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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 May 30. 2022

음악가를 기억하는 방식

카미유 생상, 1835-1921

밤하늘은 맑고 달은 밝다. 자명종이 자정 12시를 알린다. 순식간에 밤의 분위기가 바뀐다. 오싹하다! 무덤에서 백골의 사자(死者)들이 하나둘씩 등장한다. 죽음의 무도를 즐기기 위해서다. 바이올린의 선율에 춤을 추고, 격렬한 춤으로 인해 뼈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욕의 한 쌍이 타락의 희열을 맛보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파티가 수탉의 울음소리에 중단된다. 백골의 사자들이 혼비백산한다. 작곡가의 시선에서 산자와 망자의 파티는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와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 차이일 뿐, 모두 흥겹다. 기괴하지만 유쾌한 죽음의 무도회는 생상에 의해 다시 탄생한다. 교향시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1874)는 카미유 생상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다.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배경음악과 광고 음악으로 사용하면서 그랬다.


교향시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1874)


우리가 카미유 생상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그가 남긴 작품 때문이다. 명작으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은 생상의 삶을 조명을 다시 조명한다. 생상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생상은 2세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10세에 피아노 독주회를 개최하고, 13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는 등 음악 신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뛰어난 그의 재능은 연주자로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5세에 피아노 소품을 작곡했고, 16세에 첫 교향곡을 발표하는 등 19세기의 모차르트라고 할 정도로 작곡과 편곡에도 뛰어났다. 생상은 작곡가로서 평생 오페라 13곡, 발레곡 1번, 영화음악 1곡, 연극 음악 6곡, 관현악곡 27, 밴드곡 5곡, 협주곡 34곡, 실내악 42곡, 오르간과 피아노를 포함한 건반 음악 98곡, 합창곡 63곡 그리고 예술가곡 153곡 등 전체 442여 곡을 작곡했다. 그의 작품 중에서 많이 알려진 곡을 뽑는다면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작품28》(Introduction et Rondo Capriccioso Op.28, 1863), 교향시 《죽음의 무도》(Tone poem. Danse macabre Op.40, 1874) 그리고 《동물의 사육제》(Le Carnaval des animaux, 1886)일 것이다.


 《동물의 사육제》(Le Carnaval des animaux, 1886) No.13  '백조'


위대한 예술가 생상과 동시대를 살았던 19세기 프랑스 국민들은 기분이 어땠을까? 그는 모차르트를 뛰어넘는 음악가였다. 모차르트가 신동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면, 생상은 평생을 걸쳐 천재 음악가로서 명성과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천재 음악가의 면모는 그의 또 다른 이력, 지휘자·음악학자·음악평론가의 활동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문학과 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생상의 다양한 재능은 어린 시절의 프랑스 문학과 라틴어, 신학, 수학, 천문학, 신학, 고고학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통해 가능했다. 그는 평생을 걸친 음악 활동과 음악이 깊어갈수록 천재 음악가라는 명성을 넘어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


생상은 프랑스 음악을 위해 헌신했다. 19세기 프랑스 국내의 정치적 소요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으로 인한 불안한 정세 속에서 프랑스 음악의 질과 위상이 낮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했다. 또한, 리스트와 바그너가 주축이 된 신독일 악파에 자극을 받은 생상은 프랑스 음악을 부흥을 위해 국민음악협회를 창단했다. 이후 국민음악협회의 작곡가들에 의해 프랑스 기악의 부흥과 수많은 기악 단체의 창단과 활동을 이끌어냈다.


생상은 음악가로서 승승장구했지만, 가정사는 불행했다. 생상은 어린 시절에 폐결핵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이후 그는 평생, 폐결핵의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40세에 결혼해서 얻은 두 아들은 병사와 추락사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아이들을 잃은 아버지의 심경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음악가였기에 그 슬픔을 작품에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으로 다소나마 그 아픔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생상은 1921년 12월 6일 파리의 추운 겨울을 피해 온 알제리에서 사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생을 따라다닌 폐결핵이 아니 심장마비로 말이다.


음악사에서 19세기 클래식 음악은 그 어느 시대보다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났다. 카미유 생상(1835-1921)과 동시대 활동했던 음악가들, 베를리오즈(1803-1869)·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로베르트 슈만(1810-1856)·프란츠 리스트(1811-1886)·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샤를 구노(1818-1893)·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조르주 비제(1838-1875)·차이콥스키(1840-1893)·쥘 마스네(1842-1912)·가브리엘 포레(1845-1922)·클로드 드뷔시(1862-1912)·에릭 사티(1866-1925) 등등 수많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미유 생상, 1835-1921


19세기를 빛냈던 음악가 중에 카미유 생상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천재 음악가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 담겨 있는 간결하지만 우아한 음악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가치와 의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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