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작가가 성장하여 다시 만나다.
누군가 임신테스트기의 흐릿한 두 줄을 사진 찍어 올린 후 임신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희미하지만 연한 두 줄이 보였다. 흐릿해도 선명해도 임신이면 임신이지 반만 임신인 건 없다. 의사는 아니지만 아이를 낳아봐서 나름의 확신을 갖고 축하의 메시지를 남겼다. 만약 인간관계 이해도를 임신 테스트기처럼 진단할 수 있다면? 인간관계는 반만 이해하거나 반의 반만 이해하거나 눈곱만큼도 이해할 수 없거나 그 모든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 미묘하기에 진단 자체가 힘들 것이다. 혹시 굉장히 관대하고 유연한 사람들의 소변이나 혈액은 인색한 사람들과 다를까? 사이코패스가 의사결정과 자제력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의 기능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보면 역으로 전두엽과 편도체의 기능이 뛰어난 일반인도 있을 수 있지만 그 편차는 크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사람들은 대체로 거기서 거기인데도 우리는 늘 '저 인간은 도대체 왜 저럴까', '세상은 요지경' 하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지금 네가 이상한 거니 내가 이상한 거니 하면서.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떤 이해와 판단을 하는지 판단하는 몇 가지 진단 도구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정확한 진단보다는 자신의 추구미에 가깝다. 어떤 상황이 가상으로 제시되는 될 때와 실제로 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의 자신의 이해와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억울하게 당하는 상황에 처하면 절대 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을 겪었을 때 무기력하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경험한 경우들이 있다. 자신이 솔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인 줄 알았건만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이나 외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역으로 자신은 꽤 이기적이거나 소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막상 어떤 위기 상황에서 매우 이타적이거나 용감한 행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토록 자기 자신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타인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인가.
지금보다 십여 년 정도 젊었을 때만 해도 생활 속에서도, 책이나 영화에서도 확실한 기승전결을 원했다면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의 나는 어떤 일들에 대해 희미하더라도 알게 되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감동한다. 김국환 아저씨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1948년생인 가수 김국환은 할아버지 연배인데도 나는 그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어버렸음에 새삼 놀라면서.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속의 일곱 가지 이야기는 각자 특정 사건이나 상황 속에서 오해하고 이해하기도 하며 서로에게 편안한 적정선의 거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 최선의 거리를 찾고 연대하고 글은 글일 뿐일지 몰라도 글이라도 써서 어떤 상황을 객관화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때로는 글을 씀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구원하는 것. 그렇게 서로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희미하게라도 빛을 내어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역시나 모든 이야기를 다 다루지 않고 일부만 집중하여 다루겠다.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p19. '그곳은 용산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그녀는 이어서 그렇게 썼다. 페이퍼백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p21.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한 비참한 순간에 대해 기록하고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스크류바를 먹는 장면을 적는 식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그녀는 독자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인간적으로 지닌 약점과 단점,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수도 있는 날 것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어내려 갔다. 이 사람 뭐지, 호감 가는 사람이 아니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니, 그런 반응을 기대라도 하듯이 아무것도 미화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썼다.
p30. "많은 언론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 사건에서 일방적인 피해자는 없었습니다. 폭력적인 시위가 문제였던 거고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학생이 받아치듯 말했다.
"무슨 언론 보셨는데요. 해외 기사도 보셨나요? 그게 경찰특공대에 철거 용역까지 투입할 상황이었나요. 시위대가 폭력적이라고요? 고작 이천오백만 원 던져주면서 나가라고 하면 저항도 못하고 끌려나가야 하나요? 정말 그렇게 믿어요? 그 정도의 잔인함이 옳다고?"
나는 아직도 그 말을 하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가 잔인함을 잔인함이라고 말하고, 저항을 저항이라고 소리 내어 말할 때 내 마음도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덜 외로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그럴 수 없었던, 그러지 않았던 내 비겁함을 동시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44.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많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 다 그러하듯 나도 가족 여행이나 나들이의 추억이 거의 없다. 추억은 개뿔, 누구 하나 안 죽고 산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가족과 쌓지 못한 경험들을 책으로 대신했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을 때는 현실의 고통과 무게를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이야 나보다 더 힘든 경험을 한 사람들도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지만 나만 제일 불쌍해 보였던 시절이 꽤 길었다. 내 삶은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책 속의 주인공들은 책의 끝부분에 가면 어떤 식으로든 평안에 이르렀다. 책을 읽으면서 내 삶도 언젠가는 평안과 행복에 이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물론 모든 책의 결론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책 속의 삶은 어떤 설정을 하고 어떤 식으로 펼쳐지든, 내 삶과 닮아있다 할지라도 진짜 내 삶이 아니었기에 상처받지 않는 삶이었다. 나는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부모나 세상 탓도 많이 했다. 그러다 내 삶을 소설이나 영화처럼 타자화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차라리 남이나 세상 탓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이 책의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속 '그녀'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 책을 읽다 보면 아빠에게 맞아서 욱신거리는 몸의 통증을 잊었고 엄마의 울음소리도 덜 신경 쓰였다. 살가운 위로도 하루이틀이지 나도 아직 어린데, 그런 매일이 지겨워지고 말았다. 엄마와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방식에서 점점 각자 울고 각자 버티는 방식으로 변해갔다. 학교에 있는 시간은 지나치게 빠르게 흘렀고 집에 있는 시간은 늘 심장이 벌렁거리면서도 너무 길고 지루했다. 겨우 벗어나 엄마와 둘이 살게 되어서는 또 다른 방면으로 불행했다. 더욱 가난해졌고 한 때는 생사의 기로에 서서 오랜 병원생활을 했다. 나는 또 불행을 지나가는 방법으로 독서를 선택했다. 태어나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내 삶은 언제나 누구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힘든 것들의 연속이었고 주변에 사람들은 있었지만 사람보다는 책에서 더 큰 위로를 얻었다.
