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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향 Sep 11. 2024

어쩌면 곱셈

결혼 생활, 자녀 양육을 두고 짐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지만, 살다 보니 내가 짊어지게 된 짐이 이런 거구나 싶어 진다. 엄마로서 가정을 위해 해내야 하는 기능적 역할은 물론, 두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양육해야 하는 의무, 작가로서 건설하고 싶은 나의 미래 등, 혼자라면 절대 고민하지 않을 다양한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문제는 조화와 균형이다. 내게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조화롭고 균형 있게, 내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 수행할 수 있을까.




9월 5일부터 보육교사 자격증 수료를 위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엄마로서 가정의 경제적 역할을 위해 선택한 일이다. 단 한 번도 고려해 본 적 없던 분야의 일을 선택한 건 섣부르지도 충동적이지도 않았다. 평소 도전을 잘하지 않는 탓에 막상 새로운 걸 해야 하는 현실에서 망설여진 것도 사실이다. 그 망설임은 내가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글에 당분간은 쉼표를 찍어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것도 있었다.

꿈을 잠시 덮어두잔 생각을 하자마자 다른 결정들은 속속 이루어졌는데, 일상 속에서 실천하기로 한 글과 관련된 계획들은 하루이틀 미뤄졌다. 마치 내가 이런 순간을, 그러니까 줄곧 어떤 '과정'에 머물기만 하며 작가로 성장하지 못하는 '나'를 그만 내려놓는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그렇게 점점 글과 멀어졌다.


글과 멀어진다는 것은 익숙치가 않았다. 언제나 글만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작가가 되는 상상 속에 살고, 글이 안 써질 땐 울기도 했다가, 때때로 흡족한 마음에 기분이 벅차올랐던 내가 어느 순간 모래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다. 모래가 흩어졌다고 해서 어떤 아쉬움이나 속상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흔적을 손바닥에 찝찝하게 남은 반짝이는 모래 몇 알만으로 상기할 뿐이다. 그리고 새롭게 채워진 다른 것들로 쉴 틈 없이 바쁘기도 하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다시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드라마를 써낼 수 있을까, 막연한 생각을 한다. 그 답 또한 막연할 뿐, 내가 지금에 있어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는 건 이전처럼 원하는 글을 쓸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이다. 아마도 당분간, 어쩌면 꽤 오래.


주변에서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동안 좌절감에 빠지기도 하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그 나이에 맞게 내가 챙겨야 하는 것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과연 내가 그 시간들 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 외에 어떤 걸 해낼 수 있을지, 자아실현은 과연 해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해내고 싶어 하는 것들이 욕심인가 싶고,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는 비현실적인 사람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들은 보육교사 자격과정 수업 내용과 관련하여 결혼을 통한 삶의 만족도는 신혼 시절 최고로 높았다가 아이를 출산하면서부터 낮아지기 시작해 점차 낮아지기만 한다. 그렇게 낮아지던 만족도는 자녀들이 독립을 시작하는 이후로 재차 높아진다고.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자녀를 올바른 성인으로 독립시키기 위한 과업만을 위한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대체로 자녀 양육에 있다는 생각에 얼마쯤은 회의감이 들었다가 결과적으론 내가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닿았다.






두 아이 양육을 위해 내가 해내야 하는 역할들이 자연스레 꿈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결혼과 출산, 양육은 정말 '나'를 삭제하는 경험인 걸까 싶어 진다. 하지만 이 시간들이 내게는 뺄셈보단 덧셈일 듯하다. 이전의 글 하나만 생각하고 살았던 것만 두고 생각해 보아도 분명한 덧셈이다.

아니, 어쩌면 곱셈이다. 이전엔 전혀 느낄 수 없던 감정과 생각들로 나란 사람이 달라지고 있는 듯하기에, 실로 새로운 삶을 살아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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