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계획에 없던 세번째 연재

더 비기닝 : '웃기는 짬뽕일세'

by 유쾌한T맘

너무 되는 대로 흘러갔다. 에세이 연재북 '그래도 발랄하게 굴다 보니'에 글을 올리려는데 새 목차가 생성되지 않아서 뭔가 했더니 브런치북은 원래 30회까지만 쓸 수 있단다. 2019년도에 브런치스토리였던 시절부터 글을 써왔는데 이제야 알았다. 밑도 못 닦은 채 화장실을 나온 듯 완결을 해버렸다. '발간하기'를 누르기가 너무 민망했지만 눌렀다. 그러나 발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 나중에 에세이를 출간할 때 소스로는 쓸 수 있는 수준일 뿐. 화끈거리고 걸쩍지근하지만 자연스러운 척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겠다. 계획에 없었지만 이왕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니 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도 발랄하게 굴다 보니'에서는 다소 불우한 환경에서도 나름 밝게 잘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 '웃기는 짬뽕일세'에서는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실은 멀쩡하지 않음에도 애쓰고 있음을,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평생 나를 괴롭힐 것 같았던 아빠가 내 인생에서 사라졌고 별로 희망적이지 않았던 투병생활도 완치로 잘 끝났다. 절대 하지 않을 줄 알았던 결혼을 했더니만 젊은 나이에 공동대표를 했던 남편이 동업자에게 뒤통수를 맞아 신혼 3개월 만에 개인회생 절차를 밟았다. 깨가 아닌 불행이 쏟아진 채 신혼 생활 5년이 정신없이 빚 잔치로 지나갔다. 둘은 낳을 줄 알았던 아이를 하나만 낳고 겨우 키우며 법무사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 요즘 가장 중요한 사안은 남편, 내 친구와 셋이 함께 준비한 플랫폼을 론칭하는 것이다. 특허 등록과 상표권 출원을 하려고 변리사와 접촉 중이며 작년에 예창패 2차에서 떨어졌던 사업 기획을 전면 수정하여 재도전 하려고 한다. 이 또한 새 연재북 에서 다룰 예정이다. 여전히 좁은 집에 살고 있지만 잘 먹고 영양크림은 듬뿍 바르고 사는 무난한 요즘이건만, 내가 영 이상하다. 처음에는 그냥 사람이 변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예전에 텐션이 높은 편이었기에 이제 철이 들어가는 느낌이기도 했다. 말을 아끼고 감정 소모를 줄이고 내실을 기하는 거겠지. 그러나 점차 증상은 심해졌다.



아이를 아침밥 먹여 학교를 보내고 청소나 빨래등 기본적인 일을 마치고 나면 아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잠이 오든 안 오든 집안에 커튼을 다 치고 잠을 잤다. 집안일은 늘 있고 아이도 아직 2학년이라 학원 가는 날이 아니면 일찍 오는 편이니 길게 자는 건 아니지만 굳이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문제다. 플랫폼 준비나 글쓰기 관련, 독서 등은 애가 잠든 밤늦게 하다 잠들었다. 다행히 운동은 여전히 할만해서 운동을 하는 주 3일은 그러지 않았다. 주말은 억지로 낮 내내 눈을 뜨고 버텼다. 기본적인 일도 다 내려놓을 정도로 엉망인 것은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낮밤이 바뀌었을 뿐이고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으니 된 거라고 생각했다. 다들 쯧쯧할 거 아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



최근에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평범한 프레임 안에 살고 있는 친구들 입장에서 생소하게 여겨질 내 사업 아이템이나 작가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말을 하는 것도 뭔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법무사 수험생활 중일 때 내 근황을 말하기에 더 깔끔했다. 나는 언제까지 내 삶을 설명해야 하는 걸까. 이제 설명보다 결과로 보여줄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이야기를 하는 게 꺼려졌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졌다. 점차 혼자서조차 밖에 나가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 되고 어쩌다 나갈 수밖에 없어서 나가면 금세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면 늘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10번 중 1,2번은 나가길 잘했네 싶은 날도 있었고 막상 사람들을 만나면 전과 다름없이 굴었다. 다들 '참 넌 웃기는 녀석이라니까.', '역시 너랑 이야기하면 속이 시원해'라는 식이었다. 잘 속였거나 일부는 진심이었지만 어느 쪽이든 에너지 소모는 너무 컸다. 이 와중에 집안일이나 플랫폼 준비 일은 곧잘 했다. 그래서 내가 심각한 건지 아닌 건지 더 종잡을 수 없었다. 그냥 이런 나에 대해서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왜 생각해봐야 하는데요 할 건 다 하잖아요


