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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엄마 Dec 29. 2020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을 위하여   

영화 '윤희에게' 리뷰 에세이 : 리뷰에 일상을 더하다.

 저녁식사 준비 전 아이 알림장을 보다가 코로나로 인해 외부 프로그램이 모두 단절되어 초라해진 아이의 일상이 담긴 사진들을 보니 눈물이 주룩 흘렀다. 맥락 없이 화가 나 전혀 웃고 싶지 않은데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오는 요즘. 아이는 답답하다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고 지난 주말에는 갑자기 창문을 열어달라더니 밖에다 얼굴을 내밀고 큰 소리로 '꼬끼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오죽하면 저럴까. 그래도 넌 귀여운 4살이라서 동네에서 소리 질러도 한 번은 봐줄 만해. 엄마랑 아빠는 소리 지르고 싶으면 어딘가로 멀리 찾아나가야 하는데 이제 아무 데도 가지 말라고 하는구나. 주말도, 하얀 첫눈이 와도, 크리스마스도, 연말연초도 아무런 기대가 없는 일상. 기약 없는 버티기에 지쳐가고 있다. 이 와중에 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에 찾은 건 영화다. 몇몇 영화를 보며 재밌고 슬프고 스릴 넘치곤 했지만 다 그때 잠시 뿐, 여운이 오래 남지는 않았는데 영화 '윤희에게'는 하루가 다 갈 때까지 기분 좋은 묵직함이 남아서 오랜만에 글을 쓴다.

 영화 속 윤희는 딸 새봄을 이혼 후 혼자 키우며 매일 인력 차량을 타고 외곽의 공장가로 출퇴근하는 고단한 삶을 묵묵히 살고 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동네 어귀에서 를 피우다가 사람들이 지나갈 때 살짝 숨어드는 모습이 처량한 윤희는 겨울 그 자체이다. 반면 그녀의 딸 새봄은 때 묻지 않은 말간 시선을 가졌다. 아이들의 순수한 말들이 오히려 진리를 담거나 어른스럽듯이 새봄은 부모의 이혼 때 엄마가 더 외로워 보여서 엄마랑 살기를 선택했다. 그런 새봄에게 어쩐지 엄마 윤희는 책임감 이상의 따뜻함을 주고받지 못한다. 윤희는 새봄이 자신은 그저 엄마에게 한낯 짐일 뿐인 거 아니냐고 말해도 어떠한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런 윤희가 답답하지만 삼촌이 자기더러 엄마를 닮았다 하면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귀여운 딸 새봄. 우리 엄마는 왜 그럴까? 그 의문이 이 영화의 시작이자 결말이다.

 "너희 엄마는, 뭐랄까.. 사람을 좀 외롭게 하는 사람이야."

 새봄의 아빠 '인호'는 종종 윤희의 집 앞에서 윤희를 기다린다. 인호의 존재 자체가 윤희에게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드는 것 같아서인지 윤희는 인호에게 참 쌀쌀맞다. 그렇게도 싫다는데 또 자기가 외로울 때면 너도 외롭지 않냐는 식으로 윤희의 집 앞에 서 있는 인호의 모습은 악의가 없다고 하지만 충분히 나쁘다. 이는 윤희가 여전히 평범함강요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날 인호가 자신의 재혼 소식을 전하자 그들은 서로 미안함, 안쓰러움, 후회 그 모든 것들이 엉켜있는 눈물을 주고받는다. 인호를 토닥이며 축하와 행복을 빌어주는 윤희는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너도 이 곳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눈과 달, 밤과 고요뿐인 오타루가 윤희에게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쥰. 쥰은 마사코 고모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윤희와 쥰, 마사코 고모는 가득 쌓인 눈으로 동네 곳곳을 묻어버리는 오타루를 닮은 삶을 견디며 살아간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고 또 왕창 쌓여버리고 마는 눈을 보며 마사코 고모는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어쩌면 눈이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가득 쌓인 눈을 보면 되려 따뜻한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은 추억과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또 덮어버리기를 반복한다. 설령 그게 아플지라도 그 반복을 기대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과거와 현재의 사랑에 당당하고 솔직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어떤 이유로든 각색하고 미화하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흔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이들의 이야기는 적어도 솔직하고 후회가 없기에 아름답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수북한 눈을 두고보다 나중에 거둬내듯이 쥰은 그리움을 쌓아두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날, 편지를 쓴다. 쥰은 너와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런 날이 있지 않냐고 질문을 던진다. 쥰은 차라리 자신에게 무관심한 아버지가 더 편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나니 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져서 편지를 또 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 뭔가 저지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좋아서 결혼하고, 더 이상 참지 못하도 먹어서 살이 찌고, 더 이상 못 해 먹겠어서 엎어버리고 사표를 낸다. 반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때가 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발전하며 방향을 찾기도 한다. 새봄과 윤희 역시 각자의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생겨서 둘 만의  첫 여행을 떠나게 된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참고 또 참다 보면 좋은 날 안 오겠냐 하겠지만, 쥰의 편지처럼 참지 말고 행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들도 있다. 비록 과거에 누구에게나 고백이란 것이 그렇듯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고백한 사랑에 부끄러워하기를 강요당했을지라도 쥰은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다.

 "왜 안 하던 짓을 해?"

