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별 거 있나요

종종 마음에 안 들고 이따금씩 고마워지는

by 향작

외출하지 않는 주말은 길고도 지친다.

작은 아이가 이틀 동안 별 증상 없이 열이 났고, 큰 아이가 뒤이어 비염에 감기가 도졌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작은 아이의 열은 말끔히 내렸고 큰 아이의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지만 남편과 나는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라도 본 듯 외출을 생각지 않았다. 아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지난주까진 줄기차게 나갔고, 어린이집 하원 후에도 제법 열심히 놀아줬기 때문에 집에서 조금 쉬어도 되겠지 생각했다. 집이라고 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바깥을 돌아다닐 여력이 그보다 더 없었다.


아침부터 번갈아가며 울고 짜증을 내는 두 아이와, 돌아서면 너저분해지고 난장판인 거실 모양새에 나의 인내심은 쉽게 바닥이 난다. 작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버리는 기저귀에 주변에 떨어진 머리카락과 알 수 없는 먼지들을 주워 담아 돌돌 말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손으로 잘 잡히지 않는 것들을 청소기로 흡입한다. 아침을 다 먹인 뒤엔 작은 아이가 흘린 식사 흔적들만 물티슈로 대충 훔쳐낸다. 집 전체를 물걸레로 말끔히 닦아내고 싶지만, 몸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언제나 잘 먹히지 않는 나의 최면술. 환경에 예민해진 나는 결국 방을 닦으며 한숨 쉬고, 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리는 남편에게 쓴소리를 퍼붓는다.

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당신이 좀 하라고, 이런 환경에 스트레스받는 날 위해 좀 해 달라고.


지저분하다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오늘의 우리 집이 남편이 내게서 그 모든 쓴소리를 감당해야 할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나의 입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과,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머리보다 몇 발자국 앞선다. 이미 잔소리가 저만치 나가고 만다. 결국 남편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물걸레를 들었다. 덕분에 거실과 방을 다 닦고 큰 아이가 도와 장난감도 정리하고(1분도 되지 않아 똑같아졌지만 어쨌든) 각 방의 이불들 먼지까지 싹 털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잔소리를 들은 이후에도 남편은 내게 대체로 다정했고 두 아이를 재운 뒤엔 조금 더 따뜻했다. 내일 오랜만에 외출이 있는 날 위해 지갑에서 자신의 카드와 현금 얼마를 챙겨주기도 하고 입고 나갈 옷 걱정도 해줬다. 진즉 살 걸 그랬다는 아쉬움도 내비쳤다. 제 약속도, 옷도 아니면서.




남편이 큰 아이를 재우고 나와서는 아침부터 불편하다고 한 귀 얘기를 했다.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며.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핸드폰 플래시를 켜 남편의 귀를 살폈다. 평소 샤워 후에 면봉으로 귀를 말끔히 닦아내던 남편이 면봉이 떨어져 요 며칠 닦아내질 못 해 그런지 자잘한 귀지들이 보였다. 나는 이상한 소리의 정체가 귀지 같다고, 중병 아니니 겁먹지 말라고 달래며 유아면봉을 꺼내 들었다.


남편이 내 무릎을 베고 옆으로 눕는다. 면봉이 귀를 긁어낼 때마다 움찔움찔하고 눈을 찡긋 하는 남편이 덩치에 안 맞아 웃음이 난다. 남편의 귀를 파주다가 괜히 마음 한 편이 뜨거워지는 걸 경험한다.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어서 잔소리를 했더라, 왜 이 사람한테 미운 말만 내뱉었더라? 숱한 감정들 중에 고마움과 애잔함, 사랑만이 남는다.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공간만을 공유하며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멀게 느껴지던 사람이 별 것도 아닌데 다시 제법 가까워지고 내 것들 중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된다. 이런 마음이 잊히지 않으면 좋으련만, 나란 사람은 뒤 돌면 또 다른 마음이 생긴다. 내일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이 모난 성격에 사포질이 어렵다면 미안한 마음까지 고백하는 수밖에. 별 수 있을까.



그래도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시간이 흘러 구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내 삶에서 마지막 남은 보루일 테다.


늦은 밤 일을 해야 하는 나의 허기를 걱정하는 당신이 참 고맙다. 내가 그런 당신의 아내라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육아 난이도와 레벨의 상관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