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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T맘 Apr 08. 2019

행복하고 싶다면 헤세처럼

헤르만 헤세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을 읽고

 오랜만에 어른이 되어 헤세를 에세이로 다시 만났다. 내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두서없 짧더라도 남이 읽어주길 바라는 소소한 이야기라는 면에서 다른 글보다 수월함 어서다. 소설처럼  이야기 나로 군가 장시간 사로잡을 자신이 없다. 같은 이유로 독자로서는 에세이보다  재밌고 장황한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런 독서 편식을 깨 준 책 중 하나. 세이지만 흥미로운 소설을 읽는 듯한 흡입력이 있었다. 헤세가 무엇을 사랑하고 경멸했고 어떤 것을 갈망하고 추구했는지 쓰여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헤세와 같은 소위 세계 명작을 남긴 작가는 세기를 막론하고 통한다는 점을 새삼 또 느꼈다. 명작들을 통해 19세기 후반에 태어났던 사람과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변하고 문명이 달라져도 언제나 반복되는 문제와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되는 본질적인 의문은 세상이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치열하게 논의될 수밖에 없다.

 



 본문 - 니나와의 재회- 중에서


 여자 친구의 주방은 연기로 시커멓게 그을렸고, 아주 깨끗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위생과는 거리가 멀다. 바닥은 뱉어 놓은 침으로 얼룩 천지고 의자의 쿠션은 지푸라기가 삐져나와 덜렁덜렁 매달려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그녀의 커피 주전자를 본다면 그 커피를 정말로 마실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낡아 빠진 양철 주전자는 검댕과 재가 달라붙어 시커맸고, 주전자 입구에는 몇 년 전부터 닦아 내지 않은 커피 찌꺼기가 켜켜이 말라붙어 두터운 층을 이루며 굳어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현대의 시간과 현대의 세계를 비껴 나서 살고 있다. 물론 어느 정도 거칠고 허름하지만 , 약간은 황폐하고 위생적이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숲과 산 가까이에 살며, 염소와 닭들과도 가까이 살고, 마녀나 동화와도 더 가깝다. 표면이 우툴두툴한 양철 주전자에서 따라 주는 커피의 맛은 기가 막히다. 장작 연기의 씁쓸한 향기가 살짝 스민 검고 진한 커피다. 이렇게 함께 앉아 늙고 용맹스러운 니나의 얼굴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일, 다정함이 깃든 걸쭉한 욕설을 듣는 일은, 도시의 댄스파티에서 곁들여진 차 대접을 열두 번 받는 것보다, 유명 작가 지식인들과 어울려 문학 토론을 열두 번 하는 것보다 나에게는 더 행복하다. 물론 그런 멋들어진 일들이 전혀 가치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에 오랜만에 간 그는 더욱 많이 늙어있는, 사실 죽었을까 봐 걱정하며 찾아간, 자신보다 40살이나 많은 여자 친구 '니나'를 만난다. 니나는 노인에게 있는 흔한 숱한 질병을 떠안고서도 나약함 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할머니이다. 솔직히, 사람은 살던 대로 살다가 간다. 달라지고자 마음먹어도 어떤 식으로든 그냥 원래의 자신이 되어 있다. 전쟁이나 치명적인 질병, 누구라도 돌아버릴 것만 같은 사건 등을 겪어서 원래의 자신보다 더 망가지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별 계기 없이 원래의 자신보다 더욱 훌륭한 방향으로 달라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원래 훌륭한 사람임이 그간 감추어져 있었을 뿐이다. 헤세는 니나를 보며 니나가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분명히 사랑에 빠졌을 거라며, 올바른 노년의 삶이란 니나와 같은 삶이라고 말한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독거노인 정서적 지원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는 대학생 2명이 한 팀이 되어 배정받은 독거노인의 집에 주기적으로 찾아가 일정 시간을 함께 보내며 특이 사항 및 필요한 자원을 발견하고 기록하여 복지관 실무자에게 알리는 활동이다. 그때, 니나와 아주 많이 비슷한 할머니를 만났다. 봉사활동이라고 다녔지만 정작 그녀를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서 뒤에 있는 일정을 원망했다. 그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언제나 젊은 사람들이 오면 손수 커피를 타서 주며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다. 안 아픈 데가 없는 몸에 정신 사나운 집구석이지만 다정함과 즐거움이 있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무릎이나 손바닥을 탁 치며 웃게 되거나 깨닫는 일이 많았다. 나 역시 헤세처럼, 그 할머니를 만나는 몇 개월의 기간 동안 나의 노년도 그렇게 멋있기를 바랐다.



