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진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오류다.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이기적 유전자 강의 두 번째 시간이다.
흥미진진함 뒤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워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오래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더라도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되곤 한다.
한 번은 너무 피곤해 '일어나야지...' 생각하다가 '그냥 자 버릴까', 포기하려 한 순간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아이가 소변 실수를 하여 잠이 확 달아났다. 아이의 수면 중 소변 실수가 내 영혼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고 그렇게 읽은 부분이 '우리는 생존기계다'이다.
어우, 하마터면 정말 생존 기계로서 오로지 '생존'만 연명할 뻔했다. 지식의 습득이고 나발이고, 스스로 한 약속을 저버린 채, 목숨만 부지하는 인생을 오늘도 내일도 살 뻔했다.
앞선 장에서 왜 우리를 이기적 유전자라고 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집단선택설을 비롯하여 유전자선택설에 대한 내용을 설명했다면 Chapter2에서는 유전자가 오랜 시간 생존하기 위해 자신들이 들어앉을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 결과로 다양한 운반자, 즉 생존기계가 탄생했다. 인간 또한 생존기계이며 우리 안에는 최초의 자기 복제자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데 만약 흔적이 없다고 한다면 아마 그들의 생존 기계를 어느 순간 DNA가 강탈한 것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케언스-스미스는 '우리의 선조인 최초 자기 복제자가 유기 분자가 아닌 금속이나 점토의 작은 조각 같은 무기 결정체가 아니었을까' 하는 흥미로운 추측을 했다고.
그들의 생존기계로서 생각해 보자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무기 결정체보다는 유기 분자인 편이 차라리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선조가 금속이나 점토라니... 영, 찜찜하다.
최초 자기 복제자라는 것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며 추측에 기반한 내용인데, 생명 탄생 이전의 지구에 있었을 법한 타당성 있는 화학 원료인 물, 이산화탄소, 메탄, 암모니아 등이 어떤 에너지들로 인해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부분에서는 한 편의 수묵화 같은 것이 연상되었는데 생명 탄생 이전에 형성된 원시 수프인 드넓은 해양에 다양한 유기물들이 '해안 부근의 말라붙은 물거품이나 떠 있는 작은 물방울 속에 국지적으로 농축되'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특히 주목할 만한 분자인 '자기 복제자'가 우연히 생겨난 것이다.
자기 복제자는 스스로 복제물을 만드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스스로 복제하는 분자는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단 한 번만 생기면 충분하다. (중략) 이제 각 구성 요소가 자기와 같은 종류에 대하여 친화성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되면 수프 속의 어떤 구성 요소가 자기 복제자에게 자기와 친화성을 갖고 있는 부분과 만날 때마다 자기 복제자에게 들러붙으려고 할 것이다. (중략) 두 가닥의 사슬이 세로로 쪼개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2개의 자기 복제자가 되어 그 각각이 다시 복제를 계속할 수 있다.
-각 구성 요소가 동종이 아닌 특정한 다른 종류와 상호 친화성을 갖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경우 자기 복제자는 동일한 사본을 만들어 내는 주형이 아닌, 일종의 '음각'의 주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음각'이 본래의 '양각'의 사본을 만드는 것이다. (중략)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안정성'이 갑자기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P.59)
최초의 자기 복제자를 주형이라고 비유한 것도, 이후의 복제 과정에 있어서 양각과 음각의 경우를 설명하 것도 이해가 수월했고, 흥미로웠다. 또한 이렇게 '우연히' 탄생한 자기 복제자가 오늘날에 이르러 다양한 생존기계를 갖게 된 데에 대해 복제의 오류와 다산성 및 정확성 세 가지 요건의 충족을 설명한다. 자기 복제자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복제하는 과정을 거치며 어쩔 수 없는 복제 오류를 범한다. 이 오류는 '진정한 의미의 개량으로 이어지며, 몇몇 오류의 발생은 생명 진화가 진행되는 데에 필수적이다.'
오류는 진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필수 요소이며, 선제적 조건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이처럼 복제 과정에서의 오류로 인해 변종이 생기고, 그러한 변종들 중 애초부터 안정한 것이거나 덜 분해를 이루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유독 수명이 긴 변종들이 생긴다. 이렇듯 수명이 긴 변종들은 점점 원시 수프에서 그 수가 많아졌을 것이고, '다른 조건이 같다고 할 때 분자의 개체군에는 수명이 길어지는 진화적 경향이 나타났을 것이다.'
오류와 대비되는 듯한 자기 복제자의 특성에는 정확성이 있다. 둘을 한 데 묶기에는 역설적인 느낌인데, 도킨스는 책에서 이와 같이 설명한다.
"우리 자신이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를 막연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 진화를 '바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진화란 자기 복제자(그리고 오늘날의 유전자)가 아무리 막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다."(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P.62)
어쩌면 다산성과 정확도는 자기 복제자가 스스로의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며 복제해 나가기 위해 수반하는 특성이라고 한다면, 오류는 진화의 촉매를 이루는 외부 요인 같은 것이 아닐까? 진화의 과정에서 다윈의 '최적자 생존'은 실제로 '안정자 생존'이라고 하여 '지속적으로 존재하거나 그 존재가 흔한 원자의 집단'이 선택적으로 생존하게 되며, 안정한 분자, 즉 오랜 시간 존속하거나 다산성이 있거나, 정확도가 높은 안정한 분자들은 안정성을 향한 진화적인 경향을 갖게 된다.
진화에 있어서 안정이 갖는 의미와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거나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것도 같다.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수프에서 두 번 샘플을 취할 경우, 두 번째 샘플에서는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 면에서 우수한 분자들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본질적으로 생물학자가 말하는 생물의 진화이며, 그 메커니즘도 바로 자연선택이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P.62)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한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P.64)
복잡한 과정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단순해 보이기도 하는 진화 과정의 오늘날에, 인간 또한 생존기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뿐이란 생각을 하면 과연 이렇게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일이 필요한 일인지 의아한 지점에 이른다. 심지어 신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제어하는 유전자로 볼 때 아무리 지식을 쌓아 올려도 자식들에게 유전되지 않는, 일방통행의 성격을 띠는데 과연 무엇을 위해 잠까지 줄여가며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물론, 유전자가 이기적이라고 하여 평생을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로 진화의 과정으로 보아 내가 단순히 생존 기계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중일지라도, 내 안의 유전자가 갖는 맹목성과는 관계없이 스스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내 안에 들어앉아 있는 유전자는 어떠한 의도도, 생각도 없이 필수불가결한 과정의 일환으로 나를 운반자로 선택했을 테지만, 나는 숨만 쉬고 살아도 괜찮은 존재가 아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5년 전,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고 읽는 도중에 기록해 둔 독서 노트의 내용을 생각해 보자면 아마도 오늘 읽은 부분, 생존기계의 내용까지 읽어낸 것으로 보인다. 생존 기계가 내 흥미의 종점이자 끈기의 끝이었나 보다. 오늘 읽어보니 연재를 하기 위해 조금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연재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음 Chapter를 읽고 싶어 진다.
"강탈자건 아니건 오늘날 DNA는 생존 기계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 다만 이 책의 제11장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새로운 권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P.69)
무엇보다 제11장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