 느닷없이 안아달라고 어색하게 두 팔을 뻗는 마사코 고모를 안아보는 쥰.  아버지 장례를 치른 조카 쥰을 안아주고 싶지만 선뜻 안길 녀석이 아니란 것을 잘 알기에 안아달라고 말하는 마사코 고모. 마사코 고모는 쥰의 부모처럼 너무 지나친 관심이나 무관심아닌 적당한 선을 지키며 쥰의 내면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안기 전에 참 말도 많고 미적대는 쥰이지만 정작 그 품에서 먼저 울음을 터뜨리고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쥰. 이렇게 우리들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치유되고 극복된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고 힘에 부치는 어느 날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가 필요한데, 쥰에게 마사코 고모는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 쥰이 편지를 쓰거나 고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에 종종 등장하는 쥰의 고양이 위로가 되는 존재이다. 윤희에게 새봄은 어쩔 수 없이 아픈 결실이지만 엄마 윤희를 새봄만큼 위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아, 혹시 담배?)

 "그냥 같이 있어"

  가끔 누가 전화나 메신저로 안부를 물으면 '그냥 다 같이 있지 뭐.'라고 할 때가 있다. 쥰은 마사코 고모에게 꿈속에서 첫사랑과 그냥 같이 있었다고 말한다. 다른 장소에서 윤희 역시 혼잣말처럼 바텐더에게 만나고 싶던 친구와 모처럼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산책도 했다며 바람을 현실인 듯 말한다. 그냥 같이 있다가 밥 먹는, 일상을 함께하는 관계는 가타부타 설명이 필요 없다. 모든 관계를 둘로만 나누라 한다면 그냥 같이 있어도 좋은 관계와 뭘 해야만 하는 관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쥰에게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저절로 시간이 가고 감정이 이는 사랑은 이제 그저 꿈속에서만 가능한, 아득하고 그리운 과거일 뿐인 것일까. 쥰에게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 듯 하지만 쥰은 상대방에게 데이트에 나와 준 것에 고마워하다가 갑자기 을 긋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사랑이 부끄럽지 않은 것과 공표하고 과정을 밟고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임을 경험했기 때문 것이다.

 "이쁘다"

 아름다운 것만 찍다며 늘 사물이나 동물, 자연 사진만 찍던 새봄은 여행 중 처음 인물사진으로 엄마 윤희를 찍는다. 동네 어귀에서 매일 똑같은 패딩점퍼를 걸친 채 움츠러들어 담배를 피우던 윤희는 하얀 눈만이 가득한 오타루에서는 멋진 코트를 걸치고 담배를 든 팔을 다른 팔로 받쳐 들고 내리까는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에 서 있다. 딸 새봄 외에 아무도 없었지만 그 누가 지나간다 해도 윤희는 그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있었을 것 같다. 그게 원래 윤희다운 윤희다. 우리들 역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모습은 '나'다운 내가 아닐 때가 많다.  인간은 평생 일상 속 자신과 원래의 자신의 균형을 맞추고 앞으로의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제를 풀며 살아가는데, 그 과제가 상처가 깊은 사람들에게는 꽤 어렵고 오래 걸린다.

 "손목 맨날 주무르고 있잖아. 한국 가면 병원 가봐."

 매일 반복되는 본인의 통증을 새봄이 얘기하니까 이제야 알게 되는 윤희.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은 뭐가 문제고 뭐 때문에 아픈지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상처를 정면으로 피하지 않고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만 등 돌리고 있거나 무뎌진 현재를 더 편하다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의지의 문제인데 이제라도 그동안 깊숙이 묻어두기만 했던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난 윤희가 그래서 멋있고 대견하다. 그 부담스러운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한 의지로 반복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 충만한 삶을 살 것이 분명하기에.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윤희는 새봄과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여행을 가려고 그동안 안 썼던 휴가를 쓰겠다고 했을 때부터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하는 양 '자리보전 못해준다'라고 했던 공장 일자리는 당연히 잃었지만 그건 애초에 감수하려던 것이었고 그 자리는 원래 윤희가 평생 있을 필요도 없는 자리였다. 윤희는 이제 늘 반복되던 고단한 삶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윤희의 새 출발에 대해 또 예전처럼  통제하려 드는 오빠를 이제 쿨하게 무시하고 떠나버리는 윤희. 좀처럼 자기 얘기를 하거나 크게 웃는 법이 없던 윤희는 새봄에게 자기 계획을 이야기하며 웃는다. 새봄은 대학생이 되었음에도 엄마의 이야기에 밑도 끝도 없이 그저 '우와 엄마 되게 잘할 거 같아.'라며 어린아이 같은 응원을 한다. 새봄은 이름처럼 엄마 윤희에게 새로운 봄을 선물해줬다. 남다른 첫사랑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느라 자기에게 주어진 여분의 삶을 벌이라고 생각하던 윤희는 당당했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자신의 상처에 갇혀 온전히 사랑을 주지 못하던 딸 새봄에게도 좀 더 평범한 엄마가 되어간다.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한 평범함이 아닌 스스로 깨닫고 찾아간 평범함라 다행이다.

 

 요즘 우리들도 잃어버린 일상이 많아지긴 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도 많고 집중할 수 있는 다른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 일상의 변화나 타격은 불가피하지만 코로나를 자신의 부정적인 방패막이로 삼지 말고  최대한 원래의 '나'답게 지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좋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혹자는 이 영화가 특별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점이 주요 포인트라고 한다. 물론 그도 맞는 말이지만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에 방점을 두고 관람을 주저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영화 '윤희에게'는 주요 인물의 특수성을 떠나 윤희와 쥰처럼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이라는 것이 때로는 용기와 꿋꿋함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것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쓸쓸하고 외롭지만 어쩐지 따뜻해지는 겨울만의 감성이 가득할 뿐 아니라 요즘처럼 어쩔 수 없이 멈춰버리고 갇혀버린 모든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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