 위생에 개의치 않고 멋대로 살고 있는 니나로서는, 사실 앉았다 일어나는 거 조차 힘겨운 노년에게 있어 그런 위생까지 신경 쓴다는 것은 마치 지나치게 의식하는 삶, 어떻게 보면 가식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도 어떨 때는 집 청소를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갑자기 누가 들이닥친다 해도 괜찮아 보이는 게 나으니까 하는 경우가 있다. 매사 그런 식의 '어떻게 보일까'를 의식하는 삶을 경멸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런 삶의 순간들은 너무나 많다. 적어도 니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 고독을 이겨내는 용기와 유머, 마지막 순간까지도 세상이 아닌 자신에게 의지하는 힘, 진심이 담긴 미소와 웃음, 자신의 삶에 대한 인정과 사랑, 나이를 막론하고 커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정도의 매력. 그런 게 나의 노년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본문 - 짧게 쓴 자서전 중에서- 중에서


 갈등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열세 살 이후부터 나는 시인이 되든가,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중략) 원래부터 시인인 것은 허용되지만, 시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시를 좋아하거나 스스로의 시적 재능을 자각하는 학생은 교사들에게 의혹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학생은 수상쩍은 존재, 혹은 조롱 감일뿐이었다. 최악의 모욕을 당하는 일도 흔했다. 시인은 영웅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강하고, 멋지고, 기개 높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그런 비일상적인 인물. 역사 속에서 그들은 훌륭했다. 교과서의 페이지마다 그들을 칭송하기 바빴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에서 그들은 미움받는 존재였다. 아마도 교사들의 임무는, 학생이 자유롭고 뛰어난 인간으로 성장하여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을 최대한 미리 저지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나와 내 머나먼 목표 사이에는 아득한 심연이 가로놓이게 되었다. 내게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고, 모든 것이 무가치했다. 오직 단 하나,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무리 조롱을 받더라도 반드시 시인이 되고 싶다는 결심만은 분명했다.




 헤세는 학창 시절의 일정 기간 동안은 매우 우수한 성적, 거의 늘 1등을 맡아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특별한 기질이나 성향이 드러날 때마다 겪었던 교사나 교우들과 갈등을 숱하게 겪으면서 스스로 학교라는 체제에서 낙오되기를 선택했다. 그 후에는 이 일 저 일 전전하다가 죽지 않은 채로 유명 시인이 되고야 말았다. 상당 부분 나의 학창 시절과 비슷하다. 나도 중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썩 잘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곳은 학부 성적과 고입 시험을 합친 성적 수준에 맞춰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공부  한다는 애들 모인 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부모님은 내가 그렇게 바라던 대로 이혼했다. 아빠가 엄마나 나를 흠씬 두들겨 패고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빠를 죽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이러다가 결국 뭔 일이 나지 않을까 해서 엄마에게 제발 도망가자고 통사정을 했지만 엄마는 '그래도'란 소리를 해 가며 굳이 버텨내 왔다. 그러다 누구 하나 죽지 않고 끝났으니 행복해져야 했을까?



 고등학교에 간 나는, 이혼 후 학비를 대주는 명목으로 나만 따로 가끔 만나는 아빠로부터 엄마 몰래 심각한 폭력을 당하며 3년을 버텼다. 이혼 후 변변치 않은 스펙과 이미 좋지 않았던 몸으로 돈 버느라 공장에서 돌아오면 지쳐 잠만 자던 엄마는 그런 사정을, 내가 감춰왔기에 몰랐다. 제발 아빠에게서 도망가자고 하는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서 말하지 않은 3년이었다. 사정은 모른 채 남이 보기에는 그저 억눌려있던 고삐가 풀려 책만 읽고 음악을 듣고 사색을 하던, 사실은 그냥 콱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했던. 결국 그 학교에서는 거의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는, 서울 안의 대학교에 겨우 진학했다.(대한민국이 아직도 대학교에 순위를 매기고 있는 실정이긴 하니까) 그 후로 이 일 저 일, 금세 싫증을 내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헤세는 자신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확실하게 알았고, 용기를 내어 부딪혀 자기 주변의 세계를 부숴가면서 시인이 되었다. 헤세는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숴야 한다.'는 말을 남겼고 얼마 전 읽은 살만 루슈디 <한밤의 아이들>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걸 내던지고 상처를 기꺼이 숱하게 받아들일 만한 용기가 없다. 낙오되기를 선택하지도 못하며 그 어디에서도 항상 중간치를 유지하며 무료해한다. 주변 상황들을 무시하지 못한 채 진짜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닌 삶을 유지해 가고 있다. '다 이렇게 사는 거지 뭐.'라고 웃으며 그 안에서도 평안을 찾았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나는 여전히 가끔씩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는 걸 보면 아직도 방황 중인가 보다.




