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집구석

집과 가족의 양면성에 대하여

by 유쾌한T맘

https://youtu.be/gF-sipgKJdc?si=XA4g5F0qHSq3GOBP

다른 건 모르겠고 인트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그 부분이 딱 지금 내 심정이다. 너무 많은 말과 감정이 꽉 차 있으니 오히려 말이 잘 안 나온다. 이런 상태는 꽤 오래되었지만 최근 한 달간 남편이 집에 있고 아이도 방학을 하면서부터 더욱 심해졌다. 많은 지인들에게 언제부턴가 나에 대해 말을 안 하게 되자 점점 말을 하기 어려워지더니 이제는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멀어진 관계가 눈에 보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여력도 없다. 바빠서 미칠 지경인데도 이렇게 글을 쓰는 건 글쓰기만이 언제나 내 이야기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조차 안 했으면 어쩔 뻔! 어릴 적에 아빠로 인해 지옥을 살면서, 예후가 좋지 않은 오랜 치료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책과 글쓰기 덕분이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취미를 넘어 예나 지금이나 생존 수단이다.



이제는 독서가 일과 밀접해진 터라 취미보다는 업무의 느낌이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다. 어제 책들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가려는데 마치 가출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심장이 나대었다. 아이가 집 앞에 오는 태권도 차를 타고 학원에 가는 순간, 남편에게는 있는 거 알아서 차려먹으라고 말한 뒤 최대한 빨리 집에서 나왔다. 남편은 어디 결혼식 가냐고 놀렸다. 물론 남편이 오버한 거다. 복장은 라이트그레이 베이스의 컬러팝 니트에 아이보리 와이드진, 미들 부츠, 하프 퍼코트로 캐주얼했다.(하단 사진 참고) 그러나 고작 동네 도서관과 근처 카페에 가는 건데 화장을 하고 작게 귀걸이까지 한 건 사실이었다. 놀리든지 말든지. 차려 먹든지 시켜 먹든지. 빨래가 쌓여있든 먼지가 쌓여있든. 잠시라도 집이라는 걸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집이나 가족은 참 요지경 속, 최고이거나 최악이다. 이것도 중간이 없는 내 성격이 반영된 해석이긴 하지만.



아이가 피아노까지 돌고 집으로 오면 오후 5시 30분. 단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지만 그게 어디인가! 책만 빠르게 반납한 후에 바로 앞에 있는, 그 도서관에 갈 때마다 종종 들르는 카페에 오랜만에 갔다. 날도 춥고 시간도 애매해서인지 두 시간 있는 동안 테이크아웃 손님은 있었지만 매장에 있는 손님은 나뿐이었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친절하고 예쁜 사장님, 아무도 없는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공간, 맛있는 크림 말차 라떼. 어차피 노트북을 켜서 일을 한 건데도 혼자 있다는 것으로 위로가 되었다. 카페 이름마저 공교롭게도 '오늘 같은 날에'. 케이크 맛집이라 가족 생일마다 홀케이크 주문을 하곤 했던 카페인데 사업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런 것도 챙기지 못했다. 이 년, 어쩌면 3년, 한 동안 '헉 ~생일이네?!?!으악!'하면서 맛도 없고 인성도 없는 파리바게트 케이크를 사곤 했다. 올해부터는 다시 여기서 주문해야지. 바쁜 건 사실이어도 마음마저 바쁘게 굴면 오히려 놓치는 것이 많아진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기고 나서야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 주 촬영 때문에 아이를 잠시 맡기기도 해야 해서 겸사겸사 안부전화를 했다. 인천 집에서 서울 엄마네까지는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거리라 자주 보는 편은 아니고 아이가 열 살이 되는 동안 아이를 맡기는 일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자주 맡긴 건 아닌데도 어쩐지 죄송한데 엄마는 되려 언제나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한데 애라도 봐줘야 한다고 하셨다. 아직도 우리 가족 겨우 건사하는 중이라 보란 듯한 효도는 언제 할 수 있을는지. 엄마와 나는 늘 서로 짠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 못지않게 엄마에 대한 원망이 잔잔하게 있었는데 요즘은 존재 자체로 그저 감사하다. 주변인들이 하나 둘 갑자기 친정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셔서 황망해하는 것을 보면 이제 남의 일 같지 않다. 지인들에게는 아무리 친했어도 한 동안 멀어진 이후로는 어느 날 갑자기 내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엄마에게는 엄마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푸념과 하소연을 늘어놓을 수 있다. 나를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가족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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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통쾌한 결혼 12년차 T주부. 흩어지는 말보다 묵직하게 남는 글이 매력적이라서 글을 씁니다. 온톨로지 기반 AI 협업 K-콘텐츠 IP 창작 플랫폼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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