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아들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딸은 정신적으로 힘들다고들 하던데,
내가 딸 둘을 키워내고 있는 바, 정신적으로 힘들다 해서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은 게 아니다. 반대로 아들도 그렇지 않을까.
성별을 떠나 아이에 따라서 육아는 힘든 법인듯 하다. 아니 아이마다의 힘듬이 있는 것 같다.
큰 아이는 15개월 정도부터 말문이 트여서 지금은 거의 못하는 말이 없는 수준이다. 대화도 잘 되고 그래서 어느 정도 협상이 되며 나름 수긍도 잘하는 정말 좋은 아이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논리가 매번 이해되는 게 아니고 밑도 끝도 없이 속상하다고 악을 쓰며 울고 보는 그 감정이 항상 마음에 와닿는 것도 아니다. 내 자식이라 한없이 예쁘지만 어쩔 땐 왜 이러나 싶게 이상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땐 속으로, 누굴 닮았나, 아니지.. 나를 닮은 게지. 아무렴 저 감정기복은 딱 나지.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만고불변의 법칙을 참을 인 세 번과 함께 가슴에 새긴다. 한데 이것도.., 참을 인 세 번 새기는 걸로는 도무지 참아지지 않는 수준이 있다.
차라리 내가 기계라면, 이럴 땐 이렇게 말해주고,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매뉴얼이 있는 기계라면..,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제가 그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큰 아이의 표정은 별로였다. 무엇 때문 일지 가늠해 보기도 전에, 언성이 높아졌다. 기분 좋게 시작하지 못한 아침은 등원을 하는 내내 이어졌고, 하원 때 웃으면서 만났다한들 아이의 짜증은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툭툭 튀어나왔다. 그러다 아이가 옷에 붙이고 나온 찢어진 종이를(스티커도 아니고 그냥 하얀 종이) 아무 생각 없이 뗐다가 사달이 났다. 큰 아이가 직접 떼기도 하고, 내 옷에 붙이기도 하길래 별 것 아니란 생각으로 떼어 내 옷에 똑같이 붙였는데, 아이가 발라당 뒤집어졌다. 내가 하려고 했다고 하다가 내 거라고 했다가... 집까지 다 돌아와서는 다시 어린이집을 가겠다고 악을 썼다.(그 종이를 어린이집에서 붙여온 거라, 다시 붙이고 싶다는 말인 듯)
종이는 이미 내 손에서 구겨졌고, 아이는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계속 떼를 썼다. 딱 보면 척 아는데 대화도 협상도 안 되는 수준의 막무가내 생떼였다. 작은 아이는 뭣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우는 언니 곁을 맴도는데 자칫 그 성질(!)을 건들면 동동거리는 언니의 발에 작은 아이가 차이거나, 손으로 동생을 밀어버리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나는 작은 아이를 안은 채로 중문을 닫았다. 진정하고 신을 벗고 들어오란 말과 함께.
그렇게 15분 정도가 흘렀고
아이가 스스로, 결코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신을 벗고 들어와 내 앞에 섰다.
엄마 진정했어요.
보통 아이가 먼저 화를 누르고 내 앞에 훌쩍이며 서면 안아준다. 속상한 마음을 다독여주고,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하지만 어제는 왜 그랬을까. 그것조차 잘 되지 않았다. 웃어지지 않았고, 안아줘도 아이가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만 같다. 아이는 곧장 이전의 일들은 잊고 목욕 겸 물놀이를 신나게 하고 나와선 내가 갈아준 수박주스도 두 컵이나 비웠지만 나는 여전히 어떤 앙금이 남아있었다. 대체로 미안함, 더 참지 못한 데에 대한 좌절감.
나의 아이가 나를 그리 힘들게 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민한 기질도 아니고 잘 타이르면 “네” 대답도 잘하고 수긍도 잘한다. 딱 보통의 여느 아이들만큼만 말을 안 듣고 그보단 말도 못 하게 예쁘고 사랑스럽다. 난이도가 끝판왕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따금씩 끝판왕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금쪽이를 한데 모아둔 것 같기도 하고, 좀체 말을 안 듣고, 도무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이 종종 생기고 마는 것이다. 이런 날과 저런 날이 하루이틀, 한 달, 365일이 반복되고, 그렇게 만 3년 동안 겪어왔지만 나의 육아 레벨 또한 고작 세 살 어린아이 일 뿐인 것이다.
괜찮다가도 다시 좌절하는 날이 오는 것을 보면, 이제야 육아에 적응한 것 같다고 자만하다가 벗어나고 싶다고 우울해하는 날이 오는 것을 보면 정말 나의 육아레벨은 하찮은 것 같다.
곧 하원 시간이다.
해는 뜨겁고 바람이 너무 불어 안구건조증인 나의 눈이 사막 같다. 지난주 내내 하원 뒤에 놀이터며 키즈카페며 놀아준 대가로 아이와 곧장 집에 들어오는 일이 멀고도 험난해졌다.
큰 아이의 현재 난이도는 끝판왕인데 나의 레벨이 현저히 떨어져 있단 얘기다.
긴장,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