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두 번째 블루오션(재발행)

재도전성공패키지에 지원하다

by 유쾌한T맘

* 멤버십 연재 해제하여 가장 최근 연재글 재발행합니다. 읽으셨던 분들은 바이바이~*



일 년이 이토록 모자란 시간이었던가. 더 날카롭게 벼려진 화살이 다시 한번, 날아갔다.

LA의 현재 시간을 확인하니 밤 10시가 되기 전이었다. 친구가 아직 잠들진 않았을 시간이라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수많은 새벽시간에 함께 일하며 회의를 했지만 단둘이 전화를 하는 건 오랜만이라 반가웠는데도 수다 떨 여유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재도전성공패키지 지원사업 접수를 해야 하는데 친구의 아이디가 계속 팀원으로 추가되지 않았다. 친구는 26년째 한결같은 나른한 목소리로

"미국이라 로딩이 느리네. 음..에구구..아, 실명인증~~~잠시만."

(늘 나만 뒤로 넘어가지 나만) 다급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남편이랑 잠시 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이제 될 거라며 다시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친구까지 팀원으로 등록, 드디어 제출 완료. 2년간 품고 고치고 더 넣고.. 기분으로는 이미 닳고 닳은 사업기획서인데 새하얀 컴퓨터 화면 안에서는 언제나 처음인 듯 빳빳하게 날 마주하고 있었다. 접수 완료 창이 뜨는 걸 보면서 남편과 나는 서로 손바닥을 소리 나지 않게 마주쳤다. 지금 거의 다 만들어진 상태로 세상에 나오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플랫폼이 정말 세상에 나오고 나면 그때는 큰 소리 내리라. 절로 눈물도 나겠지.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접수 내용을 확인하다가 자기 학력 사항이 없다면서 이상하다고 했다. What???? 작년에 내가 대표자로 제출할 때에는 그런 문제가 없었는데.. 속으로 '접수기간이 거의 3주였는데 마감 16시간 전에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일까용.' 생각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상황을 함께 파악했다. 사랑이라기보다는 감정소모도 피곤한 요즘이기에. 문제는 남편이 20대 후반에 개명했는데 대학 학적부가 개명 전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대학 졸업 증명 기록이 자동 첨부되지 않는 것. 나도 그즈음 개명했으나 모든 주요 기록들을 개명한 이름으로 수정하는 작업을 미리 해두었기 때문에 작년에 학적 기록 자동 첨부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밤 10시. 마감은 다음 날 오후 4시. 어쩔티비. 물론 17년 경력의 개발자로서의 경력은 모두 입력했기 때문에 학적 사항이 그렇게 크게 중요할 것 같지는 않았으나 대표자의 학력사항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남편은 대학을 중퇴했기 때문에 졸업장도 없어서 졸업장 스캔 파일과 개명사실증명 기록을 첨부하는 방법도 불가능했다. 아무리 알아봐도 방법은 다음날 아침 일찍 강원도에 있는 남편이 다녔던 대학 행정실에 전화해 보고 절차를 해보는 것뿐이었다. 그렇다한들, 과연 당일 오후 4시 안에 해결될까. 아오..



일단 고등학교 졸업 기록은 개명 사실과 무관하게 등록 가능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나에게 내일 아침 애 학교 갈 즈음에 자기도 깨워달라고 하더니 새벽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점점 회의감이 들었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한 학기 다니다 말고 형편으로 인해 관두었다. 한 학기 다닌 것조차 자랑일 정도로 대단한 대학교도 아니고 지방의 2년제 대학이었다. 그 한 학기를 증명하기 위해 촉박한 시간을 다투며 애를 써야만 할까. 그래, 씨바꺼 말자. 한 학기 다닌 대학교 증명 같은 거 첨부 못해도 자신 있잖아. 우린 그렇게 각자 작업에 몰두했고 유튜브 촬영본 영상 편집을 함께 하다가 지쳐 잠들었다. 이런 기세와 자신감...합격. 우당탕탕 첫 유튜브 촬영 후기는 다음 연재에 올릴 예정. 많관부.



3일 만에 구석구석 머리 감기 전용 빗으로 샴푸 거품을 가르며 머리를 감는데, 시원하다 못해 눈알이 까뒤집어졌다. 내 몸 하나 씻는 시간도 괜히 아꼈고 몇 년간 주 3회는 무조건 해 오던 운동도 최근 수개월 동안 못했다. 방학 동안 그 어디도 놀러 가지 못했다. 딸에게 미안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54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우와! 드디어 개학이다! 아싸!"

