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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치콤 Mar 20. 2021

네덜란드 시월드는 어떨까?

결혼 후, 시댁 또는 처가를 대하는 네덜란드인들의 자세

얼마 전, 인스타툰이었던 '며느라기'는 카카오TV를 통해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며느라기'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주인공 민사린에 공감했다. 이제 막 결혼한 민사린은 시댁에 잘 보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며 '며느라기'를 보낸다. 시어머니의 생신 상을 차리고,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는 시댁 조상을 위한 제사상을 차리며, 명절이 되면 여자들만 부엌일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런 민사린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공감했던 건, 아마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인 것 같다.


네덜란드 '시월드'는 한국과 무척 다른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말하는 '시월드'가 없다고 보면 된다. 시월드만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결혼 후 시댁이나 처가를 대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자세는 동일하다. 시댁과 처가에서 결혼한 자녀 부부를 대하는 자세 또한 동일하다.






시댁과 처가는 동일

출처 동아일보

시댁과 처가는 동일한 배우자 부모님의 집이다. 시댁이기 때문에 처가보다 더 우선되어야 한다거나, 처가 일이 희생되지 않는다. 명절에 시댁을 먼저 가고, 처가를 나중에 가야 한다는 우선순위도 없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에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거하게 식사도 하고, 선물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네덜란드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과 26일 이틀이어서 하루는 남편 가족들과 다른 하루는 아내 가족들과 보낸다. 어느 쪽 가족들을 먼저 방문할지는 의논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맞춰 정한다. 시댁을 먼저 가는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




따로 없는 호칭

출처 머니투데이

한국에서는 결혼 뒤 신경 써야 할 것들 중 '호칭'도 포함된다. 남편이 처가 식구들을 부르는 호칭과 아내가 시댁 식구들을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 그 복잡한 호칭 걱정을 네덜란드에서는 안 해도 된다. 결혼 뒤 불러야 하는 호칭이 없다. 배우자 부모님을 부를 때는 간단하게 이름을 부른다. 배우자의 형제자매도 그냥 이름 부르면 된다.


부르는 호칭은 없지만, 관계를 정의하는 단어는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내 배우자 가족을 소개하는 자리라면, 관계를 정의하는 단어를 사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부모님을 소개해야 한다면, 'Schoonouders[스혼아우덜스]'라고 하면 된다.


이름을 부르니까 가족 관계가 묶인 느낌이 별로 없다. 그리고 상대방을 대할 때도 가족관계에 묶여 대하지 않고, 그저 한 인간 대 인간일 뿐이다.




사전 연락은 필수

출처 Faqt

결혼 뒤, 자녀의 집을 방문하려면 사전 연락은 필수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방문 직전 연락하지 않는다. 적어도 2주 전에 연락해 언제 방문하고 싶은지, 그날 방문해도 되는지, 방문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한다. 만약 자녀 부부가 그날 다른 약속이나 계획이 있다면, 거절당할 수 있다. 거절했다고 해서 이것이 비난받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는 자녀가 부모님 댁에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간단한 티타임

출처 Jumbo supermarkt

시부모님이 혹은 장인어른 장모님이 방문하신다고 해도 부담스러울 건 없다. 보통 부모님은 식사 시간이 아닌 시간에 방문한다. 간단하게 커피 또는 차를 대접하고, 간단한 다과 또는 안주만 준비하면 된다. 손님맞이에 필요한 다과나 안주들은 다양하게 완제품으로 슈퍼마켓에서 많이 판다.


티타임을 접대하는 것은 오로지 아내의 몫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준비하고, 함께 대접한다. 남자는 앉아만 있고, 여자만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남편이 몸이 불편하지 않는 이상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남편과 아내의 일 분담이 정확하게 50:50이 아닐 수 있다. 남자가 더 많이 일할 수도, 여자가 더 많이 일할 수도 있다.


시부모님이 방문했다고 해서 며느리가 식사까지 준비하지 않는다. 부모님들은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알아서 눈치껏 집으로 돌아간다. 만약 티타임이 너무 즐거워 가실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면, 곧 저녁 식간이라고 운을 떼면 된다. 함께 식사하는 경우는 오직 자녀 부부가 부모님을 식사에 초대한 경우만 해당된다.




식사 초대했다면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만약 배우자의 부모님을 식사에 초대했다면 어떨까? '며느라기'에서 본 것처럼 여자인 며느리(혹은 딸)와 시어머니(혹은 장모님)는 부엌에서 식사 준비로 분주하고, 남자들은 거실에 앉아있을까? 당연히 어림없는 소리다. 부모님을 식사에 초대했다면, 그 집의 주인인 자녀 부부가 식사 준비를 한다. 초대받은 부모님은 어디까지나 손님이기 때문에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가족 분위기에 따라서는 시어머니나 장모님이 식사 준비를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방을 차지하고 서서 며느리나 딸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않는다. 무엇을 도와줄지 묻고, 보조처럼 도와줄 뿐이다.


부모님을 식사에 초대했을 때, 100% 아내만 일하지 않는다. 식사 준비는 기본적으로 아내와 남편이 함께 한다. 하지만 요리에 대한 관심도, 요리 능력에 따라 일 분담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요리에 관심이 더 많고, 능숙한 사람이 주도해서 요리를 할 수 있다. 친한 친구들 중 한 커플은 남자가 요리를 무척 좋아한다. 식사에 초대하면 늘 남편이 주방에서 바쁘고, 아내는 거실에서 손님들과 있다.


