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 나름의 궤적을 갖는다. 그 짧은 낙하의 시간에도 고유한 곡선이 존재하며, 하늘과 바람과 중력이 손을 맞잡아 만든 우연의 예술이 거기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낙엽의 궤도를 누구의 것이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의 몫이며, 기록되지 않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인간의 창작은 다르다.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문장, 두드려 만든 멜로디, 붓끝에 맺힌 색감의 결정. 이 모든 창작은 누군가의 시간과 감정, 그리고 고통과 기쁨을 걸러낸 고유한 결실이다. 이 결실에 이름을 붙이고 보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작권이다.
저작권은 법 이전에 윤리이자 도덕이다. 누군가의 상상력을 훔쳐 이윤을 만들거나, 타인의 감성을 베껴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일은 단지 불법이라서가 아니라 부도덕하기에 잘못된 것이다. 창작물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기억이, 어떤 날의 눈물과 밤잠을 이룰 수 없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단순히 ‘돈’이나 ‘소유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존엄의 문제이며, 존재에 대한 인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수한 순간에 저작권을 가볍게 넘긴다. SNS에서 공유되는 짧은 시 한 줄, 어디선가 들은 듯한 멜로디, 유튜브 영상 속의 배경음악.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정작 그 아름다움을 만든 사람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어느새 익숙해진 이 소비 행태 속에서, 창작자의 얼굴은 흐릿해지고,
이름은 지워진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정말 모든 것이 누군가의 것일까?”
그 질문은 철학적이다. 아이디어는 공기처럼 흘러 다니고, 감정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표현은 다르다. 같은 슬픔을 겪더라도, 어떤 이는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고, 어떤 이는 노래로, 또 어떤 이는 고요한 문장으로 녹여낸다. 이 ‘표현’의 방식이 곧 그 사람의 정신이며 철학이다, 저작권은 이 표현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체계다.
저작권이 없다면 세상은 잠시 더 자유로워질지 모른다. 누구든 남의 것을 가져다 쓸 수 있고, 그만큼 창작은 빠르게 유통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곧 무책임이 되고, 무책임은 창작의 가치를 훼손할 것이다.
누구도 존중받지 않는 세상에서, 진정한 창작은 살아남지 못한다. 창작자는 그 결과물보다 더 오래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남긴 것이 ‘그들’의 것이라는 최소한의 사실만이 보장되길 바랄 뿐이다.
저작권은 창작자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타인의 고통과 열정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당신은 누군가의 시간을 훔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저작권은 법률이라는 틀 안에 있지만, 그 뿌리는 인간 존엄에 닿아 있다.
우리는 이제 ‘나눔’과 ‘소유’의 경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공유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오히려 더욱 저작권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유는 허락 위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허락은 존중의 다른 말이다. 그것은 단지 “써도 될까요?”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고유함을 인정합니다”라는 고백이다.
언제든 우리 모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다. 말 한마디, 낙서한 줄, 조용한 멜로디. 그 어떤 것도 누군가에겐 세상을 견디게 한 이유였고, 그 자체로 존재의 증명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함부로 가져갈 권리가 없다. 대신, 손을 모아 말해야 한다. “당신이 만든 세계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그 경의의 방식이 바로 저작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