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오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꼭 추천하는 네덜란드 음식이 있다. 네덜란드 과메기 하링(Haring)이다. 처음 먹었던 하링은 정말 색다른 맛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겨울이었는데, 슈퍼마켓 한쪽에 있는 푸드트럭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종이접시를 들고 뭘 먹고 있었다. 게다가 푸드트럭과 사람들 주변에 새가 많이 날아다녔다. 도대체 뭘 팔기에 사람도 새도 저렇게 모이는지 궁금해서 쳐다봤는데, 더치인이 그걸 보더니 꼭 먹어봐야 한다며 추천했다. 네덜란드에 도착한 둘째 날 쯤이었는데, 그 뒤로 거의 매일 하링을 꼭 챙겨 먹었다. 심지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하링을 사 먹었다.
하링은 청어로 만든 발효식품이다. 생김새와 비린내 그리고 미끌거리는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주로 위 사진처럼 먹는데, 겉보기와 달리 날것이 아니라 가공된 형태이다. 네덜란드에서 청어는 주로 소금에 절인 형태로 먹고, 과메기처럼 말려 먹기도 한다. 소금에 절인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어서 하링이라 보편적으로 부르지만, 소금으로 절인 형태의 정확한 명칭은 'Zoute haring'이다.
네덜란드 어디를 가나 하링을 판매하는 푸드 트럭이나 스낵바를 만날 수 있다. 판매하는 곳마다 가격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한 마리에 보통 2유로 정도 한다. 가장 좋은 하링을 만들기 위한 청어 철은 5월 중순에서 7월이다. 어차피 절여 먹는 건데 맛 차이가 있겠나 싶지만, 맛 차이가 있다. 소금에 절인 형태라 보통은 짠맛이 있지만, 싱싱한 하링일수록 고소한 맛이 더욱 강하다.
하링은 과메기와 마찬가지로 오메가 3가 매우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메가 3 외에도 칼슘, 마그네슘, 인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피부나 관절, 뇌에 좋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ollandse Nieuwe는 특정 기간에 잡힌 청어로 만든 하링이다. Hollandse Nieuwe는 네덜란드의 특산물로, 유럽 연합에서 '보장된 전통 특산품(Gegarandeerde Traditionele Specialiteit)'으로 인정받았다. 매년 1억 8천만 마리의 Hollandse Nieuwe가 생산된다. 이중 7천6백만 마리가 네덜란드에서 소비되고, 나머지는 독일이나 벨기에로 수출된다.
Hollandse Nieuwe 하링은 5월 중순부터 7월에 잡힌 청어로 만든 하링이다. 5월 중순 전에 잡히는 청어는 지방이 부족하고, 7월 이후에 잡히는 청어는 지방이 너무 많다. 이 기간에 잡힌 청어는 지방 함량이 16%로 딱 적당하다. 이 기간에 잡힌 청어는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만들어진다. 그리고 6월 초에 공식적인 승인이 있으면 Hollandse Nieuwe라는 이름으로 9월 30일까지 판매된다. 만약 승인 날 이전에 Hollandse Nieuwe를 판매하면 수천 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9월 이후에 판매되는 Hollandse Nieuwe 하링은 'Maatjesharing'이라고 한다. Hollandse Nieuwe나 Maatjesharing이나 동일한 시기에 잡혀 동일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하링이다. 하지만 9월이 지나면 더 이상 Hollandse Nieuwe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9월 이후 판매되는 하링은 Maatjesharing라고 부른다.
#오순절 음식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하링은 네덜란드의 역사와 함께한 중요한 음식이다. 중세시대에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청어를 먹었다. 당시 청어는 오순절 기간에 먹었던 음식이다. 겨울에 꽁꽁 얼어 팔지 못 한 청어를, 고기를 먹지 못 하는 오순절 기간에 먹었다. 중세시대에 먹었던 청어는 소금에 절인 하링 형태는 아니었다.
#황금시대의 시작
하링은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이끈 중요한 경제 수단이다. 과거 네덜란드는 지역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육지에서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껴있었고, 바다에서는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이 이미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게다가 네덜란드 국토는 해수면보다 낮아 농사를 짓기에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해류의 변화로 발트해에서 잡히던 청어들이 북해에서 잡히게 되었다. 14세기 당시 네덜란드 인구 1/5이 어업에 종사했는데, 나중에는 인구의 1/3이 청어잡이에 나서게 된다.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는 청어의 어장 확보를 위해 3차례나 전쟁을 하기도 했다.
1358년 네덜란드 북부에 살던 빌럼 벤켈소어(Willem Beukelszoon)라는 어부가 하링 염장법을 개발한다. 네덜란드 어부들은 염장법을 통해 하링을 1년에서 최대 2년까지도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염장법은 냉장고가 없던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저장법이었다. 이 저장법은 오늘날까지도 하링을 만드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저장법 덕분에 네덜란드는 청어를 잡기 위해 원양어업을 나설 수 있었고, 다른 유럽 국가나 잉글랜드에 하링을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북해에 있는 다른 나라들보다 청어 어업에 있어 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하링 시장을 독점하게 된 네덜란드는 먼바다로 나가는 일이 많아지게 되자, 조선업에 대규모 투자가 이어졌고 네덜란드 조선업이 발전하게 된다. 또한 네덜란드는 어업을 시작으로 북동유럽, 영국, 남유럽 및 아프리카와 해상무역을 시작한다. 네덜란드는 도시마다 많은 운하를 건설하여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발달된 수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런 조건들은 네덜란드가 황금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이 되었다.
#독립 전쟁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에서도 하링이 등장한다. 16세기에 네덜란드는 스페인에 맞서 독립 전쟁을 했다. 이 독립 전쟁은 80년 전쟁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름 그대로 약 80년 동안 전쟁이 있었다. 1574년 10월 3일, 네덜란드 도시 라이덴(Leiden)은 마침내 스페인 군의 포위와 공격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라이덴 사람들은 오랜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었고, 죽어갔다. 전쟁을 이끌고 라이덴을 해방시켰던 네덜란드 귀족들인 Watergeuzen은 굶주린 라이덴 사람들을 위해 흰 빵과 하링, 그리고 스튜를 배포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라이덴에서는 매년 10월 3일에 'Het 3 oktoberfeest' 또는 'Leidens Ontzet'라 불리는 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 동안 라이덴에서는 시민들에게 하링과 흰 빵이 전달된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하링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소금에 절인 하링은 다진 양파와 함께 먹는다. 꼬리를 잡고 통째로 먹기도 하고, 먹기 좋게 썰어서 먹기도 한다. 하링을 통째로 먹는지, 잘라먹는지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에서는 하링을 토막 내어 양파, 피클과 함께 먹는다. 로테르담에서는 하링의 꼬리를 잡고 통째로 들어 먹는다.
하링은 빵에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기도 한다. 하링 샌드위치는 '브로쳐 하링(Broodje Haring)'이라고 부른다. 하링 샌드위치는 든든하고 간단한 간식이다. 손님을 초대했거나, 파티가 있을 때는 호밀빵에 하링을 올려 안주로 먹는다. 개인적으로는 이때 이용하는 호밀빵이 맛없어 안 좋아한다. 레스토랑에서는 하링을 고급스럽게 양파, 피클, 토마토, 레몬, 허브 및 소스와 함께 제공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하링으로 다양한 퓨전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청어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거나, 롤빵이나 팬케익에 넣어 먹기도 한다. 또는 일본식처럼 고추냉이와 무와 함께 스시처럼 먹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