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햇살을 맞으면서는 도무지 잘 읽히지 않던 책이다. 신랑이 침대방에서 아이를 재우다 잠이 들고 혼자 남겨진 소파에서 어두운 조명을 켜고 밤에만 읽었다. 여유가 없는 요즘 일상으로 인해 발췌 부분을 기록하지 못한 채, 다 읽기도 빠듯해서 도서반납기한이 한참 지나서야 반납했다. 미스 때는 뻔질나게 대형서점을 다니며 읽고 싶은 책은 거의 사는 편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어지간해서는 안 사는 쪽으로 바뀌었다. 사더라도 중고서점을 이용한다. 턱 하니 새 책을 사는 경우는 1년에 두 어번이다. 가족 나들이를 하다가 대형서점에서 기분 좀 내보자는 식으로 사는 것이다. 어느새 대형서점이란 병원으로 따지자면 1차 의원급 병원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가는 3차 대학병원의 수준이 되었다. 생활비 받아 쓰는 흔한 유부녀의 독서다.
벨라루스라는 나라에 대해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세계대전 전후의 소비에트 연방과 러시아의 역사,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들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좀 더 알고 싶어 져서 추가적으로 관련 역사 정보를 찾아가며 읽었다. 독서를 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부끄러워진다. 수많은 여성 참전 생존자의 인터뷰들이 빼곡히 실린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전쟁의 참상과 실제, 전쟁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희뿌옇게 일어나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전투병력은 물론 그들을 지원한 다양한 병사들의 입장에서 겪은 전쟁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최대한 다양한 측면의 이야기를 싣고자 발품을 판 작가의 처절한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다른 모습을 마주하던 하루하루, 전쟁터에서는 인간이 아닌 상태여야 했지만, 인간임을 그리고 여자임을 잊지 않아서 버틸 수 있었던 하루하루들이 실려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몇 가지 이야기만 대충 실은 후 이어가겠다.(주의할 점: 발췌가 아니라 기억에 의존한 기록이다.)
열여섯 살 소녀의 탐스러운 빛깔의 머리카락은 작전에 투입한 지 단 며칠 만에 하얀 백발이 되고 만다. 신념에 지배되어 버린 사람들은 조국을 위한 길이라며 스스로를, 또는 자신의 딸을 전쟁터로 향하게 했다. 전투를 하려고 자신의 나이를 속인 소녀들이 있었다. 후퇴하려고 하면 아군이 뒤에서 총을 쏜다. 증오를 엔진 삼아 달려가지만 막상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는 순간이 온다. 부상병들의 잘린 팔다리들을 모아 놓은 통, 감자처럼 흩어져있는 시체들, 무엇가를 타고 지나갈 때 들리던 으드득으드득 - 시체의 뼈 부러지는 소리, 하얀 눈발에 생리혈을 그저 뚝뚝 흘려가며 행군하던 소녀들, 방수포로 만든 원피스를 단 몇 분이라도 입어보며 깔깔대다가 후다닥 군복으로 갈아입고 뛰쳐나가던 소녀들이 있었다. 전쟁에 의한 약탈로 오랜 기간 굶은 어떤 엄마는 결국 자식을 뜯어먹었다. 어떤 엄마 병사는 아기를 들쳐 안고 작전을 하던 중에 아군을 위해 결국 스스로 아기를 강가에 집어넣어야 했다. 시뻘건 군복을 하염없이 잠도 못 잔 채 빨던 빨래병은 지금까지도 빨간색이라면 과일이든 그 무엇이든 쳐다보기 힘들다...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 남자 참전자들은 훈장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여러 방면으로 그 영광을 누렸다. 그녀들은 그럴 수 없었다. 자랑이든 후회든 참전자로서의 모든 이야기를 숨겨야만 했다. 여성성에서 발휘된 숨김이었을까? 사회적으로 강요된 숨김이었을까? 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야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그녀들이 드러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책이 출판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사람들의 공세와 자신의 대답들까지 그대로 실어냈다. 보도 문학(다큐멘터리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남녀불문, 전쟁에 참전하여 조국을 지켜 승리 또는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것이 자랑할만한 일인가? 그렇다면 비난받아야 하는 일인가? 전쟁 참가자들은 승리와 패배, 모든 쪽에서 고통받는다. 전쟁 속에서 인간은 단순히 수량적 가치로 전락한다. 몇 명 사살했고 몇 군데 마을과 도시를 전복시켰는지 그런 것만이 가치 있게 된다. 이 즈음에서 아무래도 여성 피해자의 독특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A군이 B적군 여성을, B군이 A적군 여성을 얼마나 많이 강간 살해했는지, 어느 정도로 잔인하게 했는지 겨루는 꼴이 된다. 2번 이상의 재고도 필요 없이 딱 한 번만 다시 생각해도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짓들이 마구 벌어진다. 단지 죽여서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최대한 잔인하게 구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만약, 전쟁 참전자로서 너무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서적인 결함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우리나라 남성 노년층에도 자신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저지른 만행으로 평생 고통 속에 사는 남자들이 많을 것이다. 다음의 보도 자료를 보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125366#08gq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을 맞닥뜨린 수많은 사람들. 이게 맞다고 생각하며 따라간 신념은 전쟁이 오래 갈수록 혼돈이 돼버릴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통을 끌어안은 채 잊히고 사라진다. 그 신념을 주창하고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채찍질한 극소수의 결정권자들은 고통받기는 커녕 역사에 영웅으로든 주요 인물로든 길이길이 남는다. 이 책은 역사의 기록에 실로 남겨져야 할 작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쟁이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하면서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이 책도 추천하고 싶으면서도 추천하기 싫은 책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오랜 기간 읽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항상 '나중에'라고 미뤘다. 어떤 일이든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 섣부른 마음으로 들지 말고 각오하고 읽어야 한다. 읽다 보면 속이 메스꺼워오기도 하고 울분이 터지기도 해서 힘들지만, 그럼에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