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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T맘 Apr 17. 2019

이 봄의 끝을 잡고

즐김을 늦추지 말아요. 봄처럼 우리 인생도 짧고 예쁘니까요.

 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주택들과 싸구려 주점만 즐비한 동네에서 살던 미스 때는 벚꽃이 피는 봄을 느끼려면 어디로든 찾아다녀야 했다. 화사한 꽃길을 걷고 주변의 카페에 들러 분위기를 잡다가 다시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 들어서면 하루의 풍경이 너무 극단적으로 바뀌어서 한숨이 나왔다. 꽃길을 걸으며 미래를 함께하자며 장황하게 떠들던 남자 친구들은 떠났지만, 정작 함께 꽃 나들이도 못해봤고 프러포즈조차 못 한 남편은 집 주변이 죄다 꽃 축제이라 말 그대로 꽃길만 걷게 해주고 있다. 이제 봄은 되려 나들이보다는 동네에서 머무는 계절이 되었다. 5년째 살고 있는 우리 동네는 매년 예쁨을 갱신하고 있다. 이제는 개천 가의 벚꽃나무 풍성한 숱을 자랑하고 버드나무를 끼고 지나가는 다리까지 설치해서 더욱 경치가 좋아졌다. 집 앞 개천 길은 벚꽃축제가 열리고 집 뒤편에서는 5월에 유채꽃 축제, 10월에 코스모스 축제가 열린다. 

 

오후 6시가 다 되어 찍어 햇살이 다소 부족한데도 이 정도 1.
오후 6시가 다 되어 찍어 햇살이 다소 부족한데도 이 정도 2.
작년 5월 우리집 뒤의 풍경. 제주도 안가도 되요. 훗.  출처: 우리 형님의 카카** 프로필

 

 지난 주말, 오전에 혼자 나와 운전면허 갱신을 하러 갔다가 서울로 넘어가 엄마를 모셔왔다. 오래간만에 하는 혼자만의 외출이라 신날 줄 알았는데 꽃잎이 떨어지기 전에 나들이를 하고야 말겠다는 필사적인 의지의 차량들이 많아 도로에 오래 묶여 있어야 했다. 동네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 나가니 햇살이 다소 부족한 거의 초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봄을 만끽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연신 함박웃음과 태국어인지 외계어인지 모를 말들을 끊임없이 조잘대며 아장아장 걷는 딸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우리들의 미소는 봄과 닮았다. 



 나들이를 하다 보면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과 귀여운 아이의 애교 짓을 매개로 또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쉽게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다. 평소 같으면 무표정으로 서로 눈 마주칠 일 없이 지나가며 자기 할 일만 되뇌기 바쁜데, 나뿐 아니라 '이 곳에서 날 만' 다들 좋아 보이는 그런 모습이 나들이의 또 다른 묘미다. 어울리지 않게 휴머니즘 같은 소리 하고 앉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진심이다.




 해가 갈수록 봄과 가을은 무척 짧아지고 있다. '날씨는 좋지만 좀 귀찮은데'하고 한 두 주 외출을 미루면 이미 봄은 떠나고 달갑지 않은 여름이 와버린다. 성수기가 되어버린 여름은 얇은 옷값 외에는 모든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인지 요즘 주변에 봄 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 우리 부부도 이제 아이 비행기 타기에 괜찮은 개월 수가 되기도 했고 둘째 갖기 전에 해외여행 한 번 가보자는 얘기는 종종 하고 있다. 년도 부부처럼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온 데다가 그나마도 4박 5일 내내 비바람이 불어 사진 한 장 남은 게 없는 우리 부부는 주변에서 다들 불쌍히 여겨 너도나도 어디든 다녀오라며 성화다. 그동안은 아기를 데리고 해외를 가기도 뭐하고 감사하게 아기를 맡아준다던 형님네에게 진짜로 맡기기도 뭐했지만 이제는 데리고 가면 그만이니 바야흐로 때가 되긴 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해외여행 경험이 마치  하나의 자격증이 되어버렸다. '해외여행 가봤어?'도 아니고 '해외여행 몇 번 가봤어?'라는 질문으로 바뀐 지 오래이고,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잘못한 것도 없이 자신이 어쩐지 뭔가 덜 갖춰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개강 때마다 각자 다녀온 해외 이야기를 조잘대던 틈에서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그들과 난 서서히 멀어졌다. 친척들 사이에서 누군가 부모님 해외여행 보내드렸다는 소식이 당사자의 자랑으로 시작해서 퍼지면 비슷한 자식 입장의 친척들은 알아서 스스로 압박을 가한다. 노년까지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본 부모로서의 인생은 뭔가 헛살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모자란 인생이 되기 싫어서 어떻게든 해외를 가보려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 형국이다.



  '봄은 ~이래서 싫더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자주 봤다. 일교차가 커서 감기에 걸리기 쉽고 옷 입기도 애매하다. 꽃 알레르기 환자들에게는 곤욕의 계절이며 결혼식이다 어린이날이다 어버이날이다 스승의 날이다 화이트데이다 로즈데이다 해가며 지갑을 탈탈 털어야 하는 계절이다. 그럼에도 봄은 짧고 예쁘다. 왠지 나도 예뻐져야 할 것 같은 그런 계절이다. 한창 예쁜 이 짧은 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꽃길에 몰려나와 서성인다. 우리는 인생이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지친다 말하면서도 실은 '어이쿠야 벌써 내 나이?' 해가며 늘 짧게만 느껴지는 인생을 어떻게든 찬란하고 화사하게 꽃 피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봄이 싫다는 괜한 소리 하면서도 세상 모든 멋은 다 부리고 앉아할 건 다하는 사람들처럼. 해외여행이 무슨 대수냐 왜들 난리냐 하면서도 꼭 한 번이라도 가고 싶은 나처럼. 



 20대까지는 인생의 봄이고 40대까지 여름이라 한다지만 10대여도 겨울일 수 있고 70대여도 여름일 수 있다. 아직 기를 못 편 겨울인 사람, 할 게 너무 많아 여름인 사람, 이것저것 다 지나가고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가을인 사람 등 사람마다 인생의 계절 다르다. 인생의 계절은 자연과 달리 순차적으로 반복되지 않고 봄에서 가을로, 여름에서 겨울로 급작스러울 때가 더 많다. 다들 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는지. 흔히 한 시름, 한 고비 넘기고 앞날이 기대되는 나날을 인생의 봄날이라고 말한다. 그 말도 맞지만 그저 인생 자체가 봄인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은 봄처럼 생각보다 쌀쌀맞아 만만치 않고, 인생 봄을 닮아 생각보다 짧아서 벌써 이만큼 와버린 것이 가끔 당황스럽지만 그럼에도 어여쁜 인생이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즐김을 늦추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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