딸은 개학 며칠 전부터 개학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아이방이 좀 추운 편이라 겨울마다 안방에서 나랑 둘이 자는데 각성 상태가 전염이 된 것인지 아이를 재우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는 지치고 지쳐 빨리 자라고 윽박지르기보다는 그냥 좀 재우다 말고 일했고 아이는 혼자 뒤척이다 한참만에 잠들었다. 늦게 잠든 아이는 나와 함께 늦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벌기는커녕 까먹어가면서 준비할 것은 너무 많고 육아도 살림도 엉망인데 흐린 눈을 하면서 쉴 틈 없는 하루하루... 너무 지칠 때면 뭔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내가 이래야만 하는 걸까 싶은 회의감도 가끔 치밀었다.



그렇지만, 왜 재밌지. 살아있는 느낌, 진짜 일 다운 일을 벌이고 있는 그런 느낌이 더 자주 들었다. 남편이 지친 하루 끝에 스멀스멀 만지작 거리는 건 확 짜증이 치밀어도 낮에 집안일하느라 밀린 일을 하는 새벽 중에 갑자기 '기획 추가된 거 정리 언제 돼?', '사업 로드맵이랑 구체화 개발 계획 수정 언제 돼?', '변리사한테 피드백받은 거 반영했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늘 각자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늘 꿈을 꾸고 있다. 둘 다 죽기 전에 아! 이걸 못해봤구먼! 하면서 못내 아쉬워 눈 못 감을 스타일이다. 남편 나이 45, 내 나이 42. 남편 월급과 퇴직금 못 받은 게 두 번이고 총 6천2백만 원. 어차피 남의 일 해줘도 이렇게 조질 바에는 흥하든 망하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승부를 걸어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더 늙기 전에 해보자. 그러다 조지면? 그땐 다시 남의 일 할게요.



암흑 속이던 30년에 비해 이제 빛이 보이긴 보이는데 가까워지지 듯하다가 결국은 멀어지고 마는 12년이 흘러가고 있다. 오히려 약간의 빛을 보고 나니까 마음의 여유를 잃고 자꾸만 조급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월세 단칸방, 옥탑방, 반지하, 허물어질 듯한 주공 아파트 전세, 좁아터진 다세대 주택 전세.. 그렇게 30년을 살았고 결혼 후 16평 빌라 자가와 자동차 한 대. 처음에는 그마저도 숨통이 트였고 이제야 사람답게 살게 된 기분이었다. 그러다 그 집마저 신혼 3개월 만에 남편의 개인회생으로 여차하면 경매로 넘어갈 뻔한 상태로 5년을 버텼다. 회생절차는 무사히 마쳤고 집은 지켜냈지만 그 상태에서 우리는 12년째 머물러 있다. 어릴 때부터 주어진 좋은 환경에서 별 이슈없이 무난하게 쭉 살고 있는 그들의 삶. 그들은 그들이요, 나는 내 삶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부아가 치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인생이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원한다 한들, 스스로 개척할 필요가 없이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한 레드오션 같은 삶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두 살 때부터 아빠로부터 벽에 내동댕이 쳐졌고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던 내 삶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은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없었다. 늘 아빠 같은 쓰레기가 되지 말아야지, 아, 엄마처럼 너무 약하고 겁이 많아도 안 되겠다, 하면서 내 인생은 그냥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살자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연습함으로써 아무리 아빠가 개 같은 년아 나가서 뒈져버려, 씨발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라면서 죽일 듯이 패도 아무리 온 조선의 지랄을 해봐라 내가 너처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개 같은 인간이 되나,라고 생각하며 무너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감 있는 말과 태도, 유쾌통쾌한 성격의 내가 오래 가난하고, 맞았고, 아팠던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비결이 뭐냐고 묻기도 한다. 그때마다 말한다. 자기 앞의 생을 자기 뒤의 생과 연결하지 않는 것이라고. 과거가 어떻다한들 늘 새롭게 사는 것. 깜깜한 방에 스위치를 켜면 갑자기 너무 밝은 불빛에 놀라 다시 스위치를 스스로 또 꺼버리지 않는 것. 그냥 뚜벅뚜벅 밝은 방으로 들어가 그 빛에 익숙해질 때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압도적이고 완벽한 행복을 갈망하지 않고 지금 순간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 그것이 전부다. 내가 과거에 불행했다고 해서 누군가의 위로나 인정을 갈구하지도 않았다. 친구나 애인을 사귀고 의지를 할 수는 있으나 진정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이기에. 타인의 위로를 왜곡하지 않고 위로로서 받아들이는 것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 자들만 가능하다. 그렇게 나의 불행한 과거들은 블랙 코미디로 승화되었다. 어느 흑인 개그맨이 "하느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셨는데 동네에 나는 없었대."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웃긴 것처럼 내가 거쳐온 모든 경험들은 일종의 무형 자산이 되었다. 훗날 나의 이야기가 모여 힘든 이들을 위로하고 사랑을 잃지 않고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사업 준비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글을 쓰고 있다.