수업 장면에서 수강생들은 용산에서 나고 자란 희연과 그녀 앞에서 함부로 용산 참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9년 용산 재개발 보상비 갈등이 불거지고 상가 세입자들은 농성에 들어갔다. 정부는 농성이 시작한 지 단 하루 만에 곧장 테러범을 잡을 때나 투입되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불이 나서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 갑자기 불이라니. 이 부분에 대해서 검찰과 농성자 측은 강하게 대립했다. 결국 조사 끝에 1차 진압에서 이미 농성단의 망루 안에 있던 시너 등의 발화물질로 인해 작은 화재가 났음을 인지했음에도 더 강력하게 진압하는 바람에 일어난, 공권력에 의한 참사가 인정되었다. 그럼에도 사망자들의 시신은 냉동고에 1년 가까이 보관되다가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고 보상 주체도 기어코 정부가 아닌 재개발 조합이었다. 생존한 농성자들은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징역을 살다가 특별사면으로 나왔고 진압을 지휘한 경찰 중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활활 치솟은 그날의 불길은 사람들을 앗아갔고 남은 이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 하나하나가 들고 있던 작은 촛불들이 모여 세상을 바꿨던 것처럼, 이 이야기는 각자가 들고 있는 희미한 불빛은 누구를 불태우지도 않으면서도 꺼지지 않은 채 밝게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녀'와 그녀의 뒤를 따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희연, 그리고 이야기 속에 종종 등장하는 저항과 잔인함을 있는 그대로 말하던 사람들은 서로에게 등불이 되어준다. 진압이 아닌 농성이 폭력적이었다고, 도시 개발은 문제가 아니라고, 왜 문제를 크게 만들었냐고 말하는 이들을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들은 주제가 달라져도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내가 죽을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고, 난 기꺼이 싸우며 살아갈 거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타인의 고통을 불편해한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불편해한다. 나의 지나친 담담함과 과감한 비판의식을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는 이유가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있다고, 나 같이 해야 할 이야기를 진짜 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당신들은 어떤 생각과 어떤 말을 하고 살고 있냐고, 정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냐고, 세상에 대해 말하는 용기가 있냐고, 그런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모든 말과 질문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말과 질문이기도 하다.
아직 출간작가가 아니지만 나는 '그녀'처럼 다수의 사랑을 받는 작가보다는 호불호가 명확한 작가가 될 것 같다. 희연은 불안정한 시간강사이지만 자신의 소신과 주관을 지키며 오히려 뚜렷한 삶의 태도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그녀'를 선망한다. 그녀의 글들이 작품 속에 정확하게 드러난 부분은 없지만 희연이 그녀의 글에 대해 묘사하고 설명하는 부분으로 볼 때 그녀의 글이 내 글의 성격과 매우 유사할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나도 욱신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아 피가 터진 입술로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고, 심지어 우와 이거 맛있다 하면서 먹었던 나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밥을 먹고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도 야무지게 꺼내 먹었다. 고통스럽고 부당하고 불합리한 여러 상황은 그저 상황일 뿐 거기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도 희연이 마주할 힘든 상황들에도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갈지언정 너무 깊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희연은 그녀처럼 시간강사가 되었지만 그녀는 이제 강단에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걱정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뭘 하든 잘 지낼 거라고 믿는다. 내가 닮은 그녀이기에 그렇게 믿고 싶다.
<<몫>>
p51~52. 해마다 있던 일이었지만 1996년 그해는 유독 폭력의 수위가 높았다. 오백여 명에 달하는 당신의 학교 학생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호루라기를 불며 대동제가 진행 중이던 A여대 광장을 점거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기차놀이 대형을 하고는 A여대 학생들을 향해 달려갔다. A여대의 많은 학생들이 이 과정에서 머리채를 잡히고 주먹으로 가격 당했다.
정윤의 글은 취재에 기반하고 있었다. 당신의 학교 학생들이 정확히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런 집단 폭력이 매해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윤은 건조한 문장으로 진술했다. 그들의 행동이 왜 치기 어린 '놀이'나 '장난'이 아닌지에 대해서, 정윤의 논리에는 막힘이 없었고 차근차근한 설명은 집요했다.
그 글을 읽고 당신은 과거의 자신을 바라봤다. 남자 선배들이 그 사건을 영웅담으로, 농담으로 이야기할 때 그저 미친놈들의 헛소리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그저 듣기 싫고, 피하고만 싶어서 못 들은 척했던 그때의자신을. 정윤의 글을 읽은 당신은 그 글을 읽기 전의 당신이 아니었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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