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무늬없는 표범 주니어

권고사직 후, 고향에 내려가 마주한 부모님과 그들의 지인

by 이세상

고향에 내려온 나는 부모님과 있으면서 마주친 사람들에게는 "아들 잠깐 일이 있어 내려왔어", "외주 업무 관련해서 일이있나봐", “휴가 쓰고 잠깐 내려왔대” 같은 말로 예쁘게 포장된다.

나는 부모님의 큰 자존심 일부가 되어 있고, 사실은 무늬 없는 표범이지만, 남들이 보기엔 어느 자식보다 화려한 무늬를 지닌 표범처럼 보이며 살아가고 있다.


권고사직 후 약 3개월이 되어간다.

아직 이룬 것도, 뚜렷한 벌이도 없지만 부모님을 3개월간 뵙지 못한 게 괜히 마음에 걸려, 최종 면접을 끝낸 뒤 KTX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내내 전쟁통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정말 조용하고 느린 슬로우시티 같은 고향에 오니 마음이 온전히 편하지는 않지만, 잠깐 쉰다는 느낌이 피부로 와닿았다.

노트북, 아이패드, 책, 스케줄러 등 가방에 몽땅 챙겨 내려와 여전히 할일들을 가지고왔지만, 그래도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있다. (물론 1~2일 동안만 그럴 것이다)


4일간 나에게 주는 휴식이자 고향에 있는 카페에서 외주업무를 하면서 엄마가 해준 밥과 반찬을 먹으며 휴식과 기분전환을 하게되었다.

또한 아침마다 엄마 출근길에 엄마차로 모셔다드리고 모시고오는 기사로서 역할도 하고, 전화로 하지 못한 말들을 마주보며 대화 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다.


그러다 우연히 부모님의 지인들을 마주쳤고, 평일 낮에 내가 왜 내려와 있는지 궁금해하며 묻는다

내가 어떤 과정을 겪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다양한 무늬를 가진 치타의 화려한 무늬를 가진 자식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무 의심 없이 지나쳐간다.


물론 나 역시 성실히 살아왔고

인정이나 칭찬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부모님 지인들이 보이기에도 열심히 사는 아들로 보인다니 다행이며

내가 부모님께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걸로도 나로선 충분히 기분이 좋다.


보이지 않는 꼬리표를 숨긴다고 생각해 처음엔 어색했지만,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무늬없는 표범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고 일일이 설명하면서

그로 인해 위로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 시간조차 오히려 낭비처럼 느껴지고, 차라리 내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쓰는 편이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금까지 꾸준히 해온 것을
다시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으니,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어쩌면 지금, 화려한 무늬가 새겨지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무늬 없는 표범이 되려 애쓰는 건 아닐까?

나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서, 결국 나 자신에게 자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세상 생각]


다른건 중요하지않다, 꾸준히 해야한다 그리고 돈을 벌어야한다.

지금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건 없고, 내가 해온걸 바탕으로 용돈벌이라도 해야한다.

그리고 해온것들이 다시 새로운 기회로 주어질 수있으며 새로 시작한것들과 얼기설기 엉켜

또다른 방향과 시너지로 나타나주기도 한다.


그러니 나를 비롯한 권고사직 당한 모든 분들이 지속하는 방법을 같이 찾으며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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