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마을

차이콥스키. 현악 6중주 라단조, 작품 70

피렌체(이: Firenze, 꽃피는 마을, 영: Florence)는 르네상스 문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의 본거지였고, 도나텔로(1386-1466), 보티첼리(1445-1510),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 빈첸초 갈릴레이(1520- 1591)와 그의 아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니콜로 마키아벨리(1496-1527)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철학자 과학자를 배출한 도시다. 현재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피렌체는 도시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표토르 차이콥스키(P. I. Tchaikovsky, 1840-1893)는 《현악 6중주 나단조 작품 70》 ‘플로렌스의 추억’(String sextet in d minor, Op.70 Souvenir de Florence)(1890, 1891과 1892 수정)에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어떤 추억을 담았을까? 차이콥스키는 플로렌스의 추억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현악 6중주의 분위기가 슬픔과 우울함을 표현하는 단조 조성을 기반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는 1890년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 두 달간,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작곡과 휴식을 위해 이탈리아에 거주했다. 오페라 작곡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그는 플로렌스의 거리를 걷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맛있는 파스타를 먹어도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작곡으로 이탈리아에서 휴식은 없었고, 고향에 대한 향수는 더했다. 그래서 플로렌스에서 생활이 그에게 러시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플로렌스에서 오페라를 44일 만에 완성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러시아에서 돌아와 《현악 6중주》를 작곡했다.

표토르 차이콥스키(1840-1893)

‘플로렌스의 추억’은 현악 6중주라는 악기 편성이 독특하다. 현악 6중주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각각 2대로 편성된다. 작곡가는 각 악기가 독자적이면서 하나의 조화로운 앙상블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에서 현악 6중주 작품이 많지 않은 이유이다.

1악장 빠르고 쾌활하게(Allegro con spirito)는 진취적이고 저돌적인 선율과 밝고 서정적인 선율이 소나타 형식 안에서 핵심 주제를 ‘제시’하고, 그 주제를 ‘발전’시키고 다시 앞에 제시한 주제들은 악곡의 후반에 ‘재현’한다. 플로렌스에 대한 차이콥스키의 부정적인 경험을 생각해보면, 이 두 선율이 이탈리아와 연관이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그러나 이 선율들은 러시아 혹은 이탈리아의 진취적인 기상과 오페라의 아리아의 서정성이 느껴진다. 1악장은 누가 들어도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친다. ♫

2악장 느리고, 노래하듯이 그리고 움직임을 갖고(Adagio cantabile e con moto)에서 차이콥스키는 어떤 추억을 노래한 것일까? 2악장은 전체 4악장 중 유일하게 장조 조성의 악장이다. 그래서 음악은 밝고 아름답다. 현악기들은 기타 반주처럼 피치카토 주법으로 반주하고, 각 악기의 독주는 사랑의 세레나데처럼 달콤하다. ♫

3악장 적당히 조금 빠르게(Allegretto moderato)를 들으면서, 나는 호텔 방에서 창 너머 벌어지는 도시의 풍경을 보고 있는 차이콥스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도시는 활기차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서둘러 간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장난을 치면 뛰어다닌다. 마차는 빠른 속도로 도시를 가로지른다. ♫

4악장 빠르고 활기차게(Allegro vivace)는 분명히 러시아 음악이 토대로 작곡되었다. 제1바이올린으로 시작하는 주제 선율은 간결하며 선율 체계는 민요의 5음 음계다. 리듬은 빠르고 역동적인 러시아의 레징카 댄스(Lezginka)이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인 밝고 생기 넘치는 선율에서 플로렌스의 추억을 추정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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