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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봄, 벚꽃과 함께 떠나는 시간 여행

4월 경주 벚꽃,야경 맛집 마을

by 짜몽이

봄이 오면 유난히 생각나는 도시가 있다. 그리고 그 도시의 봄은 언제나 내 기대를 훌쩍 넘어선다.


3월 말, 나는 왜 다시 경주를 찾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진해를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숙소가 이미 만실이었고, 기차표도 빠르게 매진됐다.
결국 대안으로 고른 게 경주였는데, 결과적으로 ‘차선’이 아니라 ‘최선’이었다.

3월 30일 토요일 아침 7시 20분. 보문호수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눈을 떴다. 커튼을 열자마자 보인 건 하늘하늘한 벚꽃잎들. 그 순간, "아, 잘 왔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낯선 사람과도 눈이 마주친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벚꽃을 보며 같은 감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봄이 주는 공기 같았다. 거리의 공기도, 표정도 가볍고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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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

오전에는 조용히 걷고, 오후엔 축제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기로 했다.
보문호수 동쪽 끝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선 어쿠스틱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기타 소리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췄고, 아무 말 없이 잔디밭에 앉았다.

그날의 세트리스트 중 기억나는 건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
사실 너무 흔한 선곡이라 ‘또 이 노래야’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으니 이상하게 울컥했다.
그냥 그 노래가 이 풍경과 너무 잘 어울렸다.

밤이 되자 보문호수 전체에 조명이 들어왔고, 조용했던 호수는 작은 축제의 장이 됐다.
야경이 그렇게까지 예쁠 줄은 몰랐다. 솔직히, 낮보다 밤이 더 좋았다.


사진만 찍으려면 이 도시는 아깝다

요즘 SNS 보면 경주는 벚꽃 사진 명소로 넘쳐난다. 그런데 진짜로 감동을 주는 장소는
‘찍기 좋은 곳’보다 ‘머무르기 좋은 곳’이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은 경주역 벚꽃길.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바람에 꽃잎이 날렸고, 잠시 멍하니 서 있게 됐다.
누가 사진을 찍어주진 않았지만, 그 장면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대릉원 돌담길은 예상대로 예뻤다.
특히 오전 9시쯤, 부드러운 빛이 돌담에 떨어지면서 한복 입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난 오히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이 더 좋았다.


이 도시에서 가장 따뜻했던 건 ‘밥’이었다

여행의 절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다.
보문단지 근처에서 괜찮은 식당을 찾던 중, 구글맵 평점이 높길래 ‘함양집’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들어간 순간 느꼈다. 여긴 진짜다.

육회비빔밥을 시켰고, 반찬이 하나둘 나올 때부터 기대가 생겼다.
고기가 정말 신선했고, 간도 강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균형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모르는 어르신이 "많이 드셨나요?" 하고 인사를 건네셨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따뜻할 줄이야.

다음날은 교리김밥에서 포장을 해 걷는 중에 먹었다.
줄이 길었지만 금방 빠졌고, 김밥 한 줄을 먹는 그 순간 ‘이게 진짜 경주의 맛이구나’ 싶었다.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걷는 여행자에게 주는 에너지 같았다.


벚꽃만 보고 가면 아까운 도시

불국사는 두 번 가도 좋았다. 처음엔 사람에 치여 잘 못 느꼈는데, 두 번째는 아침 일찍 가보았다.
경내엔 아직 사람이 거의 없었고,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는 참 묘했다.

황리단길은 솔직히 기대보다 덜 ‘핫’했지만, 한옥을 개조한 카페에서 본 풍경은 마음에 남았다.
창틀 너머로 보이는 골목, 그리고 그 골목에 피어 있던 작은 벚꽃나무.
그 순간, 커피는 다 식었지만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정리하며 – 봄은 결국, 사람의 기억 안에서 피어난다

이 여행은 사진 몇 장이나 SNS 좋아요 몇 개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남겼다.
아마도 그건, 내가 이 도시에서 ‘나’로 살았던 시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벚꽃이 예뻤고, 밥이 따뜻했고, 사람들이 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 모든 것들이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었다.
그게 진짜 여행이지 않을까.


내년 4월을 기약하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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