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기억난 대학생활
6년 전, 미국 중부에서 있었던 일이다. 산이 많은 한국과 다르게 대부분 평지였다. 그러나 종종 영화에서 봤던 옥수수밭이 넓게 펼쳐진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넓은 땅에 소를 키우는 목장주들이 많은 곳이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소떼들이 풀을 뜯거나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람에 거름냄새와 풀냄새가 비릿하게 섞여났다. 나는 그곳에 있는 대학교에서 2학년 과정을 막 끝마친 참이었다.
그곳은 공기가 좋았다. 하늘이 파랗고 맑았다. 구름이 종종 떠다녔다. 대륙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향하는 비행기가 높은 하늘에서도 보였다. 비행기가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행운을 남겼다. 때로는 아래에서 위로 가는 모양도 있었는데, 나는 그게 로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항상 바람이 굉장히 셌다. 간절기엔 일교차가 20도 이상이 났다. 아침에 반팔에 패딩을 겹쳐 입었다. 해가 중천에 다다르면 무조건 패딩을 벗어야 했다.
4~5월이 되면 어김없이 토네이도 시즌이 찾아왔다. 토네이도가 오면 도시에 전운이 감돌았다. 구름이 땅 가까이 내려와서 맴돌았다. 지역 방송국에서 재난방송을 틀어주었다. 학교에서는 토네이도 경고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그러면 학교 지하가 대피소가 되었다. 그래도 내가 있던 도시는 토네이도가 자주 피해를 주는 곳은 아니었다. 토네이도 시즌이 되어도 여전히 날씨는 맑았다. 다만, 밤이 되면 하늘 저 너머에서 번개가 수도 없이 쳤다. 나는 기숙사에서 천둥과 불빛을 이불 삼아 잠을 잤다.
그곳은 전형적인 백인 도시였다. 대학교 학생 중 약 93%가 백인이었다. 5%가 흑인이었으며, 나머지 2% 정도가 내가 포함된 국제학생이었다. 다양성은 있었다. 그러나 그게 백인들이 생각한 다양성인지, 내가 생각한 다양성인진 알 수 없었다. 다만, 여전히 절대다수는 백인이었다. 더군다나 전공수업에 들어가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유색인종의 수는 더 줄었다. 좋으나 싫으나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친하게 지내던 친구 Xan과 그 룸메이트 TJ와 같이 술집을 갔다. 그게 인연이 되어 다른 룸메이트인 Riley와 Nate랑도 같이 친해졌다. 모두 백인이었다. 3층짜리 건물에 있는 방 하나에 4명이 모여 살았다. 기숙사는 들어가면 거실, 주방이 있었다. 거실 양 옆으로 인당 방 하나씩, 그리고 화장실이 딸려있었다.
Xan은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는 공대생이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머리가 되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꽤 애석하게 여겼다. 그는 성적이 꽤 좋았다. 그러나 그것과 관계없이 그는 자신의 브루어리를 열고 싶어 했다. 졸업 후 맥주를 공부하러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TJ는 Xan과 동기였다. 그와 같이 분자생물학을 공부했다. 그는 공대생답게 체크 셔츠를 즐겨 입었다. 그의 집은 수영장이 딸린 2층 집이었다. TJ는 나중에 집값을 말해주었는데 나는 한국 집값이 미치긴 단단히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공부를 꽤 잘했는데, 약사가 되고 싶어서 대학 졸업 후 약학대학원으로 진학했다.
Riley는 전형적인 텍사스 미국인이었다. 그의 영어에서는 강한 남부 억양이 흘러나왔다. 그는 큰 픽업트럭을 몰았는데 그의 차에 타면 항상 오래 묵힌 쑥을 태운 냄새가 났다. 대마초였다. 가끔 술을 마시다 보면 같이 대마초를 피울 것은 제안했다. 당시 군 입대를 앞둔 나는 혹시나 입대 후 소변검사에서 대마 성분이 검출될까 거절했다. 외모가 꽤 잘생겼던 Riley는 종종 여자 기숙사에 놀러 가 다음날 돌아왔다.