https://youtube.com/shorts/epfeN0J6RMo?si=0RrmpXerwLRh4aNQ


며칠 전, 친한 동생이 나랑 비슷한 과거를 가진 자기 지인이 지금 결혼 생활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만약 아이를 낳으면 과거의 자기처럼 살까 봐 두렵다면서 아이를 몇 년째 낳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금 행복하다며. 그런데 왜 아이가 불행해질지 모른다는 거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내가 임신을 준비하고 임신을 하고 딸을 낳을 때, 난 언제나 그랬듯 아무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아이는 나처럼 살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조차도 없었다. 그냥 세상에 나오고 나면 잘 키우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지금 이 남자와 행복하지만 나중에는 우리 엄마처럼 결국 파국을 맞이하고 자식마저 불행해지면 어떡하냐는 생각이 무슨 도움이 되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사람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당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당신의 가능성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지 당신이 겪은 불행한 과거는 그 가능성이 일시적으로 방해받았던 시간이다. 비록 당장은 풍요로운 레드오션의 삶은 힘들지라도 존재 자체로 삶의 가능성은 입증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증명은 필요 없다. 마음 놓고 곧장 블루오션을 개척하면 된다. 내가 앞서 말한 방법도 좋고 자신만의 다른 방법도 좋다. 스스로 개척하라. 원래 블루오션은 주어진 판이 없어서 고독한 싸움이다. 이번 사업을 기획하면서 기존 시장에 없으면서 획기적인 것을 찾느라 우리 부부도 머리가 빠개질 듯 고민했다. 수많은 날을 이걸까 저걸까 이게 가능할까 하면서 기필코 정하고 기획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큼 재밌었다. 인생도 비슷하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태생과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이 대체로 살아가는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다른 방식을 선택하고 사는 것은 다 블루오션이다. 불행의 시작이 무엇 때문이었든, 불행을 끝내는 건 자신의 의지다. 내 인생의 첫 번째 블루오션은 과거를 극복하고 유쾌하게 산 것이다.



지난 구정은 우리 집 상황이 이러한 관계로 양가 모두 명절 프리 패스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요리를 따로 해두었다며 너만 따로 와서 음식만 가져가라고 했다.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인 걸 알기에 남편은 일 하라고 두고 아이를 데리고 구정 당일 오후 늦게 잠시 친정에 다녀왔었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엄마 집 가까이에 이모가 살지만 차마 빈손으로 이모네를 갈 순 없어서 전화 인사만 했다. 없는 돈 까먹어가며 버티는 터라 엄마에게 식재료 값도 못 챙겨주고 음식을 바리바리 챙겨 싣고 밤늦게 출발했다. 엄마는 차를 타기 직전 평소보다 더 꽉 나를 안으며 다 잘 될 거라고 말했다. 사실 요즘 나는 물을 잔뜩 흡수한 스펀지 같은 상태. 엄마가 나를 힘껏 안으면 잔뜩 머금고 있는 지친 마음이 눈물로 줄줄 짜내어질까 봐 같이 꽉 안지 않고 엄마 등만 토닥토닥하고 말았다.



유난히 좁은 엄마집 골목길을 살금살금 빠져나오면서 창문 밖으로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유쾌한 그녀의 유쾌하지 않은 밤길이었다. 낮에 엄마집에 도착할 때는 구정 당일이라 꽉 막혀서 깔짝깔짝 브레이크를 조절하며 오느라 힘들었는데. 밤에는 잠시 막히는 구간이 지나고 나자 한산했다. 액셀을 밟으며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뻥 뚫린 도로를 달리면서 너무 많은 생각이 얹혀있던 속이 어느 정도 내려가는 듯했다. 낮에는 꽉 막혔지만 찔끔찔끔 그래도 엄마집에 도착했고, 밤에는 시원하게 밟으며 내 집에 도착했다. 운전대를 잡은 이상, 어디에 꼬라박지만 않는다면 어디든 도착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일단 어디로든 가보자고.



사업이란 준비 단계만으로도, 약간의 움직임에도 내 정수리 냄새에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것. 너무 할 게 많아서인지 밤샘 작업에 매일 같이 야식을 먹는데도 이 나이에 살이 찌지 않는 것.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설마,라고 생각하는 순간 폭망하는 것. 아닌가 보다 하면서 포기하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 어찌하란 말인가! 친구들은 너니까, 너네 부부니까 도전하는 거라고 했다. 쿨한 척했지만 일평생 뭐든 참 겁이 없었는데 사업은 진짜 쫄린다. 얼마 뒤 예비창업패키지에도 중복 지원할 예정이지만 그쪽은 청년 위주의 지원을 하는 편이고 지원금액도 적어서 좀 더 기대하는 건 재도전성공패키지이다. 만약 지원사업에 전부 선정되지 않는다 해도 중소벤처정책자금센터 등을 통해 사업자 대출을 받아서라도 출시를 강행하기로 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업자를 잠시 냈다가 중도 포기했지만 지금은 MVP가 거의 완성 수준이다. 올해는 내 인생의 두 번째 블루오션을 위해 갈 때까지 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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