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가여운 눈초리가
내 모든 우울을 시인해 버리고야 마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할 때
회사에서 유독 "수진이 요즘 무슨 일 있어?" "안색이 안 좋네"
등의 참견과 애정 어린 말들을 밥 먹듯 들었던 시기에
점심시간에 밥맛이 없어 하루에 한 끼만 먹었던 시기에
동료들의 가벼운 염려가 오히려 나를 더 꽁꽁 숨게 만들던 날들이었다
매일 옆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던 대리님이 무심코 바라본
내 자리 위 약봉지에 쓰여있던 성분이
가족 중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던 대리님이 알아버린 그날에
가족의 아픔을 통해 이미 그 성분들을 알고 있던 그의 눈에,
나의 비밀은 너무나 투명하게 박제되어 버렸다
"뭐가 힘들었어?"
조그마한 오해라도 생길까 다정한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던 대리님이
진심 어린 걱정을 건네왔을 때
정신과 선생님이 제발 말로 뱉어보라 사정해도 나오지 않던 목소리
나 자신조차 부정하고 회피해 왔던 그 무거운 부담감
누군가에게 먼저 말하는 게 바보 같아 보였던 그 모든 감정의 둑이
물 밀듯 터져 나오는 홍수 같은 대화의 시작이었다.
일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던 사람에게 받은 가엾은 눈초리 하나가
내 모든 우울을 시인해 버리고야 마는
허무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안심되던 자백의 시간
기록으로 남는 말보다
마음에 남아 오래 떠나지 않는 목소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