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개면서 넷플릭스오리지널 '발레리나'를 보다가
나란 사람은 겁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주로 겁을 내지 않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다거나 지극히 현실적이거나 하는 것들엔 웬만하면 겁부터 먹고 본다.
예를 들면 본 적 없는 귀신은 무섭지 않지만, 고장 날지도 모르는 롤러코스터나 열기구, 관람차 같은 놀이기구는 무섭다. 같은 맥락으로 귀신 영화나 귀신의 집은 괜찮지만 정말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뱀파이어 영화나 좀비, 늑대인간 따위는 소름이 돋는다.
아이 둘을 재우고 나와 아이 빨래를 개며 넷플릭스오리지널 '발레리나'를 틀었다. 감독의 전작 '콜'을 굉장히 무섭게 봤던지라, 배우 전종서의 연기에 소름이 돋았던지라, 기대하며 봤다. 짧은 러닝타임은 아이 빨래를 다 개기에 충분했고 별생각 없이 가볍게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나눈 남편과의 대화가 불현듯 일기를 쓰려고 앉으니 생각난다.
싸움도 잘하고 총도 잘 쏘고, 게다가 나와는 달리 겁도 없어 보이는 극 중 옥주가 부러웠다. 건조기에서 바짝 말라서 나온 가재수건의 돌돌 말린 가장자리를 쫙쫙 펴면서 툭 뱉었다.
나도 저렇게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남편이 말했다.
저렇게 세상 무서울 게 없으려면 주변에 아무도 없이 외로워야 할 거다.
남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곱씹자니 일리가 있는 듯싶었다. 이전보다 나는 겁이 조금 더 많아졌는데 어쩌면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꾸린 뒤여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보호해야 하고 지켜야 하는 존재들이 생겨서.
글을 쓰면서도 나는 겁이 많다.
이렇게 쓰면 괜찮을까, 이 문장으로 누군가 상처를 받진 않을까, 이건 좋은 글인가, 나쁜 글인가,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등등 생각이 많아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도 더러다. 새삼 내가 이렇게나 겁쟁이구나, 느낀 것은 요즘 준비하는 공모전이 있어서다. 목표하는 바가 있고 이루고자 하는 게 있는데 뜻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 내심 두려움이 쌓인다. 두려움은 나를 주춤거리게 만들고 시간만 잡아먹는다. 제일 많이 누르는 건 Backspace이고 가장 크게 들리는 건 초침 소리다. 시계를 흘깃거리다 다 식어버린 커피로 타들어가는 목을 축이는 일만 반복한다. 정신이 들면 눈치 없이 배만 고프다. 채워야 할 건 이 배가 아니라 하얀 백지인데.
아직 프로가 되지 못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더 오랜 시간 습관을 들이고 다듬자고 다짐한다. 그 시간 동안 또 얼마나 많은 겁을 주워 먹을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겁을 먹는 만큼 내게 주어지는 성과도 많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