식사에 초대했다고 해서 꼭 집에서 요리해서 대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초대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요리를 해서 대접할 수도 있고, 배달음식을 시킬 수도 있으며 식당에서 외식할 수도 있다. 100% 초대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시댁은 시부모님의 것

출처 blogsearch.kr

시댁에 갔다고 해서 며느리가 티타임을 준비하거나, 식사 준비를 하지 않는다. 시댁의 주인은 당연히 시부모님이고, 시댁의 살림 역시 시부모님의 것이다. 시댁에 온 아들 부부는 손님이다. 그래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도와 티타임을 준비하거나, 식사 준비를 하지 않는다. 자녀들을 맞이하느라 부모님이 너무 바쁘시다면, 당연히 도와드리냐고 물을 수 있다. 자발적으로 돕고 싶다면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돕는 것이 며느리 또는 딸의 의무가 아니다.


시부모님이 저녁에 초대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시어머니가 혼자 주방에서 요리하고 계시다고 해서 거실에 앉아있는 며느리가 눈치 볼 필요 없다. 식사 후 설거지 역시 며느리나 딸 몫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녀 부부는 부모님 댁에 온 손님이다.



의무 아닌 시댁 행사

출처 Flair.be

배우자의 가족 행사가 있다면, 행사를 주최하는 이가 가족들에게 미리 연락한다. 언제 행사가 열지 미리 알려주고, 참석할 수 있는지 여부도 묻는다. 만약 사정이 있어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시댁과 처가는 동일하기 때문에, 급한 처가 일이 있어 시댁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며느리가 욕먹지 않는다.


사실 가족 행사 역시 부담스럽거나 복잡하지 않다. 대부분 간단한 티타임이다. 크리스마스처럼 가족들이 함께 식사할 수도 있지만, 정말 특별한 경우다. 식사를 하더라도 꼭 집에서 요리해 먹지 않고, 배달음식을 시킬 수도, 식당에서 외식할 수도 있다. 그러니 가족 행사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가족 행사에 비하면, 네덜란드에서 가족 행사는 매우 간단한 편이다.




요양원은 당연한 것

출처 claims journal

부모님이 나이 들어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때, 자녀가 부모님을 의무적으로 모시고 살지 않는다. 대부분 이러한 경우에는 부모님을 요양원으로 모신다.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셨다고 해서, 불효자식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가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로 언성을 높이거나, 날을 세우며 싸울 필요가 없다.


요양원에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있다. 스스로 생활하는 것이 불편한 부모님이 혼자 또는 부모님끼리만 사시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네덜란드 요양원에서 놀란 점은 직원들의 평균 나이다. 확실히 한국보다 요양원 직원들의 평균 나이가 젊은데, 20대 직원들도 흔하다.


시부모님이 요양원에 계시다고 해서, 반드시 며느리가 의무적으로 자주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자의적으로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지만, 본인이 원치 않는데 의무적으로, 억지로 가지 않는다. 남편은 이를 강요할 수 없다.




안부 전화는 마음대로

출처 당진신문

안부 전화 역시 며느리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안부 전화를 자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화해 나무라지 않는다. 안부 전화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반드시 며느리가 정해진 빈도만큼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안부 전화는 딸이든, 며느리든, 사위든, 아들이든 원하는 사람이 원할 때 하면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며느리가 시댁에 잘 보이기 위한 '며느라기'를 보낼 필요 없다. 자신의 아들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여러 가족 행사에 불러 집안일을 시키지도 않고, 며느리네 집안 살림을 점검하며 잔소리를 하지도 않는다. 아들 부부가 싸웠다고 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불러다 일장연설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아들 부부 일은 아들 부부의 일이다. 결혼 생활에 부모님의 개입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부부 싸움은 부부 두 사람의 문제로 끝날 뿐 가족까지 들먹이며 상처 주지 않는다.


네덜란드와 한국의 '시월드'가 이토록 다를 수 있는 건, 누군가 권의 의식을 갖거나 관계를 수직관계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를 부모와 동일한 성인 인격체로 대한다. 부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권의 의식도 한국보다 현저히 적다. 가정 내 남편과 아내 역시 동일한 인격체이며 수직관계가 아니다. 남편이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복종을 강요하거나, 시댁을 위한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남편과 아내 사이 관계는 시댁과 처가를 대하는 태도도 결정짓는다. 네덜란드에서는 남편과 아내 사이가 동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댁과 처가 사이 차별도 없다. '자유와 평등'을 모토로 삼는 네덜란드에서는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할 수 없고, 강요당하지도 않는다.


종종 부모님과 안부 전화를 주고받을 때면, 한국과 무척이나 다른 '시월드' 문화에 놀라신다. 처음엔 너무 정 없는 것 아니냐 하셨지만, 이제는 며느리를 위해 그런 부분은 좀 배워야겠다 하신다. 정 없고 선이 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모님이나 자녀 부부를 위해 더없이 좋다. 시부모님이나 장인어른 장모님의 방문으로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없다. 부모님이 언제든지 방문해도 웃으며 만나 웃으며 끝날 수 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래서 명절 뒤 이혼율이 높아지는 일도, 시댁 방문 전 남편에게 다짐 받을 일도, 가족 행사 후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부가 싸울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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