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먹고 싶은 음식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룬 뒤로 유독 견디기 힘든 것이 있다면, 한 아이의 부모가 갑작스레 혹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이다. 누가 명치를 세게 한 대 때린 것처럼 숨이 턱 막히고 금세 눈물이 고여온다. 남은 아이는 어떡하나,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참을 수가 없다.
얼마 전 유튜브 숏츠에서 다큐의 한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한 아이의 엄마가 호흡기를 통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아빠가 아들을 불러 엄마에게 인사를 하라고 하자 나의 큰 딸과 또래일까 싶은 어린아이가 다가와 엄마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 긴 호흡의 영화나 드라마도 아닌, 짧은 숏츠 영상에 그토록 울어본 건 처음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최근, 어린 자녀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도 역시 참지 못했다. 그런 순간마다 나의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감정이입이 된다. 누가 듣거나 본다면 좀 지나치거나 주책이란 생각을 할 듯하지만 난 여전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죽는 일에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다.
내가 왜 이토록 죽음에 예민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란 사람은 꽤 본능적인 사람이란 생각을 할 뿐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아이를 좋아했던 결혼 전엔 내가 자녀를 낳지 못할까 봐 막연한 걱정을 했었다. 번식 본능이 나의 8할을 채우고 있는 것처럼. 소중하기 그지없는 두 아이를 낳은 뒤론 이제 이 아이들을 두고 내가 아플까 봐, 떠나게 될까 봐 두렵다. 아이들이 필요한 매 순간마다 내가 자리하지 못할까 봐, 흐릿한 추억으로만 남아 오래된 사진이 아니라면 내 얼굴을 기억조차 못할까 봐 울컥한다.
오늘 아이들 등원을 끝내고 설거지를 하며 보던 유튜브 영상에서 닭칼국수 이야기가 나왔다. 금세 입에 침이 고이고 익숙한 맛이 혀에서 맴돌았다. 다 털지 못한 물기가 남아 있는 손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세상에서 엄마의 닭칼국수가 제일 맛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마치 딸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들을 죄 꿰뚫고 있는 것처럼, 그 얘기가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해 왔던 사람처럼, 그거 하나 못 해주겠냐고 언제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대체로 엄마의 음식이 내 입맛에 찰떡인 편이라 아무리 맛집이라고 떠들썩한 식당을 돌아다녀도 웬만한 음식은 우리 엄마가 더 낫다는 주의다. 된장찌개와 같이 평상시 밥상에 오르는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여름 별미인 냉메밀과 콩국수, 보양식 중 하나인 삼계탕과 그 닭육수에 남은 가슴살을 찢어 넣고 끓인 닭칼국수, 직접 만든 반죽을 훅훅 떼내어 넣은 수제비와 직접 빚은 만두, 새콤달콤 수제 소스로 버무린 샐러드 등 엄마의 손을 거치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전은 또 어떤가. 나는 결혼을 한 이후로 부침 요리가 이렇게 어려운 줄 처음 알았다. 아무리 해도 엄마처럼 얇게 부칠 수가 없었다. 엄마는 기름을 많이 쓰지도 않았다. 그래서 벽지와 바닥 이곳저곳에 들러붙어 속이 느글느글해지는 기름 냄새도 하나 없이 잘도 부쳤다. 어렸을 적엔 과자도, 온갖 종류의 튀김도, 호떡도, 중국 음식이나 치킨처럼 식당을 찾게 되는 음식도 곧잘 해주었다.
물론 엄마 음식이라고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쑥갓과 표고버섯, 각종 야채를 듬뿍 넣어 만든 우동, 그리고 매일 여러 잡곡이 흰쌀보다 많았던 밥은 편식쟁이였던 어린 시절의 내가 싫어하는 메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족의 건강을 위해 얼마나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했는지, 엄마의 음식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아, 지금도 설탕을 전혀 넣지 않고 양배추와 양파로 단맛을 내는 떡볶이는.., 썩 맛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죽음 뒤에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게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한편으론 우리를 살게 하거나 작은 행복들이 음식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을 앞두고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면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그 순간 딱 떠오를 것 같은 음식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원동력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디선가 하루하루가 힘들어 살고 싶지 않은 순간에 어떤 요리를 먹고 다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고, 배달어플 리뷰와 관련해서도 힘든 날 위로가 되는 음식이라는 내용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 혹은 글을 읽다 보면 괜스레 마음 한편이 몽글몽글 따뜻함이 차오른다. 아무리 옷을 여며도 칼바람을 막아내기 힘든 날, 돌연 작은 촛불 하나와 뜨끈한 국물 한 사발이 언 몸을 녹여내는 것과 같이.
내일 당장 죽는다면 먹고 싶은 것이 뭔지에 대해 남편 혹은 친구랑 재미 삼아 얘기를 나누어볼 때가 있다. 내겐 어김없이 엄마의 냉메밀이거나 김치찌개이거나이다. 별스러울 것 없는 그 음식이 죽음을 앞둔 어느 날 꼭 먹고 싶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죽음이 썩 무섭게만 와닿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 하나가 죽음으로 하여금 비롯된 갖은 생각들을 몰아내줄 것만 같다. 두려움이나 공포는 온 데 간 데 없이 입맛만 다시는 철부지 어린아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잘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인사라도 나눌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성과 사연이 깃든 음식이란, 무릇 허기만 달래주는 것이 아닌 마음을 달구고 용기를 채워주는 듯싶다.
엄마가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난 내게 여전히 종종 반찬을 해 주고, 먹고 싶은 걸 해둘 테니 집에 오라고 할 때마다 내 아이들도 먼 훗날, 내게 기대할 만한 '엄마 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나의 엄마를 따라가기엔 많이 멀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음식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피고 있는 만큼 가능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매일 죽어가는 중인 우리 모두가 삶의 끝자락에서 따뜻한 밥 한 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음식이 엄마의 것이든 동네 식당의 것이든, 당신의 지난 시간을 위로하고 괴로움은 털어내고, 행복만 고봉밥처럼 꾹꾹 눌러 담은 것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