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화는 '최적자'의 차등적 생존을 의미한다.
“이 책은 독자가 흥미롭게 읽도록 쓴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p.41)
어느 정도는 성공했지만
일면, (내 멋대로) 실패했다.
흥미로운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는) 몇 번의 시도에도 끝내 완독 하지 못했으므로.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5년 전이었다.
끝까지 읽지 못했고, 읽는 중에 한 번 관련하여 기록한 독서 노트에는 이렇게 써 놓았다.
"나라는 인간이 참 대단하고 지난한 과정으로 탄생한 역작 같다가도,
별로 대단할 것 하나 없는 생존기계로써의 소모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책의 (서문 제외) 첫 장, 첫 줄부터 구미가 확 당긴다.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가], p.38)
이와 동시에 우주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생물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려 한다면, 가장 먼저 던지게 될 질문이 '당신들은 진화를 알아냈는가?'일 것이라고 부연한다. 책은 진화에 대해서 아주 끈덕지게 파고들어 이기적인 유전자에 대해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생물학자의 대표 격인 인물로 [이기적 유전자]가 과학 분야에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는데, 역시 영감이란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못 되는지 아침에 30분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 것으로는 깊이 집중할 수 없어 이후의 시간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공부 아닌 공부를 해야 했더랬다. 연재를 약속한 이 브런치 북이 아니었다면, '스스로와의 약속 저버리기 달인', '미루기 국가대표'인 내가 이 책의 완독을 언제까지 미루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처음 읽게 된 것이 5년 전이니 이제 완독 할 때도 됐다. 이 정도면 많이 미뤘다.
지난 이틀 동안 틈을 내어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해 볼 때, 리처드 도킨스는 그리 차가운 사람은 아닌 듯하다. 이기적인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여 내가 섣불리 냉철한 책이라고 단정 지어 오해부터 했을 수 있지만 몇몇 지점에서 '인간미'같은 것을 느꼈다.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사회는 개탄스러울 만큼 험악한 사회일 테지만 그의 주장에 따라 '그럼에도' 이타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논점에서 주로 그렇게 느꼈다. '천성이냐, 교육이냐'에 대한 스스로의 의견은 굳이 밝히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지레짐작 그 견해란 것을 알 것도 같았다.
"-나처럼 개개인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관대하게 이타적으로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으로부터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경고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중략)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에게 이기적 행동을 하도록 지시할지 모르나, 우리가 전 생애 동안 반드시 그 유전자에 복종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p.41)
조금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이 페이지를 읽을 때에는 사이코패스 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짐 팰런 교수가 떠올랐다. 짐 팰런 교수의 일화를 '알쓸범잡'에서 접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용은 이렇다.
살인자들의 뇌의 특징을 분석하던 교수는 대조군이 필요해 자신을 포함, 가족들의 뇌를 스캔했고 그중 특이한 뇌 스캔 사진을 하나 발견한다. 사회에 돌아다니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문제가 많아 보이는 스캔 사진에 팰런 교수는 연구진들이 일부러 살인자의 뇌 사진을 대조군 사진에 섞어둔 것이리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 사진은 짐 팰런 교수 본인의 뇌 사진이었고 이후 화제가 되었다. 짐 팰런 교수는 스스로를 '친사회적인 사이코패스'라고 칭하며 모든 사이코패스들이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뇌를 일종의 근육이라고 본다면 유전적으로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되는 뇌를 갖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성장 배경을 통해 폭력적 성향이 더욱 유지, 확장되는 것으로 본 듯하다.
우리 인간의 진화를 살펴보았을 때, 유전자의 이기적 성질은 틀림이 없고 인정해야 하지만 도킨스의 주장대로 '고정된 것이어서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라고 보고 이타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란 걸 짐 팰런 교수의 사례를 떠올리며 스스로 이해했다.
이 외 chapter1을 읽는 동안 흥미로웠던 것들은 어떤 생물체의 이기적 행동에서 '행복'은 '생존의 기회'로 정의된다는 것과 개체 선택설 즉, 유전자 선택설에 대한 내용이었다.
집단 선택설에 대해 설명하며 도킨스는 진화가 자연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며 자연선택은 '최적자'의 차등적 생존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최적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종족인지, 종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될지를 두고 집단 선택설과 유전자 선택설로 나뉘는 듯하다. '진화론의 상세한 내용을 모르는 생물학자들에게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여겨져 온 집단 선택설에 따른다면 '최적자'에 부합하는 최적의 개체는 아마도 '종'이 되며 주로 자기희생을 치르는 개체들로 이루어진 집단들이 세상의 주체라는 것이 집단 선택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종의 이익을 위해 자기희생까지 치르며 종종 다른 집단 혹은 종에게는 이기적 성질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을 두고 도킨스는 의문을 제기한다.
"어느 수준의 이타주의가 바람직한가? 가족인가, 국가인가, 인종인가, 종인가, 아니면 전체 생물인가? (중략) 집단 선택론자가 어느 수준이 중요한지를 어떻게 정했는가 하는 것은 질문할 가치가 있다. 만약 선택이 같은 종 내의 집단 간이나 다른 종 간에서 일어난다면, 왜 더 큰 집단 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중략) '사자는 포유동물의 이익을 위해' 영양을 죽이지 않으리라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인가? 분명히 포유동물의 절멸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자는 영양 대신에 파충류를 사냥해야 할 것이다."(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p.51)
살아가면서 이타와 이기에 대해 이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었는데, 타인을 위해 희생을 하거나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을 두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타인'을 어느 범위까지 설정해야 하는지가 논쟁 거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개선하는 것보다 대형 고래의 도살을 막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도킨스는 질타를 받을 것인데 이를 집단 선택설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종 차별주의의 윤리가 인종 차별주의 윤리보다 확실한 논리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논리에는 적어도 진화 생물학적으로 적절한 근거가 없다고.
도킨스에 따르면 진화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고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는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 유전자이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기 위해 리처드 도킨스는 6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펴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흥미롭게' 완독 하여 리처드 도킨스의 실패가 아닌
'과거의 나'의 독서 습관이 실패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