좋아하던 책도 요새는 어지간한 책이 아니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잘 읽었어도 서평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읽은 책은 계속 쌓이는데 서평 연재는 쓰지 못할 때가 많았다. 피폐한 마음이다 보니 일상의 흐름을 타고 쓰는 에세이 연재도 뜨문뜨문하게 되었다. 창업 준비 때문에 연재가 힘들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냥 글 쓰는 것이 너무 버거웠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것보다 내가 일단 겨우 사는 게 먼저이니 별 수 없었다. 아이가 있는 엄마로서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꿈보다는 당장 가족의 생계, 아이의 성장, 친구까지 끌어들인 창업이 더 중요하니까. 왜 이렇게 정말 꼭 해야 하는 일 외에는 모든 게 버거운지. 어느 날 친한 언니가 나를 보지 못한 채 톡을 할 뿐인데도 나더러 우울증이라고 했을 때 부정했지만 이제 인정하겠다. 셋째 이모가 수십 년도 지난 상처를, 상처받은 세월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나름대로 보상받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휘휘 저어 수면 위로 올려놓고 우울증이 왔을 때 이해가지 않았는데 이제 그 마음을 알겠다.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연재글에서 하는 걸로.



돈도 없고 남편도 없고 하나뿐인 자식도 결혼해 멀리 살고 여태 집 하나가 없어서 때마다 전전긍긍 옮겨 다니는 신세인 우리 엄마가 우울하다면 모를까 한 때 형제자매 중 가장 부유했고 여전히 가장 사랑 받고 사는 아내인 셋째 이모가 우울증이라니. 하지만 우울증은 뭔가 비벼볼 뭔가가 있을 때, 있다 없을 때, 오히려 지옥에서 벗어났을 때, 해볼만큼 해봤을 때 뒤늦게 나타나는 것임을 이제 알겠다. 살아남아야 하고 헤쳐나가야 할 때는 우울할 틈도 없다. 힘든 게 지나갔거나 온갖 노력을 다해봤는데도 해결되지 않아서 더 할 게 없을 때,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녹아들지 못한 채 몸과 정신을 부유한다. 가만히 돌아보니 친구나 친한 지인을 만날 때면, 그리고 남편에게도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드라마를 보다가도 결국은 나의 과거 이야기로 회귀하곤 했다. 어느 날 친구가 '다 아는 이야기 그만하고'라는 말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것도 일종의 우울증 증상이었던 것이다. 정작 힘들었던 날들에는 내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고 들어준 이가 없었으니 지금이라도 내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는 것처럼.



이제 살만해졌는데, 할 건 하는 와중에 우울한, 남들은 물론 가족조차도 거의 눈치채기 힘든 고기능성 우울증을 아시는지? 아마 '어? 나도 그런데?'라고 공감하는 분들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통계적으로 그러하다. 고기능성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도 추후 연재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제 비로소 인정한 단계이고 '웃기는 짬뽕일세'연재북을 통해서 자가 치유를 하려고 한다. 욕심이겠지만 비슷한 상황이신 분들이 내 글을 읽으며 함께 힘을 내기를 조심스럽게 바란다. 그래도 명색이 고기능성이라잖아. 못할 거 있나. 웃자 웃어. 아니야 웃기 싫으면 웃지 마. 요즘 나는 우울함을 새로 나타난 친구 정도로 여기고 있다. 왜 우울하고 난리야 라고 다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즐긴다.



또 우울하구나. 또 기운이 없구나. 또 아무것도 하기 싫구나. 그럼 뭐 하는 게 좋을까? 뭐 하고 싶어? 하나씩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천천히 해보자. 그래도 오늘은 이걸 잘했네. 저걸 해냈네. 내일은 이걸 해보는 게 어때. 그렇게 아사리판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건져보는 중이다. 어쨌든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큰 한 걸음이고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조금 앞에 가다가 다시 뒤로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결국은 미약하게나마 가긴 할 테니까. 그리고 난 불행했던 과거를 다 헤쳐나온 경력자니까 이 또한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당최 우울과 새로운 사업과 작가로서의 꿈에 대한 기대와 열정, 아이를 키우는 소소한 일상이 서로 어울릴 수는 것인지. 그렇게 웃기는 짬뽕 같이 살고 있는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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