경계들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인간성의 밑바닥을 볼 수도 있고 인내심의 끝을 볼 수도 있다. 속에 묻혀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관계의 테두리를 볼 수도 있고 눈 뜨고 서있는 것 외엔 할 일 없는 시간동안 내 가능성의 한계를 내다볼 수도 있다. 제대 후에도 그 벽의 잔상은 남아있어, 내게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넘어서는 상징적인 의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이 여행은 그 벽을 넘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내가 군대에서 벽들을 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벽이 무너질 때까지 마음을 무너트리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이었다. 피레네 산맥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묘비 옆에서 눈을 감고 웅크린 채 바람이 가시길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십 분쯤 지나서야 눈을 제대로 뜰 수 있었는데, 방금까지의 통증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씻은 듯 사라졌다. 눈물에 씻겨 두 눈이 더 맑았다. 때마침 점심 즈음이었다. 배낭에서 전날 마트에서 번들로 사둔 빵을 꺼내먹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배는 든든해졌다(나중에 다시 먹어보니 원래 별 맛이 없는 빵이었다). 나는 이곳을 기억해두고 싶어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머물던 곳이 높은 지대였으니 그 뒤로는 대체로 내리막이었다.


길은 이따금 안개에 잠기곤 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 걸음을 늦췄을 때 멀리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멈춰있는데 늙은 목동이 이삼십 마리의 양떼를 이끌며 다가왔다. 아직 먼저 인사를 건넬 붙임성이 없던 풋내기 순례자에게 목동이 인사를 건넸다.


"올라!"


올라, 라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로 입국한 뒤 내내 들어오던 '봉쥬' 가 아닌, ‘올라’ 라는 낯선 인사말이었다. 양떼가 노릿한 먼지구름에 날 남겨둔 채 길을 가로질러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내가 스페인에 도착했음을 알게 됐다.


스페인의 첫 마을은 롱세스바예스. 작은 마을이지만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순례자들을 거두기 위한 큰 규모의 알베르게가 있는 곳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순례자들은 모두 여기서 만난다. 모두가 종아리에는 욱신거리는 통증을, 그러나 얼굴에는 첫 관문을 무사히 넘긴 자의 환희를 마치 여권 위의 입국 도장처럼 달고 다닌다. 길 위에서 잠시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들과 밤이 길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남은 길 위에서 이들을 계속 마주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견한다. 그리고 어렴풋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든 피레네 산맥을 통과해야만 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각자에게 주어진 경계를 통과하여 여기 도착했음을.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국가에서 모여든 여행자에 불과했던 사람들은 이때부터 비로소 서로를 닮은 얼굴의 순례자로서 바라본다.



30일의 긴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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