본문 -어느 공산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그러나 새로이 건설된 인류의 집 안에서도 매우 빠른 시기에 불만이 발생하게 됩니다. 기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마자 어떤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미래의 인류 즉 대중 인류조차도 영혼을 갖고 있으며, 이 영혼이 굶주림과 욕망, 충동과 강요의 유형을 내면에 형성한다는 것, 영혼의 충동, 갈망, 요구 그리고 꿈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과 추구의 내용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예술가, 시인, 이해하는 자, 위로하는 자, 길을 보여 주는 자와 같은 영혼의 안내자들이 있다면, 그건 인류를 위해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겠지요.

 이 순간 그대들의 사명은 명확한 인식입니다. 당신들 공산주의자는 명확한 프로그램을 완수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순간 그대들의 사명은 우리 시인의 사명보다 더욱 명확하고 더욱 절박하고 더욱 심각합니다. 그런 상황은 언젠가 다시 변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주 변해 왔듯이 말입니다.  

 (략) 시인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에 대한 미칠 듯한 갈망입니다. 그래서 만약 외부의 어떤 압력 때문에, 오직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작업할 수 없다면, 즉시 글쓰기를 멈추어 버리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들은 빵을 위해서도, 높은 지위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습니다. 권력에 의해서 이용당하느니 차라리 맞아 죽기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대들은 진짜 시인을 가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시대에 공산주의를 논의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 시대에 무슨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든지 간에, 항상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사실', '어떤 상황'이 발견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결국, 완벽하고 완전한 사상이나 체제는 언제나 없는 것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얼마나 그것이 오래 유지되었는지에 한정된다. 헤세가 이 편지를 누군가에게 쓴 1931년은 공산주의를 지향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깨어있는 사람인양 믿었을 것이다. 깨어있는 사람들은 깨어있는 사람인 시인에게 손을 잡자고 하지만 헤세는 공산주의의 맹점을 콕 짚는다. 오히려 공산주의가 나중에 가서는 자신과 같은 시인과 시인 다운 면모가 다분한 사람들을 죄다 지나치게 감정이 예민하다고 비웃고, 다 똑같아졌으니 만족하며 살 것이지 뭐 그리 불만이 많으냐 하며 핀잔을 줄 것임을 알았다. 궁극에 가서는 부르주아 시대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을 것임을, 폭력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을 것임을 간파하고 있다.



 우리가 학창 시절 역사나 정치, 경제, 문화 수업 등에서 달달 외워온 체제나 사조의 변화들에 대해 많은 선생님들이 '이거 외우려고 하니까 헛갈리지 이해를 하면 쉬워.'라는 비슷한 맥락의 말들로 서두를 깔며 왜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는지 설명해 주셨다. 이처럼 이데올로기도 유행과 다를 바 없이, 세세한 부분이 조금 획기적으로, 혹 하게 보일 순 있겠지만 결국 이미 있었던 것의 변형이나 반복 일 뿐이다. 끝장날 것 같아도 가늘고 길게 여기까지 용케 오고 있는 인류지만, 어떻게 손을 써도 도무지 힘들기만 한 순간이 오면 그게 인류의 멸망인 것이다. 1877년에 태어나 1962년에 떠난 헤세는 독일에서 살다 추방당하여 스위스 및 여기저기 전전하며 사는 전 생애 동안 정치적인 면에서 크게 보면 세 가지 이데올로기를 거쳤다. 나에게 남은 인생은 진짜 길어야 70년일 텐데, 과연 나는 지금과 다른 이데올로기를 접하게 될지 상상해 봤다.  중요한 , 내가 ' 그리고 미래에 뭔가를 간파하고 어떤 로서 살아갈 것인가' 것이다.




본문 -나비의 아름다움- 중에서


내가 자연에 매혹당하여 황홀한 기분을 느낄 때, 그리고 자연의 존재와 자연의 계시에 나를 온전히 내맡길 때, 바로 그런 순간에 나는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탐욕으로 눈먼 이 세계를 떠난다. 이 세계를 잊는다. 그런 순간에 나는 생각도 명령도 하지 않고, 생산도 약탈도 않으며, 투쟁도 조직도 하지 않는다. 괴테가 그랬듯이, 그 순간 나는 오직 '경탄하기'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오직 경탄의 행위를 통해서 나는 괴테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시인들과 모든 현자들의 형제가 된다. 아니, 내가 경탄한 것들, 내가 체험한 그 살아 있는 세계의 형제가 된다. 나비의 형제, 풍뎅이의 형제, 구름의 형제, 강물과 산의 형제가 된다. 경탄의 길 위에 있던 나는 그 순간 분열의 세계를 떠나 조화의 세계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사물과 피조물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타트 트밤 아시(Tat twam asi, 이것이 바로 너다)

 (같은 맥락이라서 발췌 부분을 이어가겠다.)