Nate는 공부 잘하는 너드 타입이었다. 상대적으로 친해질 기회가 적었다. 항상 방 불을 끄고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 판을 기다리는 동안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마실 것을 들고 다시 들어갔다. 그때마다 거실에 있던 우리에게 농담을 던지고 갔다. 그 농담이 꽤나 재밌는 것이어서 우리는 한참 배를 잡고 웃었다.
내가 이 친구들과 친해진 후,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서 술을 마셨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해장하러 새벽까지 운영하는 버거집 까지 걸어갔다. 금요일 아침 수업은 웬만해서 쉬었다. 나는 이 생활이 꽤나 맘에 들었다. 몇 없는 한국인과 하릴없이 매주 술을 마시는 것보다 더 생산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 무리와 백인들 틈에 어느 정도 비집고 들어간 것 같아 뿌듯했다.
어느 날,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숙사에서 얼마 안 떨어진 길이었지만, 가로등이 닿지 않는 뒤편과 주차장을 가로질러야 했다. 기온이 떨어져 플리스를 턱 끝까지 올렸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공사장으로 접어드는데,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막 지나가는 찰나, 차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칭. 칭. 칭. 총.
순간 얼어붙었다. 어두워서 차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하얀 팔 하나가 창문 밖에 걸쳐져 있었다. 손 끝에서 빨간색 불빛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응시하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공사장으로 들어갔다.
멍했다. 처음으로 당한 인종차별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 듣긴 했지만 막상 당하니 어찌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한참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인종차별이었다. 내 얼굴, 피부색 때문이었다. 몸은 나를 규정했다.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아이덴티티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한국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그때 처음 자각했다. 나는 소수자였다.
얼마 뒤, 목요일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맥주를 마시고 게임을 하는데 TJ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기숙사 아래층에 인종차별주의자가 산다는 것이었다. 그의 방 창문은 3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나 있었는데, 그는 거기에 큰 남부연합기를 걸어둔 것이다. 남부연합기는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 연합 정부의 공식 국기였다. 지금에서는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 되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주차장에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당시 충격에서 벗어난 터라, 맥주를 마시며 편하게 이야기했는데 TJ와 Riley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더니 한참을 씩씩대는 것이었다. 왜 자신들한테 얘기 안했냐고 화를 냈다. 그러더니 아래층에 사는 그 친구가 혹시 범인이 아니냐고 하였다. 나는 어두워서 얼굴을 못 봤다고 했다. 그 둘은 한참 씩씩대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러더니 마틴, 걔가 범인이든 아니든 너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펜과 종이를 가져왔다. 그 둘은 종이에 욕지거리를 한가득 쓰더니 방을 나갔다. 나는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따라나섰다. 우리 셋은 신발까지 벗고 조용히 남부연합기를 걸어둔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TJ는 종이를 벽에 붙이고 창문을 여러 번 두들겼다. 우리 셋은 황급히 계단을 올라 기숙사로 도망쳐왔다.
한참을 웃었다. 맥주를 마저 마시며 TJ와 Riley는 내게 말했다. 앞으로 그런 일 생기면 우리가 가서 얼굴에 한 방 먹여줄 테니 연락하라고.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연대는 정말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원래 나는 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일상이 아니니 쉽게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경험을 해보니, 맞서는 것보다 강한 것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함께라면 외롭지 않다. 함께라서 행복하다.
시간이 지나,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은 흐릿하다. 오히려 마음의 상처보다 그 친구들이 더 기억난다. 어떤 편견 없이 나를 받아준 친구들이다. 지금은 모두 각자의 삶에 짓눌려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소소한 추억이 일상을 살아가게 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이 세계 어딘가에는 내게 도움을 줄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는다. 나 역시 문제가 생긴다면 있는 힘껏 도움을 줄 것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Xan의 브루어리에서 다같이 맥주를 마시며 대학시절을 추억하길 고대한다.