본문 -불꽃놀이- 중에서


그런데 나는 종종, 인간이 자주 하는 행동과 인간의 원래 참모습은 전혀 다르며, 인간은 겉으로 보이듯이 그처럼 편리와 유용성에만 완전히 미쳐있는 것은 아니고, 그처럼 게걸스럽고 계산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묘하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또다시 그런 생각을 확인해 주는 매혹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호숫가에 자리 잡은 이 작은 도시에서 큰 불꽃놀이가 열렸다. 불꽃놀이는 꽤 긴 휴식 시간을 포함하여 약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내가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그 행사에는 수천 프랑켄이란 돈이 들었다. 나는 환호했다. 시청과 관광협회, 시의회가 함께 뜻을 모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일, 하지만 오직 손익만 따지는 전문가나 실리 추구자라면 누구나 놀라서 기절할 만한 그런 일을 실행하려 했다. 당국자들은 이곳에 머무는 휴양객과 주민들 그리고 자신들까지 모두 한판 재미있게 놀아볼 계획을 짠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가장 유용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장 빠르고 가장 경박하고도 재미있게, 수천 프랑켄이란 여분의 돈을 공중에 터뜨려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훌륭하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해야겠다.




 나는 온전히 어떤 계시에 나 자신을 내맡기고 경탄에 빠져 잠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능력 자체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그림도 잘 못 그리고 시를 쓰라고 하면 울상이 되어 버린다. 가진 게 별로 없어도 행복하고 충만한 사람들은 이런 경탄의 능력을 타고났다. 이 부분들을 특별히 기억하고자 따온 이유는 나 역시 그런 경험을 자주 해보기를 무척이나 원하기 때문이다.


 

 불꽃놀이에 관해서라면 나도 넋을 잃고 아무 생각 없이 감동한 적이 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그냥 술안주 삼는 겸 불꽃놀이를 본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의 불꽃놀이를 봤지만 가장 매혹당했던 것은 임신 중 우리 동네에서 열린 불꽃놀이이다. 출산일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을 때라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구경하는 것 자체가 힘겹고 다소 위험하기도 했다. 고작 동네에서 열린 이 불꽃놀이보다 화려한 불꽃놀이를 본 적도 많은데도 수박만 한 배를 남편과 함께 나눠 안고 어디 앉지도 못한 채 서서 본 그 불꽃이 그렇게 아름다웠다. 매년 초, 길을 가다 생뚱맞은 곳에 조성 사업하는 걸 볼 때마다 쯧쯧 거리던 내가, 불꽃놀이를 보면서는 그저 바보 같은 웃음을 띠고 바라볼 뿐이었다.



 엄청나게 쌓인 눈길 위의 고요함을 뚫고 발자국이 으드득 소리를 내면서 찍힐 때, 드넓게 펼쳐진 꽃밭에서 바람을 선선히 맞았을 때,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얇은 옷차림으로 산책을 할 때, 좋아하는 차 한잔이 유난히 맛있게 느껴지는 때,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나 애교 짓을 보고 덩달아 웃을 때와 같은 기분을 자주 느낄 수 있다면 그런 게 행복일지 모른다. 행복이 뭔지 확실하게 말하긴 어려워도 아무 생각 없이 바보 같은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순간이 많다면 행복하다고 간주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행복감의 포인트는 '아무 생각 없이도 마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성취로 인한 행복감은 배제하겠다. 예를 들어 악착같이 돈을 많이 벌었거나 독하게 공부해서 명성을 얻어 행복하다는 것은 얼마나 악착같았고 얼마나 독했었는지 돌아보며 처음엔 뿌듯하다. 그러나 결국엔 아쉬움이 또 들어서고 더 큰 뭔가를 기대하기에 충만한 기분에 젖어든다는 개념인 행복과 본질적으로 다른 - 잠깐의 기쁨이 아닐까 싶다.



 대체로 헤세가 사랑한 것들은 우리도 사랑하기 쉬운 것들이다. 헤세가 미워하고 지적하기를 꺼리지 않았던 것들은 우리도 그럴 법한 것들이다. 헤세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한 후 신학교에서 자살할 뻔했던 일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독일의 문단과 정계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당한 일, 꽤 불안정했던 결혼생활과 자신의 정신적인 병 등의 많은 풍파를 겪었다. 그럼에도 자기를 발견했고 실현했다는 점에서 행복했다고 믿고 싶다. 지금의 자신을 평온하게 마주할 수 없는 자들이여, 행복하고 싶다면 헤세처럼 사랑하고자 마음먹은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기를. (물론,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헤세는 배제하고 말한 것이니 헤세 일대기 좀 아시는 분들은 진정하기를)


커버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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